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잊었는데 무성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유럽 SF 영화의 클립을 본 적이 있다. 남자는 화상통화가 가능한 전화기로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사가 참 고풍스럽다.

"지금 아쉬운 건 영상전화를 통해서만 당신의 아름다움을 예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는 시대의 아이들이며 우리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는 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시간대에 갇혀 있다. SF는 그런 죽은 미래의 환영들을 보존하는 일종의 박물관이다.

 ▲ 1990년에 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 2] 속 화상통화 (이미지 출처: www.movie.naver.com)

위의 영화에서 예언한 고풍스러운 예언은 어디가 틀렸을까. 물론 당시 사람들에겐 당연하게 여겨졌던 성역할의 고정관념은 빼고. 일단 우린 탁자 위에 놓인 동그란 모니터를 통해 화상통화를 하지 않는다. 화상통화를 하는 기술은 있고 화상통화 역시 가능하지만 화상 통화만을 위한 기계는 과거에 생각했던 것만큼 많지 않고(대부분 현관에 방범용으로 달아놓는 것 같다) 애당초부터 화상통화에 대단한 매력을 느끼지도 않는다.

심지어 음성 통화의 매력도 이전만 못하다. 문자가 더 편리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저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아직까지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죄송.) 더 많은 시청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전화 통화의 진화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플로이드 박사의 화상통화 모습(이미지 출처: www.imdb.com)

마찬가지로 플로이드 박사가 궤도에 떠 있는 우주정거장에서 어린 딸과 공중전화로 화상 통화를 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면도 유행에서 지났다. 워낙 전체 디자인과 잘 어울리고 구현도 잘 해놔서 그렇게 구식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틀린 점이 하나 더 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전화기는 더 이상 집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화상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대부분의 기계들 역시 사람들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스마트폰을 예견한 영화 [스타 트렉]

여기서부터 [스타 트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끝내주는 휴대폰이 나오면 영어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개 제품 봤어? 트라이코더가 따로 없다니까!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쑥 들어갔다. 이유는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 TV 시리즈 [스타 트렉] 속 커크 함장이 트라이코더를 사용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www.geekexchange.com, ⓒParamount Pictures)

트라이코더는 [스타 트렉]이 예언한 수많은 모바일 기기 중 하나이다. 손 안에 들어가는 작은 컴퓨터. 데이터 분석도 하고 스캐닝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과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더 발전되어 있는 미래의 기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를 고안하면서 [스타 트렉]에 나오는 작은 기기들을 목표로 삼았다. 트라이코더, 커뮤니케이터.

▲ TV 시리즈 [스타 트렉: 오리지날 시즌 2]에서 커크 함장이 커뮤니케이터를 사용하는 모습

▲ 영화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 속 커뮤니케이터를 사용하는 장면(이미지 출처: www.movie.naver.com)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비유가 쑥 들어가버렸다. 우리의 기술이 미래 [스타 트렉]의 가상 기술을 온전히 따라잡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박하고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디자인. 지금 [스타 트렉] 시리즈를 보면 이 작은 기계들은 디자인이 아주 이상하다. 물리적 입력 장치가 지나치게 크고 디스플레이가 이상하게 작다.

▲ 영화 [스타 트렉: 인투 다크니스] 속 커뮤니케이터를 사용하는 장면(이미지 출처: www.movie.naver.com)

묵직한 게 닌텐도 DS 같으면서 디스플레이는 웬만한 스마트 워치보다 작은 것이다. 어떻게 저 작은 창문을 통해 나오는 정보로 작업을 할 수 있지? 심지어 [스타 트렉: 딥 스페이스 나인] 시리즈의 모 캐릭터는 트라이코더로 책(미키 스필레인의 소설이었다. 그 정도 미래엔 당연히 잊혔을 거라 생각했는데)까지 읽은 모양인데 상상만 해도 갑갑하다. 한 문장 읽고 페이지 넘기고, 한 문장 읽고 페이지 넘기고.

[스타 트렉]의 주인공들이 늘 작은 모바일 디스플레이 때문에 고생했던 건 아니다.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때만 해도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은 지금의 태블릿과 거의 흡사한 기계를 들고 다녔다. 그런데 이 넓직한 화면을 트라이코더와 같은 기기에 적용할 생각은 신기할 정도로 들지 않았던 것이다.

▲ 영화 [스타 트렉: 비욘드]의 엔터프라이즈호의 내부 모습(이미지 출처: www.movie.naver.com)

그 때문에 요새 [스타 트렉]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고민한다. 어떻게 과거의 디자인에 대한 기억과 미래 기계에 대한 요새 관객들의 기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까? 곧 나온다는 [스타 트렉] 시리즈 [디스커버리]는 더 걱정된다. 이 시리즈는 오리지널 시리즈보다 시대배경이 더 과거인 것이다. 왜 [스타 트렉] 만드는 사람들은 [보이저] 이후의 미래에 관심이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올해 방영 예정인 TV 시리즈 [스타 트렉: 디스커버리] 오피셜 트레일러

 

영화 속 미래 디스플레이의 진화는 계속 된다

이제 모바일 기기는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다들 하나 이상 갖고 있고 지금 나도 그 기계 중 하나로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BBC [셜록]에서 원작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넣은 장치도 모바일 기기였다. 21세기의 명탐정은 니코틴이 아닌 모바일 기기의 중독자인 것이다. 파이프 담배와 트위터 중 어느 것이 더 유해한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있을 것이다.

▲ [셜록 시즌 3]에서 스마트폰을 사용 중인 주인공, 셜록 홈즈(이미지 출처: www.bbc.com)

이와 함께 이를 영화에 표현하는 방법도 발전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두 친구의 문자 대화를 화면 위에 뜨도록 처리했는데, 지금은 일상적인 표현이지만 당시엔 신선했었다. 당시 그 영화를 본 외국 평론가가 여기에 대해 신기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국이 그렇게 모바일 통신이 발전한 곳인지 몰랐어!"

지금 모바일 기기의 화면은 우리에게 제2의 망막이며 실제 세계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제공한다. 당연히 화면 위의 정보와 물리적 환경은 뒤섞이게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현대의 디자인에 만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대를 기반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기술 예측의 의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적인 이유 때문이다. 모두가 작은 모바일 기기를 노려보며 타이핑하고 있는 장면은 솔직히 좀 꼴사납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설경구 캐릭터는 각자 휴대폰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 지하철 안을 보고 반짝이는 나비들을 연상했지만 그것도 한 때 감상이고.

▲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 중에서(이미지 출처: www.movie.naver.com)

수많은 대안들이 있다. 최근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는 스마트 안경과 스마트 컨택트 렌즈를 밀고 있나보다. 이단 헌트가 저 멀리 다른 도시에 있는 벤지와 대화를 나누고 지금 바라보고 있는 장면의 영상을 그쪽으로 넘기는 동안, 우리는 드러나 있는 기계를 하나도 보지 못한다.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시신경과 직접 연결되어 물리적 디스플레이 기기가 전혀 필요 없는 장치를 상상할 수도 있는데 영화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지는 모르겠다.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블로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