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숨 쉬듯 그림을 그렸으나, 작품을 팔지 못한 화가는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 살 돈도 부족해 그림 뒷면에도 그림을 그렸고, 완성한 그림 위에 물감을 덧칠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모델 살 돈이 없어 자신을 모델 삼아 거울을 보고 자화상을 그렸다.

 

아고스티나 세가토리(Agostina Segatori, 1841~1910)는 짝사랑이 전문이던 고흐와 실제 연인 관계였던 여성이다. 세가토리는 파리 클리쉬 대로에서 카페 겸 선술집 ‘르 탱부랭’을 운영했다. 고흐보다 열두 살 연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카페에 고흐 그림을 걸어줬다. 하지만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세가토리는 모델이 되어 가난한 고흐 앞에 섰다.

 

▲ 빈센트 반 고흐,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1887년, 캔버스에 유채, 55.5×47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다. 붉은 깃털 모자를 쓴 여성은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있다. 고흐가 괜찮다고 하면 금방 한 모금 빨아들일 생각인지, 담배에는 불이 붙어 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눈빛이다. 고흐와 세가토리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들이 사랑했던 시간은 캔버스에 박제되었다.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이 이 그림을 엑스선(X-ray)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밑그림에서 다른 모습의 여인 흉상이 또렷이 나타났다.

 

▲ 빈센트 반 고흐의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를 엑스선으로 촬영한 결과 나타난 밑그림.

 

 

빛의 과학, 어디까지 와 있나?

그림을 분석하는 방법에는 빛을 이용해 그림 표면 혹은 그 속을 직접 관찰하는 기법이 있다. 근래에는 광학 기술이 발전해 다양한 파장 대역의 빛이 비파괴 검사 형태로 미술품 분석에 이용되고 있다. 비파괴 검사는 검사 대상을 훼손하지 않고 현장이나 실험실에서 분석하는 방법이다. 여러 파장 대역의 전자기파를 이용해 검사 대상의 일부를 투시하는 형태로 검사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빛이 그림에 입사될 때, 내부에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의 영향으로 투과 또는 반사하는 빛의 양을 측정해 분석한다. 파장이 길어 침투 깊이가 깊은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하면 처음 그린 밑그림을 알아낼 수 있다. 테라헤르츠파 분광법은 시간 의존 분석법의 원리와 물질마다 다른 반사율을 갖는 광특성을 이용해 층위별 성분이 다른 그림의 특징을 알아낸다.

 

예를 들어 테라헤르츠 기술을 이용하면 벽화에 처음 그려진 그림을 읽어낼 수 있으며, 오래된 고문서를 열지 않고 페이지별로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 최근 미시건대학교 과학자들은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프레스코화 바깥 그림에 비치는 흑연으로 그려진 밑그림을 테라헤르츠파 이미징을 이용해 분석해냈다(2008). 이 방법을 적용하면 여러 번 덧그려진 미술작품도 층별로 그림 형태 및 재료 분석이 가능하다.

 

▲ 프레스코화를 테라헤르츠파로 촬영한 그림. Optics Communications 281, 527 (2008)

 

테라헤르츠파로 프레스코화를 분석했더니, 프레스코화 뒷면에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나비는 혼합된 탄소, 철, 산소 성분과 불에 탄 페인트 밑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흑연으로 그린 스케치 역시 두 개의 4mm 석고 기판 사이에서 테라헤르츠파 반사도를 측정했을 때 명확하게 드러났다.

 

▲ 테라헤르츠 투시로 책을 열지 않고 글자를 읽어낸다. Nature Communications 7, 12665 (2016)

 

미국 MIT 대학원 연구원들은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해 책을 열지 않고 읽어내기도 했다(2016). 그들은 최근 논문에서 한 페이지에 한 글자씩 인쇄된 책을 열지 않고, 9장의 글자를 정확하게 읽었다. 이 시스템을 사용해 기계 부품이나 의약품 코팅같이 얇은 층으로 구성된 모든 물질을 분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3차원 영상 기법을 접목해 평면으로 된 그림이나 벽화가 아닌, 입체에 대한 투시 분석도 가능하다. 이 기술은 ‘테라헤르츠 계산 단층 촬영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민속 공예품 마트료시카는 내부에 똑같이 생긴 좀 더 작은 크기의 인형이 여러 개 들어있다. 테라헤르츠 계산 단층 촬영법을 이용하면 이러한 목각 구조물 내부를 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에 그렸다가 다른 물감으로 뒤덮은 그림을 투시해서 볼 수 있는 기술까지, 빛의 과학은 끊임없이 진화해오고 있다.

 

▲ 테라헤르츠 계단 단층 촬영법을 이용하면 마트료시카 내부도 투시해 볼 수 있다.

 


궁핍했던 예술가가 날마다 그릴 수 있었던 비결

현재까지 그림 분석에 가장 널리 이용되는 빛 기술은 엑스선이다. 엑스선 장치를 이용해 그림 표면을 이루는 원소와 함량, 조성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엑스선을 이용하는 첫 번째 방법인 엑스선회절분광(X-ray Diffraction Spectroscopy, XRD)은 파괴분석법이다. 즉 안료를 일부 추출해 직접 분석한다. 일부 채취한 안료 샘플에 엑스선을 쪼이면 안료를 구성하는 재료의 원자 배열에 의해 방출되는 엑스선이 회절된다. 엑스선회절분광은 회절 패턴을 분석해 안료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의 조성과 양을 밝혀낸다.

 

▲ 빛의 성질에 따른 물리적 현상

 

두 번째 방법은 엑스선형광분광(X-ray Fluorescence Spectroscopy, XRF)으로, 비파괴 방식의 분석법이다. 즉 안료 일부를 그림에서 떼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 그림에서 특정 안료 표면에 엑스선을 쪼이면, 입사되는 엑스선은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안료 안에 들어 있는 원소들을 들뜨게 해 특성 엑스선을 방출시킨다. 이때 방출되는 빛을 ‘형광 엑스선’이라고 한다. 형광 엑스선의 파장에 따라 원소의 종류를, 강도에 따라 원소의 양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방법이 폭넓게 적용된다. 각 기술의 장단점이 있어 상호보완적으로 여러 가지 기술이 동시에 적용된다고 보는 게 맞다.

 

근래에는 폭넓은 파장의 빛을 모두 사용해 비파괴 검사 형태로 미술품 분석에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엑스선형광분광, 라만 분광법, 레이저 분광법(가시광선, 적외선, 테라헤르츠 광선 등) 등이 있다. 특히 파장이 긴 적외선이나 테라헤르츠 분광법을 이용하면 그림 밑면에 감추어 놓은 캔버스나 스케치까지 깊이 있게 투시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순서로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층별 정보도 알 수 있다.

 

엑스선 촬영을 통해 가난했던 고흐가 캔버스를 여러 번 재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검은 선으로 존재하는 여인은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던 시절(1881~1885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을 팔지 못해 가난했던 예술가는 캔버스를 재사용했다.

 

 

잃어버린 큐피드를 찾아서

2019년 독일 드레스덴 고전 거장 미술관에서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후, 외과용 칼을 이용해 2년간 정교한 작업 끝에 그림에 숨어 있던 큐피드를 찾아내 큰 화제가 되었다. 드레스덴 고전 거장 미술관의 복원전문가는 어둡게 칠해진 물감층 사이에 오염된 또 다른 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덧붙여진 물감층을 걷어내기로 했다. 사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에서 큐피드의 존재는 오랫동안 연구자들에 의해 언급됐다. 1979년 엑스레이를 이용한 투시 이미징 결과 그림 속 빈 벽에 큐피드를 그린 그림 액자가 있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이내 베르메르가 스스로 짙은 물감을 칠해 이를 뒤덮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근래에 와서 이 그림의 캔버스 바탕 층에 대해 다시 엑스선, 적외선 반사 영상 및 현미경 분석과 안료 분석을 했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은 적어도 베르메르가 죽은 후 수십 년 뒤에 덧칠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림에 큐피드 배경이 등장하면서, 그동안의 그림 해석을 뒤엎었다. 그림 속 여인은 연애편지를 읽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좌) 요하네스 베르메르,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1657~1659년, 캔버스에 유채, 83×64.5cm, 드레스덴 고전 거장 미술관 / (우) 베르메르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 현미경과 안료 분석으로 복원 중인 그림.


2019년 5~6월 잠시 드레스덴 고전 거장 미술관은 절반쯤 복원된 베르메르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을 공개했다. 그리고 곧 덧칠된 나머지 물감도 제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은 베르메르가 이후 그린 다른 그림 <버지널 앞에 있는 여인>에서 벽에 걸려있던 천사 그림과도 일치한다. 아마 벽에 걸린 큐피드 그림을 실제로 베르메르가 소유했던 게 아니었을까?

 

▲ 요하네스 베르메르, <버지널 앞에 서 있는 여인>, 1672년, 캔버스에 유채, 51.7×45.2cm, 런던 내널셔갤러리

 

빛은 화가의 가난 때문에 또는 실전처럼 반복된 연습 때문에 세상에 영원히 나오지 못했을 뻔했던 그림을 보여줬다. 고흐는 평생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않고 그림만 그렸다. 제대로 된 물감을 살 수 없어 싼 안료를 사용했다. 덕분에 고흐 그림은 색이 날아가거나 점차 변색되고 있다. 태양처럼 영원히 이글거릴 것 같던 <해바라기>도 차츰 시들고 있다.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를 엑스선으로 촬영한 그림은 화가가 가난과 힘겹게 싸웠던 시간을 오롯이 보여준다.

 

 

 


 

필자 / 서민아(물리학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연구로 2010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 201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합류해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나노-정보융합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어바웃어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