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걸작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관찰, 연습이 필요할까? 필자는 실험 과학자다. 실험 과학자는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새로운 사실을 관측한다. 가설과 계획을 세우고, 통제된 환경 조건에서 반복해서 실험하고, 결과값의 평균과 오차를 계산하고, 유의미한 데이터들을 정리해 분석하는 과정이 실험 과학자의 일이다.


실험 과학자처럼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다.

 

『얼마나 멀리서 보아야 가장 아름답게 보일까?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서…
 

첫 번째 이야기 보러가기

 

 

본다는 행위의 과학


명암이 다르거나 색이 바뀌는 경계 지점에서 사람의 눈은 이 경계면을 어떻게 인식할까? 다시 말해 어떻게 색상 대비가 일어나고, 어떻게 경계면이 정해지는 걸까?
 

▲ 사람이 눈의 망막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

 

우리가 사물의 형태나 색을 보고 ‘인식’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사물에서 반사된 빛(①)이 동공으로 들어가 수정체를 지나 망막에 상이 맺힌다(②). 망막에는 빛 자극을 감지해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는 시각세포들이 있다. 시각세포에는 명암을 구분하는 막대세포와 색상을 구분하는 원추세포 두 종류가 있다. 시각세포들은 망막이라는 화면에 각각 일종의 픽셀처럼 분포해 있다. 각각의 시각세포들이 빛에 반응해 내보내는 신호는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어 시신경을 거쳐(③) 뇌로 전달된다. 뇌에서는 이 신호의 분포를 이미지로 재구성(④)하고,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망막에서 시각세포들이 명도와 채도의 크기 변화를 인지하는 것이다. 각각의 시각세포들이 받아들인 빛 신호의 크기는 시신경으로 전달되기 전에 쌍극세포에서 일종의 ‘연산’을 거치게 된다. 연산 과정에서 형상의 경계에서 색의 대비가 일어나거나 일종의 착시가 발생한다.
 

▲ 쌍극세포 횡억제 과정 : 시각세포로 들어온 광신호를 쌍극세포에서 연산해 착시를 만드는 과정. 실제 신호는 아래 그림에서 파란색 선과 같으나, 눈에는 빨간색 선처럼 경계면 신호가 과장되고 중간 값인 그라데이션이 생긴다.

 

하나의 시각세포에 입력된 신호는 연결된 쌍극세포로 보내진다. 이때 여러 개의 시각세포로부터 신호를 받은 쌍극세포는 연결된 이웃의 다른 쌍극세포에 억제 신호를 보낸다(횡억제). 예를 들면 쌍극세포는 시각세포가 받은 신호의 1/10씩 이웃한 다른 쌍극세포에 억제 신호를 보낸다. 쌍극세포는 최종적으로 받은 신호를 모두 더하거나 빼는(억제된 신호는 음의 값) 연산을 수행한 후 최종값을 시신경으로 보낸다. 이때 색이 바뀌는 경계면 근처에서는 최종값이 조금 더 증폭되거나 줄어드는 효과로 대비가 발생하고, 경계면에서는 원래 없었던 중간값이 발생해 그라데이션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즉 명암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밝은 곳은 더 밝게,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은 최초 발견자인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1838~1916)의 이름을 따 ‘마흐 밴드 착시 (Mach band illusion)’라고 한다.

 

 

뒤로 물러설수록 제대로 보이는 그림
 

보색의 잔상 효과와 경계면 대비 및 그라데이션은 모두 망막에서 일어나는 착시 현상의 일종이다. 쇠라는 색채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망막에서 재조합되어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쇠라가 놓친 것이 있다. 쇠라는 색 혼합이 망막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색을 병치하면 물감이 감산혼합될 때와 달리 명도와 채도가 떨어지지 않고 그림이 더 밝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혼합된 색이 원래의 색보다 밝아지는, 즉 혼합색의 명도와 채도가 높아지는 가산 혼합은 빛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 다른 색의 빛이 중첩되는 곳에서는 빛의 세기가 세져서 명도와 채도가 높아진다. 두 가지 다른 색의 물감을 병치혼합 하면 전체 명도와 채도는 두 색의 산술적인 평균에 불과하다. 즉 여러 가지 색 점을 병치하면, 그림이 밝은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경계면에서 발생하는 착시에 의한 대비 효과로 색상이 선명하게 보일 수는 있다.
 

▲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표시한 부분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

 

쇠라의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점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보이고 각 점의 원래 색상도 잘 보인다. 그러나 점의 크기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서 보면 착시 효과가 일어난다. 점의 경계면이 사라지고 병치혼합으로 인해 중간색이 좀 더 유의미하게 보인다.
 

쇠라는 어느 정도 떨어져서 자신의 그림을 볼 때 이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쇠라가 그린 여러 편의 그림은 가로 3m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한다. 이런 대작을 전체적으로 보려면 관람객은 그림에서 적당히 뒤로 물러나야 한다. 관람객이 충분히 멀리서 그림을 감상하면 분할된 작은 점들은 점으로 인식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망막에서 병치된 색의 혼합이 일어난다. 즉 쇠라가 관람객이 그림에 찍힌 수많은 점을 점의 형태로 인식할 수 없는 충분한 거리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공통점, 실험정신
 

19세기 초 파리에서는 페르난도 서커스가 큰 인기를 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Auguste Renoir, 1841~1919), 에드가르 드가 (Edgar Degas, 1834~1917), 툴루즈 로트레크 (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 등의 화가들은 페르난도 서커스를 다룬 그림을 많이 그렸다. 같은 시기에 신인상주의를 이끌었던 쇠라와 폴 시냐크 (Paul Signac, 1863~1935)도 서커스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 조르주 쇠라, <서커스>,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85.5×152.5cm, 파리 오르세미술관

 

쇠라의 <서커스>는 잘 분할된 점과 색의 보색대비를 탁월하게 활용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분할된 점은 이전 그림들보다 좀 더 세밀하게 나뉘어 있으며, 사물의 테두리도 선명해졌다. <서커스>는 쇠라의 이전 작품들과 구도와 색감 면에서 매우 다른 인상을 풍긴다. 이 작품은 그동안 쇠라가 즐겨 사용했던 수평과 수직의 단순한 구도가 주는 정적인 분위기를 탈피했다. 원, 나선, 타원 등 곡선적인 요소를 차용하고 과감하게 대각선 구도를 사용했다. 이런 과감한 구도 때문에 원형의 곡마장과 달리는 말, 광대가 들고 있는 리본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전체적으로 노란색 계열이 많이 쓰였는데, 이는 실내의 인공조명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대비를 주기 위해 보랏빛이 도는 파란색을 많이 사용했다. 두 가지 톤의 색상 조합은 전체적으로 다소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음울한 분위기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곡마사들의 큰 동작과 활기찬 몸짓과는 대조적으로 관중석의 정적이고 무심한 반응과 교차하면서 더욱 증폭된다. 
 

이 작품은 1891년 미완성인 채로 제7회 앙데팡당전(아카데미즘에 반대하는 화가들에 의해 열린 무심사·자유출품제 미술전람회)에 출품되었다. 그리고 이 전시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쇠라는 독감 합병증으로 서른한 살이라는 안타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고수하던 실외 풍경화와 점묘법 화풍에서 구상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서커스>가 쇠라의 유작이 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활동 시기는 짧았지만, 과학적 사고와 실험을 바탕으로 해 새로운 미술 세계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쇠라의 영향력은 실로 크다고 볼 수 있다. 쇠라는 분할된 점을 병치해 색채를 재구성하면서 동시에 의도적으로 수평·수직·사선을 적절하게 안배함으로써, 구성적으로 전통 미술 및 고전주의와의 연결도 놓치지 않았다. 인상주의가 순간적인 빛의 인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몰두해 형태와 구성적 요소를 다소 간과했다면, 이를 다시 회복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쇠라의 노력은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철저한 분석과 과학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그림을 그린 신인상주의는 처음에는 미술계에서 그리 환영받는 사조는 아니었다. 세간의 비난을 받던 사조를 예술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전환한 사람이 미술평론가 펠릭스 페네옹 (Felix Feneon, 1861~1944)이다. 페네옹은 색에 대한 직관은 인상주의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분할법을 도입해 색뿐만 아니라 구도의 분할까지 도모했던 이 새로운 흐름에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은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를 이끈 시냐크의 작품이다. 페네옹은 멋진 양복을 입고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색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배경 앞에 서 있다. 쇠라와 시냐크는 제1회 앙데팡당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만나, 서로의 작품 세계에 공감하며 교류했다. 시냐크는 일본 판화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혼합시점과 평면 처리에 능숙했다.
 

 

▲ 폴 시냐크,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 1890년, 캔버스에 유채, 93×73.5cm, 뉴욕 현대미술관

 

쇠라에 의해 시작되어 시냐크를 거치며 당시 유럽 미술계를 크게 흔들었던 새로운 화법과 그들의 작품. 신인상주의는 비록 짧은 시간 존재했지만,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폴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1903) 등 후기 인상주의 화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구도나 형태의 기하학적 특징과 안정성을 강조한 신인상주의는 20세기에 등장한 큐비즘과 오르피즘, 추상회화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흔히 사람들은 예술적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고, 역사에 남은 거장들은 모두 천재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예술가라고 하면 직관과 영감에 휩싸여 일필휘지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예술은 결코 직관과 천재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부단한 노력과 반복된 실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려고 하는 대담한 용기와 결단이 모였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필자 / 서민아(물리학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연구로 2010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 201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합류해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나노-정보융합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어바웃어북) 등이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