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기의 명작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대가들의 유명한 그림에는 반드시 ‘파란색’이 들어간다는 사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만 파란색을 쓸 수 있다는 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또 현대에 와서 파란색은 신뢰와 안정감을 선사해 항공기업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컬러로 쓰이기도 하는데요.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컬러의 경제학을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울트라마린에 울고 웃었던 화가들

▲라파엘로의 <초원의 성모>

13세기 가톨릭 교회는 성모상에 파란색을 칠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파란색에 해당하는 도료, 즉 물감의 가격은 금값에 맞먹을 만큼 비쌌다는 것이 문제. 르네상스 시대의 푸른색 ‘울트라마린(Ultramarine)’은 그 이름처럼 ‘바다(marine)’, ‘멀리(ultra)’에서 가져온 물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실제로 울트라마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해 들어오는 청금석을 원료로 하고 있었기에 어마어마한 유통 비용을 지불해야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는 고가의 도료였습니다.

당시 그림은 성경, 교회와 관련된 성화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이런 그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비싼 물감 비용과 화가의 인건비까지 감당할 수 있는 재력이 필요했기에 당시 부자들이 화가들을 고용해 그림을 그리고 교회에 선물하거나 비치하는 것이 일종의 기부였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심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파란색은 아름다운 데다 비싸기까지 했으니 가장 적절한 재료였습니다. 실제로 당시 성화를 보면 성모, 예수, 위인 등의 옷은 유독 짙은 파란색으로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화가를 가난으로 몰아넣거나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했죠.

▲미켈란젤로의 <그리스도의 매장>

미켈란젤로가 아직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 전 젊은 시절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도의 매장’은 성모 마리아로 추정되는 인물이 없는데요. 당연히 있어야 할 인물이 빠진 이유는 성모를 그리면 파란색을 써야 하는데, 당시 그에게 비싼 물감을 사줄 만한 후원자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사실 울트라마린처럼 비싼 물감의 비용은 전체 그림 제작 비용의 40%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파란색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윌리엄 비키의 <영국 장교의 초상>

이처럼 비싼 컬러에는 붉은색도 있습니다. 붉은색 안료는 당시 연지벌레과의 코치닐을 채집해 사용했는데요. 코치닐로 붉은 염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약 450그램 정도의 염료를 얻기 위해 7만 마리의 코치닐을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이 귀한 붉은색은 대영제국의 왕족, 귀족, 장교들의 의복에만 사용되었습니다.

RGB 컬러의 과학

이처럼 과거에는 컬러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성취를 상징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면 현대에는 컬러 과학이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망막에는 R(red), G(green), B(blue) 세 종류의 빛에 반응하는 광수용체가 있는데요. 그래서 디스플레이, 조명 등의 영역에서 컬러 과학이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과거에 희귀하고 비싸서 신성한 컬러로 취급받던 청색은 지금은 안정감, 신뢰, 창의력을 높여주는 컬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RGB 가운데 에너지가 가장 높고 파장이 짧은 청색광은 빛의 투과율이 높습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시야에 머물며 각인되기 때문에 집중력과 안정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데요. 그래서 보험사, 금융회사나 IBM과 같은 정보기술(IT) 회사, 유나이티드에어라인, 싱가포르항공 등 항공 업계에서도 널리 쓰입니다. 또한 인텔(Intel)과 델테크놀로지스(DELL Technologies)처럼 신뢰성 높은 성능이 필요한 전자 기기, 부품 업계에서도 선호하는 색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청색광 특유의 안정감을 이용해 스코틀랜드와 일본에서는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푸른 가로등을 설치, 강력사건 비율을 크게 감소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청색광은 낮에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고 집중력을 높여주기에 일조량이 적은 극지방이나, 수면 장애 치료에 활용되는 일광치료기기에서 이 청색광을 주로 활용합니다. 단, 청색광은 멜라토닌 분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밤에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포유류 가운데 적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는 영장류에게만 발달했습니다. 영장류가 진화하면서 붉은 과일과 초록색 식물의 컬러를 서로 구분하고, 사람 얼굴색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시각 세포가 발달한 결과라고 하는데요. 얼굴 표정, 안색 등 사회적 신호에 민감하고, 사냥보다는 과일 등 먹거리를 채집하는 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여성의 경우 적색광을 감지하는 시각 세포가 상대적으로 더 잘 발달돼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장품 등 여성 용품의 경우 적색 계열의 컬러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뿐만 아니라 적색광은 실제로 사람의 식욕을 증가시키는 등의 효과를 가지고 있어 코카콜라와 피자헛, 맥도널드 등 식품 업계 로고에 널리 사용됩니다.

이처럼 각 컬러가 지닌 특유의 속성은 디스플레이 기술에도 그대로 담겨 있는데요. 자연스러운 수면 리듬과 안구 건강을 만들어주는 블루 라이트 저감 기술, 생장 시기에 따라 다양한 컬러로 식물 성장에 도움을 주는 작물 재배용 LED 등 저마다의 컬러 특성에 발맞춰 첨단 기술도 함께 발전하고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컬러가 눈을 즐겁게 하는 봄날, 컬러의 의미를 알고 세상을 보면 훨씬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일은 보다 컬러풀한 옷을 입고 일상에 활력을 조금 더해 보세요~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