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통상 4K 해상도(3840X2160 픽셀)의 등장은 미디어 시장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4K는 풀 HD(1920X1080 픽셀)의 4배 해상도를 자랑하는데, 이전 대비로 훨씬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배우들의 모공 하나하나, 얼굴을 찡그릴 때의 근육과 주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미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4K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유튜브에서도 4K 영상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작되는 미디어 중에는 새로운 영화는 물론, 오래 전 영화들이 ‘리마스터(Remaster)’라는 이름 아래 복각돼 다시금 관객들 앞에 나서기도 합니다.

리마스터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해당 매체의 원본을 현 세대 기준에 맞추어 재가공’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과거 비디오 테이프로 나왔던 영화를 DVD나 블루레이로 새로 발매하며 화질과 음질을 대폭 올리고, 본래의 의도를 최대한 정확히 전달하도록 교정 작업 등을 거치는 것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게임 쪽에서도 리마스터의 흐름은 눈에 띕니다. 게임기들이 배불뚝이 CRT 모니터와 브라운관 TV를 버리고 HD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2007년. ‘HD 리마스터’라는 이름 아래 일본 소니사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3(Playstation 3)로 전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2의 명작들이 하나 둘 재발매 됩니다.

▲ 플레이스테이션3에서 HD 리마스터 되어 발매된 파이널 판타지X/X-2(출처: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

이후 배급사들이 앞다투어 과거 명작을 현세대 게임기로 발매하며 리마스터는 하나의 트렌드가 됩니다.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전에 나온 게임에 고해상도 지원을 추가하는 동시에 현세대 게임기 호환성과 편의성을 잡아서 발매하는 식입니다.

2017년에도 이런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2D 게임들이 대상인 게 차이라면 차이겠네요.

2D 게임 리마스터는 애니메이션처럼 캐릭터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새롭게 그려 줘야 합니다. 캐릭터의 외형을 구성하는 껍질 격인 ‘텍스처(Texture)’만 한 번 바꿔주면 계속 쓸 수 있는 3D에 비해 작업량 부담이 큰 편이죠. 그래서인지 리마스터 붐이 불던 초반에만 잠시 반짝 2D 게임 리마스터 열풍이 불고, 이후로는 3D 게임들 위주로 진행되곤 했습니다.그래도 노고가 큰 만큼 2D 리마스터의 효과는 무척 크게 다가옵니다. 과거 2D 게임의 그래픽은 기술적 한계로 캐릭터의 눈코입조차 알아볼 수 없었던 저해상도 이미지일 때가 많거든요. 리마스터를 통해 그간 뭉개진 픽셀 덩어리를 보며 상상만 했던 부분들이 구체적인 묘사와 함께 현실로 다가오는 셈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게임이 이런 긴 노고를 거쳐 재발매 된다니, 벌써부터 궁금증이 드실 거라 생각합니다. 과연 어떤 게임들일까요?

가장 처음 언급할 사례는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입니다. 2017년 3월 말 발표된 ‘리마스터’ 정보에 따르면 리마스터를 거쳐, 올 여름에 새로운 모습으로 게이머를 찾을 예정이죠.

▲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대표 이미지(출처: 블리자드 홈페이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프레스킷)

본래 ‘스타크래프트’는 CRT가 대세였던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게임입니다. 그만큼 모니터 해상도는 매우 낮았고, 캐릭터들의 세부 묘사는 생략된 면이 많았습니다. 개발진 역시 아쉬움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개발 일지에서는 ‘저글링에게 손이 있었음을 깨닫고, 더욱 잘 드러낼 수 있게 됐다’라고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4K 해상도까지 대응해 나갈 예정입니다. 여기에 프로필 및 순위표, 단축키 재지정과 같은 편의 요소와 더불어 만화책 스타일의 캠페인 도입부 같이 본래 기획 의도를 더욱 강화한 콘텐츠가 추가된다고 합니다.

▲ 스타크래프트 '저글링' 캐릭터의 원본(좌측), 리마스터 버전(우측)을 비교한 이미지(출처: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홈페이지)

개발진은 고해상도로 게임 그래픽 전체를 일신하면서도, 플레이 감각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게임 소개에서는 “원작을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게임플레이와 핵심 요소는 그대로 유지되며, 더 높은 해상도의 그래픽을 만나 볼 수 있다”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입니다.  '리니지'는 신일숙 화백의 장편 만화를 원작으로 해 만들어진 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역할수행 게임)으로, 올해로 19년차를 맞는 장수 타이틀입니다.

리니지M의 모토도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와 마찬가지로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입니다. 제시한 특징부터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모바일로 구현했다’고, 그래픽에서도 원작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모습입니다. 등장 인물에 일러스트가 추가되는 등 세세한 부분에선 묘사가 섬세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원작의 약간 투박한 듯한 모습을 모바일 그대로 옮기는 데 집중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 리지니M 대표이미지(출처: 리니지M 공식 페이스북)

몬스터로 변신해 게임을 즐기는 ‘변신’, 길드 개념인 ‘혈맹’, 다른 이와 싸움을 벌이는 PK(Player Kill) 같은 리니지의 특징격 시스템도 빼놓지 않고 철저히 구현해 뒀습니다. 원작의 추억까지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개발진의 의도가 이해되는 모습입니다.

시스템은 그대로되 모바일 환경에 맞도록 편의성을 강조해, 드래그해 다수를 편리하게 타깃팅하는 기능이나 자동 사냥을 지원하는 점도 눈에 띕니다. 이런 점이 과거 리니지를 즐긴 이들의 추억을 자극했는지, 출시 일주일도 되지 않은 6월 26일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위를 기록하며 순항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는 RPG(역할수행 게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Planescape : Torment)’입니다. 서구권에서 역대 최고의 RPG를 꼽을 때 꼭 빠지지 않는 게임으로, 이 게임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으나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인 스토리와 대화문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았습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를 통해 정식 발매된 바 있죠.

▲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Planescape : Torment)(출처: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

이 게임이 발매 16년만인 2017년 4월, 업그레이드 버전인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인핸스드 에디션’으로 돌아왔습니다. CRT 모니터에서도 흐릿하게 보였던 원작의 640X480 해상도를 벗어나 4K 해상도를 지원하고, 리마스터된 그래픽과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편의성 역시 현시대에 맞게 개선됐습니다. 개발진은 원작자인 크리스 아벨론(Chris Avellone)이 다시금 참여해 게임을 철저히 다듬은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원작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 게임을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선정해 추가했다고 합니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핸드폰과 태블릿에서도 편히 즐길 수 있도록 전용 인터페이스가 추가된 점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인헨스드 에디션 플레이 장면(출처: 플레인스케이프 공식 홈페이지 프레스킷)

이렇게 복각된 게임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래픽과 편의성은 좋아지되, 추억은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이런 게임들을 즐겁게 즐겼던 게이머라 하더라도, 발매된 지 십 년이 넘은 게임을 다시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픽은 떨어지고, 조작은 불편하고…가끔은 설치나 실행부터 말썽일 때도 있습니다. 추억은 추억 그대로 남겨둬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리마스터는 이런 장벽을 해소하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픽과 편의성을 개선해, 보거나 즐기는 데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죠. 물론 ‘돈벌이를 위해 재발매한다’는 논란이 있는 타이틀도 있지만, 그래도 단순한 추억팔이로만 보기에는 위 게임들이 보여 준 노력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혹여 과거에 이 게임들을 즐겨 보셨다면, 오늘 한 번 그 때의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