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계의 자부심, 예술의전당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전시가 바로 <라울 뒤피 : 색채의 선율>전입니다. 아마도 미술 애호가가 아니라면 라울 뒤피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라울 뒤피는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익숙한 앙리 마티스 중심의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 중심의 입체파를 넘나들며 20세기 미술계에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족적을 남긴 대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특유의 경쾌하고 가벼운 색감이 매력으로 꼽히는데요. 그래서인지 20세기 문학계의 거장이자 열혈한 예술 수집가였던 거투르드 스타인은 “뒤피의 작품, 그것은 쾌락이다”라고 말했고, 뒤피 본인 역시 “나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것을 지우도록 되어 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론 “만약 시각도 미각처럼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눈으로 이온 음료를 마시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감각적인 색채와 드로잉을 보여주는 예술가가 바로 라울 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격변하는 20세기 자신만의 색채를 만든 화가

 

▲ <목욕하는 거대한 여성>, 1950, 캔버스에 유채

 

라울 뒤피는 1877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가 근처에 위치한 르아브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바다와 찬란한 햇빛을 경험할 수 있는 환상적인 도시였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부둣가에서 창고 정리 일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녀야 했던 뒤피의 유년기는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뒤피는 장학 지원 제도를 통해 프랑스 파리 최고의 예술교육 기관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고, 회화의 기초와 더불어 그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의 화풍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 투명한 푸른색 색채와 경쾌한 드로잉이 눈에 띈다.

 

하지만 뒤피는 진보적인 성향을 타고난 예술가였고, 과거의 것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것에 반응하는 예술가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20세기 초 마티스가 선보이기 시작한 야수파 기법은 혁명처럼 느껴졌고, 결국 야수파에 합류해 특유의 푸른색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화풍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색채의 선율’인 것처럼, 뒤피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투명한 색채와 경쾌한 드로잉의 조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 <붉은 조각상이 있는 작가의 아틀리에>, 1949, 캔버스에 유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붉은 조각상이 있는 작가의 아틀리에>는 언뜻 보면 수채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투명한 색채를 보여주는데요. 사실 유화로 그린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유화는 반 고흐의 작품처럼 색이 짙고 두텁게 발리는, 강렬하고 채도 높은 색감들일 텐데요. 하지만 뒤피의 작품은 마치 물을 섞어 쓰는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얇게 채색된 캔버스를 통해 색을 발랐다기보다 마치 염색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해줍니다.

 

 

더불어 뒤피는 야수파 이후 새롭게 미술계의 이슈가 된 피카소의 입체파까지 연구했습니다. 그의 작품엔 강렬한 색채 외에도 감각적인 드로잉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다양한 화음이 조합된 음악을 눈으로 즐기는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 뒤피가 생계유지를 위해 그렸던 판화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수채화로 밑그림을 그린 후 채색 판화로 복제했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 만큼 뒤피는 30대 후반이 된 중년기에 접어들어서야 미술계에서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만큼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삽화를 제작하며 판화를 연구했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뒤피의 예술 연구는 시대를 무척 앞선 것이었는데요.

 

▲ <오르페우스 행렬 또는 음악>, 1921, 실크로 제작한 벽걸이 천

 

이를 알아본 20세기 파리 패션계의 거물 폴 푸아레의 제안으로 뒤피는 다양한 패브릭 패턴을 디자인하며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삶에도 다채롭게 재해석되며 활용되고 있습니다.

 

▲ 특색 있는 패브릭 패턴이 돋보인다.

 

20세기 파리를 상징하는 뒤피 최고의 마스터피스 <전기의 요정>


뒤피의 젊은 시절은 가난했지만 때는 파리 문화예술이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일컫는 ‘벨 에포크’ 였기에, 그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고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시련이 그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를 강타했습니다. 재료조차 구하기 힘든 전쟁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뒤피는 신문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재료 어디에든 그림을 그리며 예술혼을 불태웠는데요. 그의 열정은 1937년 2차 세계대전의 어둠 속에 진행된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선보일 대작을 준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뒤피는 전기공사의 후원으로 만국 박람회 시기에 맞춰 벽화 제작을 의뢰받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제작한 뒤피 인생 최고의 마스터피스가 바로 <전기의 요정>입니다. 전기의 요정은 길이 60m, 높이 10m의 대작인데 면적으로 따지면 우리에게 익숙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인 '천지창조'보다도 큰 그림이었고, 이는 실제로 20세기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회화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 <전기의 요정> 석판화 연작 10장 중 1번, 1954~1956, 샤를 소를리에(Charles Sorlier) 조각 / 페르난도 모로, 모리스 모로 인쇄

 

유럽 전역에 전운이 퍼져나갈 시기에 진행된 박람회였지만, 발전된 기술의 중심에 프랑스 파리가 있음을 선보이고 싶었던 국가의 의지는 뒤피의 <전기의 요정>에 완벽히 표현되었습니다. 이 대형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그리고 위와 아래로 나눠 감상하면 재미있는 점이 많은데요.

 

하단부에 110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데 이곳은 인간 즉 인류의 영역이고 인류가 전기에 관심을 가진 이래 이를 발전시킨 역사에 존재한 모든 위인을 배치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시작점에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다빈치를 지나 와트, 벨, 에디슨, 퀴리 부인 등 수많은 위인이 등장합니다.
 

▲ 중앙 상단부에는 제우스가 번개를 치고 있다.

 

총 250개의 패널을 이용해 제작한 이 거대한 회화 작품은 현재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파리시립미술관에 영구 설치되어 있습니다. 곡면 벽에 설치된 그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면, 마치 아이맥스 영화 혹은 대형 미디어아트라도 보는 것처럼 한 세기 전에 이미 미래의 전시를 예측하고 표현한 듯한 압도감을 선사합니다.

 

아쉽게도 60m x 10m 사이즈의 이 작품은 파리에 가야만 볼 수 있기에, 이번 전시에서는 이를 소장하여 볼 수 있도록 뒤피 본인이 컬러 석판화로 제작한 버전을 전시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작품에서 예측한 전기 발전의 미래를 경험하듯 8m 높이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층고를 이용해 미디어아트로 이를 구현한 기념 공간이 있고, 이를 통해 <전기의 요정>의 압도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라울 뒤피 : 색채의 선율>전을 위해 라울 뒤피의 고향 르아브르에 위치한 앙드레 말로 미술관과 그의 부인 에밀리엔의 고향 니스에 위치한 쥘 세레 미술관, 그리고 세계에서 뒤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수집한 개인 컬렉터 중 한 명으로 유명한 에드몽 헨라드의 소장품들을 끌어모았습니다. 그리고 유화, 수채화, 판화, 드로잉은 물론 패션계까지 영향을 미친 패브릭 디자인과 일러스트 디자인들까지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종종 뛰어난 예술 작품이 훌륭한 기획을 만나면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곤 하는데요. 점점 무더워지는 날씨에 미술을 통해 잠시나마 마음의 더위를 덜어내고 싶다면 <라울 뒤피 : 색채의 선율>전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필자 / 김찬용 도슨트
우리나라 1세대 전시 해설가로서, 16년간 80여 개 전시에서 해설하며 미술계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불려왔다. 저서로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이 있으며, 현재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아트>展의 전시 해설을 맡고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