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에드워드 호퍼 전시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성황리에 마무리된 이후 국내 관람객과 애호가들이 더 이상 고전예술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대회화도 즐긴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5년여의 준비 기간 끝에 미국 휘트니 미술관을 어렵게 설득해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가 바로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입니다.

▲ 8월 20일 이전에 꼭 서울시립미술관에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3개 층을 모두 사용해 에드워드 호퍼의 다채로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인물 소개를 시작으로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호퍼가 영감을 얻었던 공간들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그의 영원한 예술적 동반자였던 부인 조세핀과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 휘트니 미술관의 파격적인 작품 반출을 통해 성사된 전시 ⓒ서울시립미술관
유화, 수채화, 판화 등 160여 점의 작품과 110여 점의 일러스트 및 기록물들을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국 휘트니 미술관의 파격적인 작품 반출을 통해 성사되었기에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입니다.
간혹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나 TV 속 광고에서 봤던 호퍼의 작품이 없다며 대표작이 없는 전시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는 관람객이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시선입니다.

▲ 〈푸른 저녁〉, 1914, 캔버스에 유채,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은 상징성을 가진 작품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40대의 자화상과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 <푸른 저녁>과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 걸어 놓고 감상했다는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먼 집들> 그리고 호퍼 본인이 가장 아낀 작품으로 꼽았다는 <이층에 내리는 햇빛>까지 시기별로 상징적인 작품들을 두루 선보이고 있습니다.

▲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먼 집들〉, 1930–33, 캔버스에 유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무척 사랑했던 작품. 백악관 집무실에 걸어 놓고 늘 감상했다고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평범하지만 비범한 그의 삶

▲ 좌 <맨해튼 다리> 우 <뉴욕 실내> 호퍼는 평생을 뉴욕에서 거주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미국 뉴욕주 나이액에서 태어나 20대 시절 3번의 유럽 방문 외에는 평생 뉴욕에 거주하며 미국을 벗어나지 않았던 호퍼는 근대 회화를 상징하는 대가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진처럼 그리는 작품이 아닌, 목격한 것을 자신의 감정으로 재해석하는 호퍼의 화풍은 일견 인상파의 그것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빛을 표현하는 방식과 작품 안에 인간과 풍경을 담아내는 방식에 독창성이 존재하기에 인상파에 대한 영향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구축해낸 예술가로 평가받곤 합니다.

▲ 〈뉴욕 에디슨 회사의 회보 표지 삽화〉, 1906–07, 종이에 펜과 잉크,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호퍼는 생계유지를 위해 일러스트 디자이너로 살아가며 돈을 벌어야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하지만 화가로서 에드워드 호퍼의 시작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성공을 꿈꿨지만 공허한 현대의 풍경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쉽사리 미국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생계유지가 필요했던 그는 일러스트 디자이너로 살아가며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일러스트와 판화는 감각적인 표현과 구도를 선보이며 향후 화가로서 성공할 자신의 모습을 일찌감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자화상〉, 1925–30, 캔버스에 유채,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40대 자화상 ⓒ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20대 <자화상>과 40대 <자화상>을 함께 만나볼 수 있는데요. 화가로서 인정받으며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40대의 <자화상>은 호퍼의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특유의 중절모와 담담한 표정 속에 담긴 강렬한 눈빛은 그의 재능이 황금기에 접어들었음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 스튜디오의 에드워드 호퍼, 1950, 사진: 조지 플랫 라인스 ⓒ서울시립미술관
오랜 시간 인내하고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견뎌내며 예술가로서 인정받은 그의 삶은 그저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기에 드라마틱한 빈센트 반 고흐나 스스로를 천재라고 칭한 살바도르 달리의 삶보다 큰 공감력을 갖습니다.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한 세기가 지난 현시대의 우리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단절과 고독을 깊게 경험한 현대인에게 거대하게 보이지만 막상 고독과 삭막함이 만연했던 뉴욕의 경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과도 같은 모습이기에 작품에 공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무언가 공허함이 느껴진다. ⓒ서울시립미술관
그의 전성기 작품인 <철길의 석양>을 보면 과거 서양미술에서 강조해온 투시점에 의한 원근법이 아닌 마치 우리가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찍은 스냅사진을 보는 것 같습니다. 수평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풍경 한쪽에 수직으로 뻗어 올라온 초소의 모습을 통해 대자연 속에 뿌리내려 공허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 석양이 품고 있는 무수한 빛깔의 색감은 장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거대한 낭만 속에서 느꼈을 공허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캔버스에 유채, 호퍼가 가장 아끼는 작품 중 하나 ⓒ서울시립미술관
그의 작품에는 인간이 부재하거나 소수의 인간만이 등장하며, 그 인간들은 함께 있지만 단절되어 있는 감정선을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퍼 본인이 아꼈던 작품으로 유명한 <이층에 내리는 햇빛>을 보면 오른쪽 배경으로 보이는 대자연의 숲속에 인간에 의해 건축된 집이 자리하고 있고, 그 집의 2층 테라스에서 햇살을 즐기는 남녀가 등장합니다. 언뜻 부부, 연인 혹은 부녀관계로도 볼 수 있는 그들은 함께 있지만 각자의 사유에 빠져 자신만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호퍼의 작품이 화사한 빛과 다채로운 색감을 머금고 있음에도 클로드 모네나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화사함과 환희가 아닌 메마름과 공허가 느껴지는 것은 그 역시도 사람들과의 교류보다는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며 화가로서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일한 뮤즈이자 동반자

▲ 〈트루로 집에서 스케치하는 조〉, 1934–38, 종이에 수채, 연필, 호퍼의 하나뿐인 사랑이자 그의 뮤즈, 부인 조세핀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가 끊임없이 예술을 연구하고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하나뿐인 사랑이자 뮤즈 그리고 예술적 동반자인 부인 조세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일컬어지곤 합니다.

▲ 조세핀 니비슨 호퍼, 〈작가의 장부 1권〉, 1913–63, 그녀도 화가였지만 남편을 위해 조력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시립미술관
화가로서의 꿈을 접은 채 호퍼의 모델이 되어주고 작품의 정보와 거래 장부를 함께 정리하며 그의 전시 준비에 헌신한 조세핀은 거의 모든 작품 속 여성 모델로 등장합니다. 마치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던 것처럼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의 성공에는 훌륭한 조력자의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 에드워드 호퍼展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는 생전 인터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에드워드 호퍼의 삶 그리고 그가 언어를 초월해 전하고 싶었던 예술적 순간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내 삶의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를 통해 한 번쯤 자신의 오늘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필자 / 김찬용 도슨트
우리나라 1세대 전시 해설가로서 16년간 80여 개 전시에서 해설하며 미술계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불려왔다. 저서로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이 있으며, 현재 다수의 전시 해설을 맡고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