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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는 반 고흐 미술관이다. 인터넷으로 미리 티켓을 사면 당일 매표소 앞에서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가이드의 설명도 훌륭하다. 한국어 설명도 제공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37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다. 그 가운데 화가로 산 기간은 고작 10년이다. 그는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무려 9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200여 점은 죽기 두세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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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은 세계 최대 고흐 컬렉션을 자랑한다.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선물했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은 동생 테오(Theo van Gogh, 1857~1891)와 아내 요한나, 그리고 테오의 아들 빈센트에게 상속됐다. 삼촌의 이름을 물려받은 빈센트는 삼촌의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정부에 소장 작품을 영구 대여했다. 덕분에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반 고흐 미술관은 <해바라기>, <아를의 침실>, <자화상>, <까마귀가 있는 밀밭> 등 고흐의 유화 200여 점과 소묘 500여 점,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700통 이상의 편지를 소장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가진 화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많은 작품을 남겼기에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흐의 그림 속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 있다. 정물, 사람, 풍경 어느 하나 단순한 관찰에 머문 작품이 없다. 어떻게 모든 그림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을까? 만약에 한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유한하다면 고흐는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응축된 에너지를 전부 소진했던 걸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고흐의 색채 실험실, 아를 라마르틴 광장 2번지
파리에서의 생활에 피로를 느낀 고흐는 35세가 되던 1888년 예술가만의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 남프랑스 ‘아를(Arles)’로 이주한다. 아를에서 머문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200여 점의 그림을 그릴 정도로 고흐는 아를을 사랑했다. 그의 작품을 파리 도심에 살던 시절과 이후 시절로 분류할 만큼, 아를에서의 생활은 작품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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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2×91.5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고흐는 라마르틴 광장 근처에 노란 집을 얻었다. 고흐의 초대에 아를로 온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9주 동안 노란 집에 머물며 고흐와 영감을 주고받으며 작업했다. 그러나 두 사람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급기야 고흐가 자신의 귓불을 자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를의 노란 집은 유토피아를 꿈꾸던 고흐의 순수했던 염원과 갈망, 결국 떨쳐내지 못했던 깊은 고독과 고통의 몸부림이 공존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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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집 스케치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고흐는 편지에 그림의 색에 대해 묘사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노란 집 스케치를 함께 보내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 그림은 코발트빛 하늘과 유황색 태양빛 아래 있는 집과 주변을 그린 거야. 매우 어려운 주제지! 그러나 정확히 내가 극복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지. 태양 아래 노란색 집들과 청색 하늘의 비할 데 없는 산뜻함이란 굉장하거든. 바닥도 온통 노란색이야.”
고흐는 기존 화가들이 명암 대조를 이용해 사물을 강조하고 원근감을 표현했던 것과는 다르게, 색채 대조를 통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고흐는 노란 집을 모티프로 색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는 짙은 파란 하늘 아래 태양빛을 받아 황금처럼 빛나는 집과 길을 묘사했다.
고흐가 사랑했던 두 가지 색
고흐는 코발트 블루(cobalt blue)와 크롬 옐로(chrome yellow) 물감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그림에 사용한 코발트 블루의 미묘한 색감이 파리에서 아를로 이사한 이후 크게 바뀌었다. 고흐 그림을 분석하면 코발트 블루 색상에 포함된 니켈, 코발트, 인산의 상대적인 비율이 시기별로 확연히 다르다.
파리에서 그는 적어도 네 가지 이상 다양한 종류의 코발트 블루를 사용했다. 상대적으로 니켈 함량이 높고, 인이 들어있지 않은 코발트블루는 파리에서 미술 재료 상점을 했던 탕귀 영감이 판매하던 물감이었다. 당시 고흐가 어울리던 아르망 기요맹(Armand Guillaumin, 1841~1927),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폴 시냐크(Paul Signac, 1863~1935) 등의 화가들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흐는 탕귀 영감에게 구입한 코발트 블루 물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와인처럼 색깔 속에 다양한 불순물이 섞여 있다. 나를 포함해서, 화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어떻게 적절한 색을 고를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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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캔버스에 유채, 73.71×92.1cm,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를 떠나며 고흐는 테오를 통해 특정 회사의 코발트 블루 물감을 구해 그림을 그렸다. 이 물감은 인산 코발트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니켈 함량이 적었다. 고흐는 이 물감 색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아를로 이사한 1888년 이후에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노란 집>,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 <별이 빛나는 밤>,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교회>, <까마귀가 있는 밀밭> 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 모두 코발트 블루가 중심에 있다.
고흐는 파란색만큼이나 노란색을 즐겨 사용했다. <해바라기>, <고흐의 방> 등 전매특허처럼 고흐 그림에 많이 사용된 태양빛을 머금은 듯한 강렬한 노란색이 크롬 옐로다. 크롬 옐로는 크롬과 납으로 만든 물감이다. 크롬은 1762년 시베리아 금광에서 광물 형태로 발견되었다. 크롬은 다채로운 색채를 머금고 있다. 루비가 붉은색, 에메랄드가 녹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것도 이들 보석에 불순물로 미량 함유된 크롬 때문이다. 붉은 기를 띤 선명한 노란색의 크롬 옐로는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시간이 지나면 갈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고흐가 납이 주성분인 크롬 옐로를 즐겨 사용하면서 납중독으로 녹내장과 각막 부종 등 시각 질환에 시달렸고 그 결과 그림에 노란색을 많이 썼다고 주장한다. 고흐의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가셰 박사가 사용했던 디기탈리스(digitalis)라는 약초의 부작용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별 주변에 노란색 후광을 그렸다는 주장도 있다. 디기탈리스의 흔한 부작용이 빛이 없는 곳에서 사물이 가물가물하게 보이고,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 등의 시각 질환과 어지럼증이다.
그러나 고흐가 선을 구불구불하게 그리고 소용돌이 모양의 번쩍이는 후광을 자주 묘사한 것이 불안정한 시력 때문이 아니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한편 항상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며 구축한 고흐만의 화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반발하면서 견고하게 결합하는 보색
많은 논란과 해석의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변함없는 사실은 고흐가 선명한 파란색과 노란색의 병치를 자주 애용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색상을 사용할 때 어떤 색을 이웃에 함께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대비 효과가 나타난다.
색상환은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에 대응하는 색을 고리 형태로 연결해 배열한 것이다. 미국 화가 알베르트 헨리 먼셀(Albert Henry Munsell, 1858~1918)이 고안한 색상환이 많이 사용된다.
먼셀의 색 분류는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의 색채 지각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헬름홀츠는 토마스 영(Thomas Young, 1773~1829)의 우리 눈에는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색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 있다는 주장을 발전시켜, 빛의 3원색 이론을 주장했다. 먼셀은 색을 색상, 명도, 채도의 세 가지 속성에 따라 분류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5색을 기준으로 삼고 여기에 원색의 혼합색을 추가해 10색상환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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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환에서 ①번 방향 색끼리의 조합은 유사대비다. 유사대비는 색상환에서 가까이 있고 비슷한 색끼리 배열되어 이루는 조화다. ②번 방향 색들은 반대대비, ③번 방향 색들은 서로 보색대비다. 색상환에서 반대거나 보색(補色)과 이루는 색끼리의 조화다. 보색은 색상환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색이다. 색상환에서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은 두 색이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보색은 반발하는 만큼 서로 견고하게 결합한다. 보색대비를 이용하면, 반발하는 두 색의 영향으로 각각의 색이 채도가 더 높아져 뚜렷하고 두드러져 보인다. 도로 교통 표지판 등에서 보색대비를 이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처럼 말이다. 색상환에서 감청색(파란색보다 조금 진함)과 노란색은 정확하게 서로 보색의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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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1888년, 캔버스에 유채, 81×65.5cm, 오테를로 크뢸러뮐러미술관
고흐는 이러한 색상 대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아를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에서 푸르스름한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이고, 카페의 노란빛 조명은 매우 환하게 빛나고 있다. 어둠을 의미하는 밤이라는 시간은 낮 동안의 모든 복잡한 세상사를 정리해 주는 차분하고 조용한 시간이다. 그러나 카페 불빛은 한낮처럼 밝고 환하다. 사람들은 테이블 여기저기에 앉아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고 분위기는 활기차다.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의미와 전혀 상반되는 카페 분위기는 짙은 푸른색과 밝은 노란색의 보색대비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고흐는 아를에서 귓불을 자른 사건 이후 스스로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인정하며 생 레미 정신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여러 번 연작으로 그렸다. 병원으로 가기 직전에 그린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은 푸른 밤하늘에 별들이 차분하고 정적으로 빛나고 있어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에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는데, 훨씬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밤하늘은 마구 이글거리며 소용돌이치고 있고, 그 아래 생 레미 정신병원이 푸른빛을 내며 창백하게 놓여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높이 솟아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병들고 우울한 고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꺼지지 않는 예술혼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것들로부터 가장 훌륭한 조화가 나온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고흐가 생 레미 정신병원을 나와 오베르 쉬르우아즈(Auvers-Sur-Oise)에서 생을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는 고흐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거칠게 칠해진 밀밭과 하늘은 마치 화난 듯 휘몰아친다. 세 갈래로 나뉜 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고흐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잘 보여준다. 그림의 절반은 푸른 밤하늘이고 절반은 노란 밀밭으로, 여느 그림보다 보색대비가 주는 강렬함의 깊이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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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년, 캔버스에 유채, 50.5×103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먹구름과 바람이 요동치듯 감청색과 검은색으로 색칠된 하늘은 스산하다. 거칠게 흔들리는 밀밭의 노란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이자 두려운 존재를 의미한다. 그림에서 밀이 부딪쳐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까마귀 무리가 파닥파닥 날갯짓하며 만드는 바람의 일렁임이 느껴진다. 고흐의 드라마 같은 삶과 베일에 싸인 죽음만큼이나 그림이 주는 힘이 강렬하고 압도적이다.
‘마지막 작품’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곧이어 고흐에게 다가올 죽음의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흐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에 작품에 담긴 메시지 또한 의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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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개봉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2017년 세계 최초로 시도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기획에서 제작까지 총 10년이 걸렸다. 배우들이 연기한 장면을 촬영해 107명의 화가가 6만 3천여 장의 유화를 그려 완성했다. 영화는 고흐가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그의 그림에는 내면의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담겨있다.
고흐 그림에는 공존하기 힘든 상반된 감정들이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한다. 마치 그가 사랑했던 파란색과 노란색처럼 말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 B.C. 540~B.C. 480)는 “서로 다른 것들로부터 가장 훌륭한 조화가 나온다”는 말을 남겼다. 고흐가 남긴 많은 작품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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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서민아(물리학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연구로 2010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 201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합류해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나노-정보융합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어바웃어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