21세기 미술사에 남을 사건
 

2018년 10월 5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21세기 미술사에 기록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미술계 시스템을 공격하고 넘나들며 이슈가 되어온 뱅크시의 원작 < Girl with Balloon, 풍선과 소녀 >가 치열한 경합 끝에 104만 파운드(한화 약 15억 원)에 낙찰된 것입니다.

 

▲ 반만 파쇄되어 아쉽다는(?) 뱅크시의 < Girl without Balloon, 풍선 없는 소녀 >


하지만, 이 작품이 세계적 이슈가 된 이유는 단순히 고가의 낙찰 금액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경매사에서 낙찰을 확정 짓는 망치질을 하자마자 기괴한 굉음과 함께 해당 작품이 액자 틈으로 빨려 들어가 반이 파쇄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소더비 측은 급히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겼고, 이후 뱅크시는 본인의 SNS를 통해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사전에 준비한 계획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원래는 작품을 끝까지 다 파쇄하려 했으나 기계 오작동으로 반만 찢어져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남긴 것입니다.


사건이 더해진 이 작품은 커다란 이슈가 되었고, 소더비는 “We’ve been Banksy-ed. 뱅크시에게 당해버렸다.”라는 공식 발언을 통해 뱅크시의 가치를 오히려 끌어올렸습니다. 그렇게 낙찰자가 구매를 확정 지었고 파쇄된 이 작품은 < Love is in the Bin, 사랑은 쓰레기통에 >라는 새로운 제목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 소녀 부분만 딱 파쇄가 되어 정말 소녀가 풍선을 잃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3만 회 이상 뉴스로 보도되며 SNS 밈으로도 끊임없이 이야기가 확장된 이 작품은 2021년 경매에 다시 나왔는데요. 기존 판매가의 18배가 넘는 1,858만 파운드(약 300억 원)에 거래되며 미술사에서도 잊히지 않을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뱅크시는 거래된 작품에 < Girl without Balloon, 풍선 없는 소녀 >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대중을 위한 예술(?), 스트리트 아트
 

 

 

양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사의 패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며 가장 미국스러운 미술 장르인 ’팝아트’가 등장했습니다. 팝아트는 대량 생산품에 반응한 영국 예술가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생산의 주체였던 미국이 문화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팝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팝아트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익숙한 이미지나 매체, 예를 들어 마릴린 먼로, 코카 콜라, 캠벨 스프, 만화 등의 이미지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대중성’을 띄고 있으나, 여전히 미술관에 작품이 전시되고 갤러리를 통해 고가에 거래된다는 점에서 사치품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미술 역사의 과도기에서 팝아트의 정신과 기법에 영감을 얻어 거리에 등장한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 혹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의 작품은 미술관이 아닌 건물 벽이나 지하철 같은 서민의 공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미술을 대중의 일상으로 끌고 왔다고 평가받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전설적인 거리의 예술가 중 하나인 키스 해링이 있었습니다. 키스 해링은 지하철의 빈 광고판에 하는 낙서를 시작으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평화와 평등,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였고, 상업 미술과 협업하며 진정한 의미의 미술 대중화를 선보였다고 평가받았습니다.


키스 해링의 정신을 이어받은 동시대 예술가

 

▲ 뱅크시, < 무기를 고르시오 >, 2009


키스 해링이 선보였던 스트리트 아트의 정신은 21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에 꼽히는 뱅크시에게 전이되었습니다. 뱅크시의 < Choose Your Weapon, 무기를 고르시오 >는 키스 해링을 오마주한 작품입니다.

 

▲ 뱅크시, < 사랑은 공중에 >, 2006


뱅크시는 경찰과 시위대가 폭력 충돌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되었던 화염병을 던지는 폭도의 모습을 꽃다발로 바꾼 < Love is in the Air, 사랑은 공중에 >와 같은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시대적 상황들을 작품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동시대의 상징 예술가로 극찬받고 있습니다.

 

▲ 뱅크시의 작품(左), 키스 해링의 작품(右)


주로 스텐실을 이용해 스프레이로 작품을 선보이는 뱅크시와 키스 해링의 작품은 디자인적 즐거움과 재미가 있지만, 다빈치나 렘브란트, 반 고흐 등 고전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형태감이나 감동적인 색감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상을 너무도 잘 표현하기에 미술계는 이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왜 이 대상을 이런 재료로 이렇게 표현하였는가?’라는 개념을 읽어낸다면 더 즐겁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인천에서 만날 수 있는 21세기의 모나리자

 


역사에 남을 해외 유명 작품 일부가 국내에서 전시되는 기회들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대에서 개인적으로는 감히 모나리자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되는 뱅크시의 < Girl without Balloon, 풍선 없는 소녀 >가 지금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의 <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 키스 해링 >展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뱅크시가 인증한 전시답게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무료 전시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뱅크시의 작품 뿐 아니라 키스 해링의 작품들을 지금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만큼 현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애호가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입니다.

 

▲ 뱅크시의 멀쩡한(?) < Girl without Balloon, 풍선 없는 소녀 >도 있다.


전시 소개 영상에 등장한 < Girl without Balloon, 풍선 없는 소녀 >가 미국에서 전시되었을 때 한 관람객이 인터뷰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부터 9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
그저 이 작품을 보려고 딱 24시간 일정으로 온 거죠.”

 

▲ 키스 해링, < 무제 >, 1985


부디 시대의 대표작을 놓치지 말고 마주해 보길 추천합니다.

 

 

 

 

필자 / 김찬용 도슨트
우리나라 1세대 전시 해설가로서 16년간 80여 개 전시에서 해설하며 미술계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불려왔다. 저서로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이 있으며,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 키스 해링>展의 오디오 가이드를 맡았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