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및 직장에서 외래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보고서나 회의 중에 본인도 모르게 마구 섞어서 사용하게 되는 외래어.

나랏말싸미 서양과 다른데 우리말을 놔두고 왜 자꾸 외래어를 사용하게 될까요?

 

글_경향신문 어문팀 엄민용 부장

일러스트_김영진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외래어 남용은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

TV 프로그램 제목에 곱디고운 우리말보다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더 많이 쓰이고, 출연자들은 뜻도 제대로 모르는 외래어를 마구 쏟아냅니다.

‘엣지(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에지’가 바른 표기임)’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엣지 있다’는 오래전부터 패션계에서 “독특하고 개성 있다”라는 의미로 쓰이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한 드라마에서 유행한 이후 아주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본래 ‘엣지(Edge)’는 “모서리” “(칼 따위의) 날” “위기”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탁구를 치다 보면 공이 모서리에 맞아 불규칙하게 튕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바로 ‘엣지’를 씁니다.

또 ‘엣지 있다’의 어원 격인 ‘커팅 엣지’(Cutting Edge)는 “최첨단” “활력소” 등의 뜻으로도 쓰이지만, “말이나 글이 신랄하고 날카롭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부장님, 오늘 정말 엣지 있으세요”는 대체 무슨 뜻으로 쓴 말일까요?

쓴 사람은 “멋지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인데, 듣는 사람은 “오늘 정말 예측불허인 행동을 하셨어요”

또는 “오늘 정말 날카로우셨어요”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무분별하게 쓴 외래어는 종종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곤 합니다.

특히 외래어 사용에 익숙한 젊은층과 그렇지 않은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괴리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정확한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직장 내에서는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회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외래어를 남발해 상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허 대리: 부장님, A사 제안은 ‘리스크’가 커 ‘리젝’했습니다.

B사의 전체 ‘가이드라인’이 좋으니 그것으로 ‘컨펌’해주세요.

 

이 외에도 ‘더치페이(각자 부담)’나 ‘노하우(비법, 비결, 기술, 방법, 경험)’ ‘리더십(지도력)’ ‘세일(할인판매)’ ‘모티프(동기)’ 등은 거의 일상 생활어가 돼버렸습니다.

또 보고서 등에 “마켓의 팩트를 무시한 채 매너리즘에 젖은 로드맵으로는 지금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위처럼 외래어를 덧칠하는 사례도 종종 접합니다.

 

그러나 이거 아세요? ‘발표 자리’에서 최고의 꼴불견이 바로 ‘외래어 남용’이라는 것을요.

지난해 8월 한 출판사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꼴불견인 유형은?”을 조사한 결과 37.7%가 “외래어를 남용해 발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을 꼽았습니다.

또는 “시장의 현 상황을 무시한 채 타성에 젖은 계획으로는 지금의 적자 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로 얘기하면 의미전달이 아주 명확해집니다.

 

넓게 보면 외래어 남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말 찌꺼기 사용도 직장 내 언어 씀씀이에서 하루바삐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유도리’가 없어” “영업을 하려면 ‘마도구찌’를 잘 알아야 해” “보고서에 ‘가라’로 적었다가 부장한테 ‘쿠사리’만 잔뜩 먹었다” 따위로 말하는 것들 말입니다.

유도리는 융통성, 마도구찌는 창구, 가라는 가짜, 쿠사리는 꾸중 등 우리말로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식민지배할 때 가장 힘쓴 일이 우리말글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말과 글에는 그 민족의 정신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숱한 고난 속에서도 우리말글을 건강하게 지켜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후손인 우리가 외래어를 남발하고, 특히 일본말 찌꺼기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은 크게 반성할 일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구촌에서 외래어를 전혀 쓰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컴퓨터·텔레비전·골프 등 우리말로는 쓸 수 없는 말도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우리말로 충분히 쓸 수 있는 것까지 외래어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한 주시경 선생의 말을 한번 곰곰 되새겨봐야 할 요즘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