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야, 다 됐어? 얼른 나와봐~ 스파이더맨 얼굴 좀 보자!”

“나 나갈 테니까 다들 웃지 마! 아빠, 내가 조금만 더 어렸어도 엄청 좋아했을 거야. 근데, 나 이제 고등학교 올라간다고~ 윽! 이건 아니잖아. 너무 창피해~”

사춘기인 막내아들 준이가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나타나야 하는데 무엇이 그리 쑥스러운지 도통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덕분에 가족과 10분째 사투 중. “인마! 엄마는 마흔 살인데 피오나 분장했어. 잔말 말고 얼른 나오셩~” <슈렉>의 주인공 녹색 괴물 ‘슈렉’으로 분장한 아빠 김광기 차장과 그의 파트너 피오나 공주로 변신한 아내 유경숙 씨. <캐리비안의 해적>의 괴짜 해적 ‘잭 스패로우’가 된 큰아들 준영이도 어색하게 변한 스스로의 모습이 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자기야, 차라리 지난 달 교복파티 신청하지 그랬어. 이거 영~ 민망하다.”

“그래도 당신은 공주잖아. 난 괴물이야.”

가족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준이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터덜터덜 걸어 나온다. 웃지 않기로 한 준이와의 약속에 다들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급기야 입꼬리에 경련이 올 듯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이게 갑자기 웬 할리우드 놀이동산 시추에이션? 그래.

좀 웃기긴 하지만 2013년 그들이 나타나고야 말았다! 삼성디스플레이를 발칵 뒤집을 유쾌·상쾌·통쾌 개성 만점 김광기 차장 가족! 이제부터 그들의 영화 놀이가 시작되니 자, 레뒤~~ 액션! 홍일점 엄마, 질투는 나의 힘! 슈렉과 피오나, 누가 짝꿍 아니랄까봐 김광기 차장은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아내 뒤만 졸졸 따라다닌다.

“가면을 쓸까?”

“아니야, 당신은 가면 안 써도 슈렉이랑 닮은 거 같아!”

“뭐라고? 아니 이 사람! 이 인물이 어딜 봐서 슈렉이지? 한때는 장동 건 뺨치게 잘 나가던 인물이라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화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정말 슈렉과 피오나 커플처럼 사랑스럽다. 어쩜 이렇게 캐릭터를 잘 골랐지? 흠흠. “피오나 공주, 이리 바짝 좀 붙어봐. 거 영화에서 보면 둘이 춤도 추던데 우리도 한번 당겨보자고~”

“영화만 보면 잠만 자는 사람이 그건 또 어떻게 기억한데~”

영화는 시작과 끝만 보면 내용을 다 알 수 있다던, 그래서 늘 영화 중반부터는 숙면 모드에 돌입한다는 남편이 영화를 꿰뚫고 있다는 듯 말하자 아내 유경숙 씨는 영 미심쩍다는 눈초리다. 혹시 어디서 영화 리뷰, 또는 내용 요약 같은 걸 보고 온 건 아닌가 싶은 것. 그래도 남편의 제안이 싫지는 않은지 못이기는 척 남편 곁에 찰싹 붙어 왈츠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작년에는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올해 업무가 바뀌면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생겼어요. 덕분에 이렇게 특별한 추억도 쌓고, 너무 좋네요. 당신도 좋지?”

“그럼~ 좋지. 솔직히 달랑 한 장밖에 없는 가족사진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아이들이 더 크고 바빠지기 전에 추억을 남기니까 너무 좋아. 고마워, 여보~”

“아빠! 우리도~ 땡큐!”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두 아들도 타이밍을 놓칠세라 애교 섞인 표정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집이라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에 서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너무나 서슴없이 애정 표현을 나누는 가족. 촬영 시작 전 “집안의 분위기를 담당할 귀여운 딸 하나 더 낳고 싶었다”고 말하던 김광기 차장이건만 딸 못지않게 애교를 부리는 형제의 모습에 그만 “허허”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세 사람, 붕어빵처럼 닮았죠?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밤 근무를 마치고 와서도 소풍이며 운동회에 함께했는데, 점점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더라고요. 요즘도 많이 바쁘지만 시간 내서 애들이랑 1년에 두 번 정도는 꼭 마라톤에 참가해요. 찰떡궁합처럼 너무 잘 맞아서 어떤 땐 질투날 정도라니까요.”

세 남자의 촬영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내 유경숙 씨가 섭섭한 마음을 드러낸다. 집안의 유일한 홍일점인데 엄마는 챙기지도 않고 세 남자만 꼭 붙어 있으니 왜 안 그럴까. 공주처럼 떠받들어도 모자랄 판에! 그 마음을 눈치챈 건지 막내아들이 엄마를 조심스럽게 스튜디오 한가운 데로 부른다. 별 생각 없이 가보니 글쎄 센스만점 두 아들이 꽃 한 송이씩을 내밀며 엄마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엄마가 꽃을 엄청 좋아한다는 데 착안해 스튜디오 한편에 놓여있던 인조 꽃을 활용한 것. 말 그대로 서프라이즈 이벤트, 이런 귀여운 소년들 같으니라고!

“아빠는 제가 태어날 때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탄생의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대요. 그래서 엄마가 지금까지도 얘기하는 게, 그때 아빠가 꽃 한 송이도 안 들고 병원에 찾아온 게 너무너무 서운했다는 거예요.”

이토록 기특하고 사려 깊은 아들이라니. 역시 큰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겉보기에는 한없이 장난기 넘치고 어려 보이는데 어느덧 연약한 엄마를 아끼고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있는 아들. 우스꽝스럽고 엉뚱하지만 나름 현명한 처세술을 지닌 반전 매력의 소유자 ‘잭 스패로우’와 일부 닮은꼴이다.

우리 가족 영화는 절찬리 상영 중

“아, 무거워! 아빠, 팔에 힘 좀 더 줘봐~”

“아니, 힘 좀 쓴다는 영웅들이 다들 왜 이리 약해? 여자 하나 못 들고.”

‘힘’ 하면 빠지지 않는 세 남자인데, 오늘은 왜 이리 에너지 발산을 못 하는지 엄마를 들어 올리느라 땀까지 삐질삐질 흘려가며 고생 중이다. 실망한 표정의 엄마가 “오늘 나 못 들면 저녁밥 없다!”며 강력히 어필하자 그제야 괴력을 발휘하는 세 남자. 하지만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는 “팔 떨려서 잠깐 촬영 좀 쉬어야겠어요”라며 엄살을 피운다. 세 남자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유경숙 씨. 이 집에서 가녀리고 아름답기만 한 여왕 대접 받기란 이다지도 힘들다.

“여왕이요? 무슨, 동기애로 지내는 거죠.”

‘동·기·애’라니, 푸핫!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덤덤하고 쿨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그녀. 서프라이즈 이벤트도 낯 뜨거워서 싫어할 만큼 털털한 성격이란다.

“에이, 그래도 이벤트 받으면 좋아하잖아! 이 사람이 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해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 16주년 결혼기념일 전날 친구들이랑 여행을 다녀온다기에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탤런트 최수종이 한다는 것처럼 좀 과하게 준비했죠. 현수막 걸고, 풍선 붙이고, 촛불로 하트도 만들고…. 그랬더니 동네 아줌마들한테 자랑한다며 그걸 한 달을 붙이고 있더라고요. 하하. 너무 기쁘게 받아주니까 해주는 사람 마음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죠.”

평소에도 아내를 위한 이벤트를 종종 한다는 김광기 차장. 툭툭 내뱉는 말투와 달리 의외로 섬세한 매력이 있는 이 남자, 매력 있다. 어디 그뿐이랴. 사랑에도 얼마나 정열적이면 첫 만남 때 바로 아내의 입술을 훔쳤다고.

“1994년에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어쩜 그렇게 불꽃이 튀던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져요. 아내가 정말 예뻤거든요. 피오나 공주가 변하기 전 모습이랄까?” “그럼 뭐야! 지금은 망가졌다는 거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콩닥콩닥 귀여운 말다툼과는 달리 남편에게 강펀치를 날린다. 잽싸게 피해보지만 아내의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날아오는 그것을 피하기는 어려웠던 그. 바로 꼬리를 내린다.

“에이~ 엄마, 아빠 그만 싸우시고, 우리 준이 졸업식 날 <베를린> 보러 가요!” 스튜디오 한편에서 핸드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던 형제가 새로운 스케줄을 제안한다. 가족끼리 영화 보러 간 적이 거의 없어 극장의 추억도 없었는데 이참에 아예 영화를 직접 볼 건가 보다.

“처음에는 옷도 어색하고 민망했는데, 오늘 아니면 제 평생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그래서 최대한 즐겼어요. 요즘 아빠가 너무 바쁘신데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렇다. 사소할 수도 있지만 실은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이벤트. 이 가족은 오늘을 시작으로 인생의 2막을 만들어가려 한다. 함께할 날이 생각보다 무수히 많지는 않기에 기회가 있을 때 더 많은 추억을 나누려는 것. 이 가족이 만든 ‘인생’이란 영화는 아직도 절찬리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