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보의 80%를 시각에 의존하고, 그 대부분은 색채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색채심리 전문가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색채론(Theory of Colours)'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와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만큼 눈으로 보는 세상에서 색은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디스플레이가 보편화된 지금도 무척 강조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한번 보겠습니다.

컬러 사진을 보면 흑백 사진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꽃의 색상이나 하늘의 모습을 통해, 계절이나 기상상태에 대한 추측을 더 할 수 있고 사물간의 구별도 더 뚜렷해집니다. 이렇듯 색은 더 많은 시각 정보를 제공하며, 나아가 심미적인 아름다움까지 더해줍니다.

색에 대한 이해와 실용적 접근법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와 고민이 이어져 왔습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색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디스플레이 영역에서 색의 영역을 다이어그램(CIE 1931 등)으로 시각화 하기도 했습니다.

[디스플레이 톺아보기] ㉗ 디스플레이 색 체계의 역사 Part.1

오늘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다루는 색공간(Color Space)에 대해서 그 대표적인 종류와 차이점을 톺아보겠습니다.

 

색공간(Color Space)이란?

축구 경기장 크기에 제한이 없다면 어떨까요? 농구 골대의 위치가 경기마다 제각각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선수들은 혼란을 겪을 것이고, 경기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운동 경기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규칙이 있고, 경기가 벌어지는 공간에 대한 규격도 존재합니다. 경기장에 규격이 있듯이 디스플레이에서 색을 보여주는 공간에도 규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색공간(Color Space)이라고 부르며, 이 공간에 대해서는 여러 기관이나 회사별로 다양한 기준이 존재합니다. 정해진 규격에 맞게 디스플레이 제품이 제작 돼야 정확한 화면이 표현됩니다. 표준화된 규격 안에서 이미지나 영상이 만들어지고 또 그것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도 같은 규격을 따를 때 최초의 이미지 제작자가 의도한 색감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스플레이에서 색공간이 표준화 되어 있는 분야는 위의 구분과 같이 크게 방송, IT, 영화의 3가지입니다.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한데 오늘은 각 분야별로 가장 대표적인 색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방송 분야입니다.

 

방송 분야의 색공간

가장 전통적이며 대표적인 방송 색공간은 바로 NTSC입니다. NTSC(National Television System Committee)는 방송용 전파에 대한 미국의 표준화 담당기구의 이름으로, 동시에 NTSC가 마련한 색공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1953년 3월에 NTSC는 세계 3대 국제 표준화 기구 중 하나인 국제전기통신연합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와 함께 컬러TV 표준을 제정(표준문서번호 ITU-R BT.470)했고 그 색공간은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 ITU : 유엔의 산하 기구로 전기 통신의 개선과 효율적인 사용, 효율적 기술 운용 등을 목적으로 설립 (ITU-R : ITU의 전파통신 부문)

※ BT : Broadcasting service (Television)

NTSC는 색공간을 정의 할 때 영화용 컬러 필름의 색공간을 기준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에 컬러TV 방송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시기였고, 컬러 브라운관(CRT)의 기술 수준도 현재와 비교하면 초보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기준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컬러로 개발돼 상용화 됐던 영화용 컬러 필름이었습니다. 컬러 영화는 컬러TV보다 훨씬 앞선 1915년에 기술이 개발됐고 이후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꽃과 나무(Flowers and Trees, 1932)' 등 다양한 컬러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NTSC는 영화용 컬러필름의 색공간을 참고하여 3원색(Primary Color)을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NTSC 방식을 기준으로 한 컬러TV 방송은 1954년 1월부터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1975년에 유럽방송연맹 EBU(European Broadcasting Union)는 SDTV(Standard-Definition Television) 시스템을 위해 스튜디오 모니터용 색공간(EBU Tech.3213)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은 PAL(Phase Alternation Line) 방식을, 프랑스는 SECAM(séquentiel couleur à mémoire) 방식을 각각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인 기술 방식과 색공간은 같기 때문에 보통 PAL과 SECAM은 한데 묶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PAL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중국, 북한 등에서 채용됐고, SECAM은 프랑스와 소련 및 구 공산권 국가들이 주로 채용했습니다. 그리고 NTSC는 대한민국, 미국, 일본, 중남미 등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82년에는 ITU에서 SDTV(Standard-Definition Television) 규격이 공식적으로 제정(ITU-R BT.601)됐습니다. 고화질 방송 규격인 HDTV로 이동하는 중간 단계로서, SDTV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점과 16:9의 와이드 스크린 도입 등의 측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색공간 관점에서 SDTV 규격은 개정된 NTSC와 PAL/SECAM의 색공간을 각각 다르게 규정했으나 그 범위는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1990년에는 현재 주로 사용되는 디지털 방송 규격인 HDTV(High-Definition Television) 규격인 ITU에 의해서 제정(ITU-R BT.709)됩니다. 고해상도와 16:9 와이드 스크린 등 높은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기 위한 표준 규격으로, 독특한 점은 당시로서는 가장 보편적인 TV였던 브라운관(CRT) TV의 현실적인 기술적 특성을 고려해 색공간은 기존의 다른 색공간들에 비해 오히려 일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012년에 ITU에서 제정한 UHDTV(Ultra High-Definition Television)규격(ITU-R BT.2020)은 해상도 증가 뿐만 아니라 색공간도 크게 확대됐습니다. UHDTV의 색공간은 뒤에서 다룰 IT분야의 색공간인 sRGB, Adobe RGB와 영화용 규격인 DCI-P3 등 상용화된 대부분의 색공간을 수렴합니다.

 

IT 분야의 색공간

IT 분야에서는 현재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2가지 색공간인 sRGB와 Adobe RGB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sRGB(standard RGB)는 1996년 미국의 Microsoft社와 HP社가 협력해 만든 모니터, 프린터 및 인터넷용 표준 RGB 색공간입니다. sRGB는 대부분의 브라운관(CRT) 모니터들이 비슷한 색으로 재현된다는데 착안해 모니터, 스캐너, 디지털 카메라의 평균값으로 정의된 색공간입니다. 때마침 HDTV의 색공간인 ITU-R BT.709 규격이 sRGB에서 정의한 색공간을 만족해 동일한 좌표를 기준으로 사용하게 됐으며 따라서 HDTV와 sRGB의 색공간 또한 일치합니다. 현재 sRGB는 IT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색공간 규격으로 각종 IT 기기들과 가장 호환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를 인쇄하거나 인화할 때에는 컬러 표현의 한계를 보인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Adobe RGB는 Adobe社(그래픽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 제작사)가 1998년에 제안한 색공간입니다. sRGB의 색공간은 인쇄물에 주로 사용하는 4원색 잉크 색상인 CMYK(Cyan Magenta Yellow and (Black)Key)용 컬러 프린터에서 색상 표현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 새롭게 제안됐습니다. 특히 Cyan(하늘색)과 Green(녹색) 표현 영역이 협소해 해당 색상 표현력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Adobe RGB의 색공간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의 색좌표(삼각형에서 꼭지점)는 sRGB와 동일하게 하되, 녹색 좌표는 CIE 1931에서 위로 더 이동시켰습니다. 이로써 녹색 계열의 색상 표현이 더 풍부해졌습니다.

 

영화 분야의 색공간

가정 전통적이고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영화 기록매체는 바로 필름(Film)입니다. 따라서 필름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필름 프로젝터의 특성을 고려해 필름 영화의 색공간은 정의됐습니다. 필름 프로젝터는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프로젝터의 램프 광원(光源)으로 주로 쓰인 것은 카본 아크 램프(Carbon Arc Lamp)였습니다. 이 램프를 활용한 필름 프로젝터는 빛의 3원색인 Red, Green, Blue 외에도 Cyan과 Magenta를 함께 사용해 5원색(5 Primary Color)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필름 색공간은 5각형의 모습을 갖춥니다.

영화도 TV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하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를 전후해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와 영화 장비 업체들이 중심이 되어 디지털 영화를 위한 연구와 관련 장비 개발이 시작됩니다. 2002년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주축이 되어 디지털시네마 표준 개발을 위해 구성한 협력 기구인 DCI(Digital Cinema Initiatives)를 설립하고, 2005년에는 DCI 표준 규격을 제정합니다.

DCI는 필름과 다르게 색공간을 구성하는 원색을 Red, Green, Blue의 3원색으로 지정했습니다. 원색(Primary Color)을 3개를 사용했기 때문에 DCI-P3라고 부릅니다. 3원색이 사용된 이유는 디지털 영화에 사용되는 제논 프로젝터의 광원인 제논아크 램프(Xenon Arc Lamp)의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제논 램프는 광원중에서 자연광(태양광)에 가장 가까운 빛을 내기 때문에 연색성(Color Rendering Properties)이 좋아 상당히 자연스러운 색상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영화 시스템에서 사용하기 위한 차세대 색공간 개념으로 ACES(Academy Color Encoding System)가 있습니다. ACES는 미국의 AMPAS에서 개발한 후반 영상작업(Color Correction, Color Grading)을 위한 컬러 작업 공간(Color Working Space) 규격으로 50여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2004년부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 AMPAS(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 Sciences,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 영화의 예술,과학 분야의 발전을 맡은 전문 단체

ACES는 현재의 다양한 디지털 카메라 기술에 대응하고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색표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컬러 이미지 변환(Encoding) 규격으로 카메라에서 캡쳐된 정보를 모두 보존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가시광선 영역 전체(Spectrum Locus/Visible Gamut)를 포함하는 색공간입니다.

오늘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색공간의 종류와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미지와 영상의 색을 더 세밀히 표현하는 개념인 색심도(Color Depth)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