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미술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그림이 AI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AI가 인간 고유의 활동이라 여겼던 창작의 영역까지 넘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앞으로 AI의 창작 활동은 점점 더 발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그 진화는 어디까지일지, 인공지능의 창작 결과물은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글. MIT Technology Review 편집팀
AI, 모방을 넘어 창작의 영역을 넘보다
앞서 미국 콜로라도에서 진행한 공모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림은 제이슨 M. 앨런(Jason M. Allen)이 출품한 ‘우주 오페라 극장(Théâtre D’opéra Spatial)’입니다.
▲ 제이슨 앨런(Jason Allen)이 미드저니(Midjourney)를 이용해 만든 그림 '우주 오페라 극장'. 출처 : 미드저니 홈페이지
작품 제출 시 작품의 하단에는 ‘Jason M. Allen via Midjourney’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여기서 미드저니(Midjourney)가 바로 AI를 활용해 그림을 생성하는 플랫폼입니다. 앨런은 미드저니에 텍스트 명령어(text prompt)를 입력하여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었습니다. 원하는 품질이나 컨셉에 따라 세부 설정을 변경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원리입니다. 앨런은 어떤 텍스트를 입력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다양한 텍스트 입력은 물론 포토샵으로 해당 이미지의 디테일을 높이는 하이패스(high pass) 과정을 거쳤고 해상도를 높여주는 기가픽셀 AI(Gigapixel AI)로 이미지를 출력하는 등의 작업을 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얻은 작품 중 3개를 골라 대회에 제출했고 이 중 하나가 1등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 미드저니 사이트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 출처 : 미드저니 홈페이지
사실 이번 수상 전부터 AI로 만들어진 작품은 예술 분야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지난 5월 런던에서는 세계 최초의 로봇 작가 아이다(Ai-da)의 두 번째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2019년에 등장한 아이다는 로봇기업 엔지니어드 아츠(Engineered Arts)의 제작 기술과 옥스퍼드대 과학자들이 개발한 알고리즘, 리즈대 AI 엔지니어가 합작해서 만든 AI 로봇입니다. 화가로 활동하며 첫 전시회를 열었고, 이번에는 거울을 보고 직접 본인을 그린 자화상으로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AI 로봇 아티스트 아이다의 테드 강연
또한 2018년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미술품 경매에서는 처음으로 AI가 그린 초상화가 43만 2,000달러(약 6억원)에 낙찰된 적도 있습니다. 프랑스 예술집단인 오비어스(Obvious)는 14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나온 초상화 1만 5,000장을 심층학습(딥러닝)시켜 개발한 AI로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 AI는 초상화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드로잉 기법을 터득해 기존 초상화 화풍을 변주하여 인간의 창작물과 유사한 그림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비어스는 이를 모방이 아니라 ‘창조’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인공지능 화가 오비어스가 그린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 출처 : 오비어스 홈페이지
지속적으로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에는 앱을 통해서 작품을 만드는 일 역시 가능해졌습니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AI ART’를 검색하면 아래 이미지처럼 다양한 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앱을 다운받으면 붓질 한 번 하지 않고 나만의 작품을 AI를 통해 만들 수 있습니다. 이미 웹상에서는 달리2(DALL-E 2), 미드저니 같은 AI아트 앱으로 만든 작품을 올리고 서로 평가하는 일이 일상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AI 아트 앱
AI로 영화까지 제작한다?
이러한 AI의 진화는 비단 미술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메타에서 메이커비디오(Make-A-Video)를 발표한 것에 이어, 구글도 텍스트 입력을 받아 동영상을 만드는 AI 시스템 이마젠 비디오(Imagen Video)와 페나키(Phenaki)를 공개했습니다.
메타는 '폭우 속을 걷는 젊은 부부'와 '인물을 그리는 테디베어'와 같은 텍스트를 기입하여 아래와 같은 비디오를 만들었습니다. 또 AI 모델을 통해 처리된 거북이가 수영하는 영상과 같이 소스 이미지를 가져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기능도 소개했습니다.
기존 AI 비디오 생성기는 존재하는 이미지를 가져다 동영상으로 편집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입력된 이미지를 토대로 존재하지 않던 이미지를 만들어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입니다.
구글에서 제작한 이마젠 비디오와 페나키는 시나리오처럼 긴 텍스트 명령어를 입력하면 이를 계속 이어서 생성해 마치 영화와 같은 장편 영상물까지 만들어 줍니다. 이마젠 비디오는 고화질 영상을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고, 페나키는 상세하게 묘사한 명령어를 이해해 장편의 영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강점입니다.
▲ 이마젠 비디오가 텍스트 프롬프트 '설거지하는 곰'으로 생성한 비디오
▲ 페나키가 생성한 2분 분량의 비디오
그러나 메타와 구글 모두 AI시스템을 정식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완성도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저작권 문제, 비윤리적인 콘텐츠 생성 등 앞으로 AI가 만드는 작품이 맞닥뜨려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AI 예술시대, 저작권은 누구에게로?
사실 과거에 예술 분야는 AI로 대체될 수 있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제외되어 왔습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창의성을 토대로 예술 작품의 오리지널리티가 완성된다는 전제 때문입니다. 그러나 AI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면서 AI와 예술의 공생에 대해 다양한 담론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저작권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일까요? 미국 저작권청의 규정(copyrightable authorship)과 우리나라의 현행 저작권법은 창작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human authorship)’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법에 의하면 AI가 만든 작품은 저작권이 없는 셈입니다. 이 배경에는 AI가 만든 작품을 두고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빠질 수 없는데요, 결국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성이 더해져야만 그 권리를 부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AI를 예술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 활용한다는 주장이 더 우세합니다.
이처럼 AI의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면서 미국은 올 10월 새 AI 권리장전(AI Bill of Rights) 청사진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공개된 내용에는 ‘안전한 시스템’, ‘차별 방지’, ‘데이터 사생활 보호’, ‘사전 고지와 설명’, ‘인적대안 및 대비책’에 관한 내용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세부적으로 명시된 조항이 없지만 AI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원칙을 권고했다는 사실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AI와 예술계가 함께 발전하기 위해선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예술과 기술 발전 사이에서 논쟁은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사진의 발명을 비롯, 영상매체, 컴퓨터 테크놀로지 등 새로운 기술이 예술 영역으로 유입될 때마다 많은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AI 기술 역시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력, 직관력, 상상력 등이 AI를 통해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또 이에 파생될 문제들은 어떻게 제도적으로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도 모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신기술은 예술과 결합하면서 보다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AI 기술의 진화 역시 미술 표현의 영역을 확장할 뿐 아니라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