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를 연 미술계의 대가
1905년 파리에서 열린 제3회 가을 살롱전(Salon d’automne)에 인류 미술 역사를 바꿀 작품이 전시됩니다. 열여덟 개로 구성된 전시실 중 제1전시장에는 르누아르, 세잔, 로댕 등 인상파 시대를 열었던 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는데 이 작품들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사실 이날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이날 전시의 주인공은 극찬을 받은 제1전시장이 아닌, 비판과 조롱을 당한 제7전시장에서 등장했습니다. 블라맹크, 드랭, 망갱, 카무앙 외 젊은 신진 예술가들이 제7전시장을 채웠고,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충격적 작품을 선보인 건 앙리 마티스였습니다.

 

▲ 이번 특별전에서는 앙리 마티스의 <붉은 방>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미디어룸을 만나볼 수 있다. 입체감을 알 수 없는 평면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요소들은 푸른색과 붉은색의 대비로 활기를 띠며, 사물이 가진 고유한 색채보다 마티스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담은 색의 사용이 돋보인다.

 

마티스가 선보인 <모자를 쓴 여인>은 르 피가로지의 기자 카미유 모클레르에 의해 “관람객의 머릿속에 던져 버려진 물감통 같다”라는 비판을 받았고, 앞서 인상파를 극찬한 비평가 루이 보셀에게 “야수들의 우리에 둘러싸인 도나텔로가 보인다“라며 “작품에 기본기가 없고 감정만 표출된 격정적인 그림이어서 다듬어지지 않은 야수(Fauve)와 같다”라는 혹평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분명 조롱에 가까운 비평이었지만, 앞서 인상파 역시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벽지보다 못한 인상(Impression)밖에 없는 작품이라고 논한 혹평에서 자신들의 이름 갖게 되었듯, 이들 역시 비평에 사용된 야수(Fauve)란 단어가 정체성이 되어 야수파(Fauvism)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술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는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예비 변호사가 화가가 되기까지
원래 마티스는 변호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처럼 미술과 딱히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죠. 그런 그가 스무 살에 맹장염으로 입원한 병실에서 어머니가 시간 때우라고 선물해 준 미술도구를 통해 화가로서의 길을 시작했다는 건, 여타 대가들에 비해 굉장히 이례적이고 늦은 시작이었습니다. 전도유망한 변호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화가가 되겠다는 아들이 아버지의 눈에 탐탁지 않았지만, 특유의 열정과 감각을 가진 마티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삶의 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탁월한 안목을 가졌던 마티스는 당대 새로운 유행이었던 신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즉 쇠라, 시냐크, 고갱, 반 고흐, 세잔 외 진보적 화가들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고, 결국 새로운 화풍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며 인상파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1946년 10월부터 1982년까지 프랑스에서 발행된 예술 및 문학잡지인 <비하인드 더 미러>는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상 에메 마그에 의해 창간되었다. 1945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쟁으로 프랑스를 떠났던 많은 예술가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던 시기에 마그는 파리에 마그 갤러리를 열었다. <비하인드 더 미러 제46호>는 마그 갤러리에서 열린 마티스의 두 번째 드로잉 전시의 도록이자 마티스가 제작한 인물 석판화 11점이 수록된 중요한 에디션이며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세기 장식 예술의 대가
20세기 들어 카메라 기술이 보급되며 세상을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일은 더 이상 화가의 역할이 아니게 되었고, 예술가들은 저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할 방법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이 석판화의 원작인 대형 컷 아웃 작품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은 길이가 9m에 이르고 높이가 3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작품은 대칭의 구조가 돋보이며, 그림 양 끝에 위치한 두 개의 기둥과 가운데 로제트(꽃) 디자인 사이에 가면과 반복되는 꽃 모양이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비교적 정적인 구성과 달리 색색의 다채로운 꽃무늬가 작품 전체에 나열되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름을 꼭 흰색으로 그려야 한다거나 바다를 꼭 파란색으로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한 화풍을 통해 '색채의 해방자'로 불리는 마티스도 새로운 예술 방식 연구를 이어갑니다. 마티스는 모로코를 여행하며 북아프리카의 아라베스크 문양에 관심을 갖게 되고, 서구 미술에서 강조해 온 원근법이 아닌 평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장식적인 패턴과 형태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그의 연구는 자연스레 선과 형태가 중요한 판화 연구와 연계되었고 석판화, 목판화, 동판화 외 다양한 판화를 연구하며 젊은 시절 자신이 해방한 색채를 체계화하기 위한 선과 형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메종 마티스’와의 협업으로 진행됐다. 마티스를 사랑하는 현대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마티스 작품을 오마주한 생동감 있고 강렬하며 화려한 색채의 한정판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는 메종 마티스, 위 사진은 2019년 첫 컬렉션으로 ‘알레산드로 멘디니’, ‘하이메 아욘’과 선보인 리미티드 화병 시리즈.


지금 국내에서 진행 중인 <앙리 마티스 : 러브 앤 재즈> 展에서는 마티스가 초기 야수파 시기를 넘어 프린트 메이커란 별명으로 불리며 다양한 판화와 삽화를 연구했던 시기의 결과물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국내에서 익숙한 색채의 화가 마티스와는 다소 다른 낯선 모습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떻게 자신의 연구에 깊이를 더해갔는지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됩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인다는 앙리 마티스의 4대손이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장 마튜 마티스가 패션 전문가 엘리아나 디 모디카와 함께 설립한 ‘메종 마티스’와의 협업으로 과거 마티스의 위대한 유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다양한 공예품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20세기 대가의 업적이 21세기 현재의 우리에겐 어떤 모습으로 확산되고 있는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15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도를레앙의 <시>에 삽입된 마티스의 그림. 십이지장암 환자였던 마티스에게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판화 드로잉은 육체적으로 부담이 적었고 무엇보다 정신을 집중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앙리 마티스의 절정, <재즈>
 

 

▲ 마티스의 <재즈>는 독특한 예술적 스타일과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상, 그리고 대담한 화면 구성과 조합은 전통적인 예술의 경계를 넘어 현대의 그래픽아트로의 접근과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로 온 세상이 혼탁했던 1941년 1월 십이지장 수술을 받은 마티스는 지중해 근방 니스에서 요양하며,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연구할 수 있는 자신의 새로운 예술 방식 컷-아웃 즉 ‘자르기’ 기법을 완성시킵니다. 컷-아웃 기법은 색종이를 잘라 제작하는 작품으로, 건강히 악화된 마티스가 침대나 휠체어에서도 조수의 도움을 통해 작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배치하며 완성할 수 있는 기법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기법으로 마티스는 서커스를 테마로 삶의 다양한 면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자신의 말년기 역작인 <재즈>를 준비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즉흥적으로 변주하며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을 선보이는 재즈 음악에 비유되어 <재즈>라는 제목을 통해 아트북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출간됐습니다.
 

▲ 마티스의 컷-아웃 방식의 작품들이 강렬한 색채와 어우러져 있는 미디어룸.


어쩌면 너무 단순하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마티스의 후기 작품들은 어렵게 보려면 어려워지고 쉽게 보려면 쉬워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과 평온함의 예술, 즉 안락의자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는 예술이다”라는 마티스의 말처럼, 무더운 여름 강렬한 색채와 음악적 선율을 통해 잠시나마 평안한 위로를 받고 싶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앙리 마티스 : 러브 앤 재즈> 展에 방문해 음악이 미술이 되는 순간을 직접 마주해 보길 추천합니다.
 

 


 

필자 / 김찬용 도슨트
우리나라 1세대 전시 해설가로서 16년간 80여 개 전시에서 해설하며 미술계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불려왔다. 저서로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이 있으며, 현재 다수의 전시 해설을 맡고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