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그림에는 어김없이 태양 또는 달이 주요한 오브제로 등장한다. ‘러시아의 살바도르 달리’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쿠쉬(Vladimir Kush, 1965~)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쿠쉬는 뛰어난 상상력으로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모든 사물의 스케일을 비틀고 순서를 뒤집는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생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그의 그림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블라디미르 쿠쉬, <해돋이 해변>, 1990년경, 캔버스에 유채, 63.5×53.4cm, 개인 소장

 

쿠쉬의 <해돋이 해변>은 태양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달걀을 그린 것일까? 쿠쉬는 장렬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달걀노른자에 은유했다. 알은 삶의 시작이자 세상 만물의 중심을 상징한다. 쿠쉬는 창조의 순간을 포착했는지 모른다. 태양은 유일한 빛의 근원이며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눈’이기도 하다.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쿠쉬의 작품은 보는 사람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전혀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

 

 

물리학을 발전시킨 논쟁, ‘빛이란 무엇인가?’

 

1900년 영국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 1824~1907)은 영국과학진흥협회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물리학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관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뿐이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이 절정에 이른 19세기 후반, 과학자들은 과학이 완성 단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물리학계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뉴턴의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모든 것은 ‘빛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마치 신의 존재 혹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의문처럼 오래되고 중요한 문제다.

 

▲ (좌)카스파르 네츠허르, <크리스티안 호이겐스 초상화>, 1671년, 캔버스에 유채, 30×24cm, 헤이그미술관
(우)고드프리 넬러, <아이작 뉴턴의 초상화>, 1702년, 캔버스에 유채, 75.6×62.2cm,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빛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17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물리학자 호이겐스(Christian Huygens, 1629~1695)는 빛이 ‘파동’이라 주장하며 간섭과 회절 현상을 설명했다. 영국 물리학자 뉴턴(Sir Isaac Newton, 1642~1727)은 프리즘에 빛을 통과시켰을 때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뉘는 실험을 통해 가시광선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는 실험 결과를 통해 빛은 작은 ‘입자’의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영국의 영(Thomas Young, 1773~1829)과 프랑스의 프레넬(Augustin Jean Fresnel, 1788~1827)이 좁은 틈을 이용해 빛을 투과시키는 실험을 통해 빛의 파동성을 입증했다. 영국의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과 독일의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도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이라고 설명하며 파동설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1905년 독일 출신 미국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빛 에너지는 '광자'라고 하는 작은 알갱이로 양자화되어 있다는 광양자설(Quantum Theory)을 제안했다. 아인슈타인은 빛(광자)을 금속 표면에 쪼여줄 때 금속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를 설명하면서 빛의 입자적 측면을 지지했다. 아인슈타인의 뒤를 이어 1913년 덴마크의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가 원자모형으로, 1923년 미국의 컴프턴(Arthur Holly Compton, 1892~1962)이 엑스선(X-ray) 산란 효과로 광양자설을 뒷받침했다.

 

빛의 정체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은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실험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라고 결론 내리며 논쟁은 종결되었다. 물론 ‘빛의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1927년 보어는 양자 세계에서 빛의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를 제안했다. 빛은 간섭이나 회절 실험에서는 파동의 성질을 보여주고, 광전효과 실험에서는 입자의 성질을 나타낸다. 그러나 파동성이나 입자성이나 빛의 두 가지 성질은 한 가지 실험에서 동시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여기에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더해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한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어떤 물체의 상태 즉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현재까지 양자역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명칭은 덴마크 코펜하겐대학교에 설립된 보어의 연구소에서 유래되었다. 1916년 코펜하겐대학교 교수가 된 보어에게 대학에서 이론물리연구소를 마련해 주었다. 보어는 코펜하겐대학교 연구소에서 많은 물리학자와 공동으로 연구했다. 코펜하겐대학교 연구소는 원자물리학과 양자이론 연구의 국제적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1965년 10월 7일 보어 탄생 80주년을 맞아 ‘닐스보어 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 있는 고양이

 

1935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슈뢰딩거(Schrodingers Katze, 1887~1961)는 코펜하겐 해석을 부정하고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여주기 위해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 실험을 고안했다. 상자 속에 반감기가 한 시간인 방사성 물질과 청산가리가 든 병 그리고 고양이가 들어있다.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 연결된 방사능 검출 계수기가 작동하면서 망치가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병을 깨고, 고양이는 청산가리를 흡입해 죽게 될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50% 확률로 붕괴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한 시간 뒤 고양이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어떤 물질의 상태는 그 상태를 관측하면 변한다. 즉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 관찰하기 전까지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으며, 상자를 열어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살았거나 죽은 상태 가운데 한 가지 상태로 확정된다.

 

▲서민아, <슈뢰딩거 고양이>, 2019년, 종이에 수채화, 15×20cm

 

슈뢰딩거는 이것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고양이는 우리가 상자를 여는 행위(관찰)와 상관없이 살아있거나 죽어있으며, 단지 상자 밖에 있는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를 뿐이라고 했다. 원자나 전자처럼 작은 미시세계가 아닌 거시세계, 즉 우리의 현실에 불확정성 원리와 코펜하겐 해석을 적용한다면 얼마나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슈뢰딩거는 이 사고 실험을 통해 역설하고자 했다.

 

 

데칼코마니 같은 미술과 물리학의 궤적

 

빛은 파동이며 동시에 입자다. 흥미롭게도 양자역학이 태동하고 빛의 정체에 대한 열띤 토론과 논쟁을 거치는 동안, 미술계에서도 빛에 대한 해석과 빛을 표현하는 방식을 두고 다양한 화풍의 사조들이 쏟아져 나왔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인상주의에서는 전통 회화 기법을 모두 거부하고 빛에 의해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화폭에 담았다. 빛과 사물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지는 색이 그림의 색채를 결정했으며, 야외에 나가 직접 관찰하면서 객관적으로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화가로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피사로, 고갱, 고흐 등이 있다. 인상주의를 좀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발전시킨 신인상주의 대표 화가는 시냐크와 쇠라다. 특히 신인상주의의 중심에는 물리학자와 화학자의 빛과 색에 관한 이론을 기반으로 한 색채학이 자리하고 있다.

 

피카소와 브라크 등이 이끌던 입체주의는 사물을 공간상에서 완전히 해체한 후에 전혀 새로운 구도로 재배치해 낯설게 그림으로써 화단에 충격을 주었다. 마티스로 대변되는 야수파 회화는 사실주의나 관찰주의에 입각한 색채에 관한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 꿈이라는 무의식 세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정신분석학을 소개했다. 미술계는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사조가 등장하며 20세기 초 미술계는 요동쳤다. 같은 시기에 신경병리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 꿈이라는 무의식 세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정신분석학을 소개했다. 미술계는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 세계를 화폭에 담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극한의 무의식 세계를 담는 초현실주의로 이어졌다. 초현실주의는 현실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나 배치되는 상황을 그림의 주제로 거침없이 택하기에 이른다. 달리, 에른스트, 키리코, 미로, 마그리트, 탕기 등이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회화의 방식이나 주제 의식은 큰 틀에서 상당히 비슷했다. 그러다 빛을 직접 묘사하고 회화 기법에 빛을 반영한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새로운 미술 사조가 하나 둘 등장했다. 하나의 사조가 일정 시간 부흥하다가 다시 반대 사조가 나타나고 다시 이 사조를 부정하는 정반합(正反合) 과정을 반복하며 진화해 미술계는 오늘날과 같은 다양함에 이르게 되었다.

 

 

놀랍게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미술계 상황은 빛의 정체와 특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하고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이론이 끊임없이 등장해 증명과 반박을 거듭하며 이루어 낸 현대물리학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분야, 미술과 물리학이 ‘빛’이라는 공통의 화두를 놓고 고민하고 논쟁하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의 풍파를 겪으며 발전해 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관한 과학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인상주의도 있었으니, 예술과 과학이 오래전부터 서로 공생 관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공통된 대명제를 놓고 철학적인 고민을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그 고민의 궤가 물리학과 상당히 닮아 있다.

 

 

이미지의 배반과 상보성의 원리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1929년, 커다란 캔버스에 파이프를 하나 그리고 그 아래 이런 문장을 적었다. ‘Ceci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하나의 그림 안에서 이미지와 반대되는 의미의 문자가 충돌한다.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통해 미술계를 지배해 왔던 사실주의에 입각한 사물의 형태와 구성 즉 ‘이미지’와 우리의 머릿속에서 경험에 의해 일체화되어 있던 ‘언어’와의 완벽한 분리를 꾀한다.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경험으로 습득한 언어의 지배를 받고 있다. 마그리트는 이 실험적 작품을 통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파이프라는 ‘형상’일 뿐, 실재가 아니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즉, 언어는 사회적 합의에 결정된 것이지 사물이나 본질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제목처럼 이 그림이 보여주는 배반과 역설은 물리학에서 다루는 빛의 이중성 및 상보성과 닮아 있다. 보어가 상보성의 원리에서 말한 대로, 한 물리적 측면에 대한 특성은 다른 측면에 대한 특성을 배제하고 설명되어야 한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년, 캔버스에 유채, 60×81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고전역학에 의하면 위치와 속도처럼 한 쌍의 물리량은 항상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측정값이 불확정한 것은 측정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확정된 값을 가질 수 없다. 한 가지를 정확히 알게 되면, 다른 한 가지에 대해서는 점점 더 정확도가 떨어진다. 우리는 물리량의 정확한 값을 알 수 없고, 그것은 오로지 확률로만 존재하게 된다.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가 쓴 소설 《데미안》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알을 깨야 한다. 새로운 세계는 기존 규범을 파괴해야 열린다. 현대미술과 현대물리학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절대적인 믿음을 깨트리며 세상에 나왔다.

 

 

 

 

 

필자 / 서민아(물리학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연구로 2010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 201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합류해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나노-정보융합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어바웃어북) 등이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