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쾰른에 위치한 루드비히 미술관의 걸작들이 우리나라를 찾았습니다. 독일과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독일 미술관 컬렉션입니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미국 팝아트 컬렉션이 있고 피카소 작품도 900여점이나 소장하고 있어, 쾰른대성당과 함께 독일 쾰른을 대표하는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를 통해 피카소를 비롯한 동시대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을 지키고자 했던 루드비히 부부의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
히틀러에 맞서 지킨 20세기의 기록

루드비히 미술관은 초콜릿 사업으로 많은 부를 쌓은 루드비히 부부가 20세기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컬렉션한 수많은 작품들을 기증하며 세워진 곳입니다. 가격을 매길 수도 없는 작품들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 무상으로 기증한다는 것은 훌륭한 예술작품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했던 루드비히 부부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독일 사람들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미술관을 보유하게 되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의미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독일에서 등장한 표현주의를 포함하여 사실주의가 아닌 작품들을 퇴폐 미술로 규정하고 예술가들을 탄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태워졌고 극단적인 예술가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독일인들이 로봇처럼 명령에 복종해 움직였던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으로 전쟁을 막고자 투쟁했고,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그들이 남긴 신념의 산물입니다.
최초의 현대추상작품을 탄생시킨 작가, 바실리카 칸딘스키
첫번째로 만나볼 작가는 러시아 작가 바실리카 칸딘스키(1866-1944)입니다. 칸딘스키는 최초의 추상 화가라 불립니다. 칸딘스키는 그림에 명확한 형태가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감동이나 특정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칸딘스키는 어느 날 밤 자신의 화실에서 달빛에 은은히 비치는 작품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었죠. 분명히 자신의 작품들만 작업실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불을 켜보니 놀랍게도 거꾸로 놓인 자신의 작품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점점 형태를 잃어 가고 색채와 리듬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의 작품은 형태를 애써 찾기보다 그가 보여주는 색채의 조합과 선들의 리듬감을 편하게 느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의 것도, 어느 사조에도 묶이지 않는 화풍,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다음은 20세기 파리의 보헤미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에게는 흥미로운 수식어가 있습니다. 파리의 최고 미남 화가. 잘생긴 외모에 약간의 반항기, 천재성이 더해지며 우리가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평생 인물을 탐구했는데요. 르네상스의 거장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속 비너스의 모습에서 여성 표현에 영향을 받았고 아프리카 조각에서 단순화와 신비성을 얻어 자신만의 독특한 인물화를 남겼습니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아몬드 모양의 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긴 코 긴 목도 특징이죠. 그는 자신이 인물화를 그릴 때 곡선을 많이 사용하기에 배경에는 직선을 주로 쓰며 밸런스를 맞췄습니다. 이 독특한 양식은 틀에 가둘 수 없기에 그는 사조가 없다는 것이 특징인데요. 이런 예술가를 단독 사조라 부릅니다. 안타까운 것은 평소 몸이 약했고 마약과 술을 과도하게 한 탓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숨김 없이 드러내는 6면체의 시대 정신, 파블로 피카소

다음은 전시의 대표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데요. 그의 그림을 ‘입체주의’라고 부릅니다. 피카소는 대상을 그릴 때 과거의 고정된 시점을 벗어나 다시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요. 사실 지금도 그의 그림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사조는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피카소가 그리려 했던 것은 대상의 본질이었습니다. 주사위를 떠올려보세요.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있죠. 인간의 두 눈은 한계가 있습니다. 한 번에 주사위의 3개 면 밖에 볼 수가 없죠. 하지만 그건 주사위의 본질이 아닙니다. 1부터 6까지의 숫자를 모두가 주사위의 본질이죠. 그래서 피카소는 그 주사위를 쫙 펼쳐 놓은 겁니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긴 힘들지만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것이 본질을 표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거죠.

또 하나의 위대함은 시대의 분위기를 담아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부터 1945년의 세계대전 종결까지 어둡고 불온한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요. 〈아티초크를 든 여자〉에서는 여성의 오른손에 중세 타격용 무기 모르겐슈테른을 연상시키는 아티초크가 잡혀 있고 무릎에 놓인 왼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배경에 가득 찬 회색은 전쟁터에 피어나는 연기를 연상시킵니다. 격렬하게 왜곡된 그로테스크한 여성의 두상은 다수의 피카소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표현입니다. 피카소는 전쟁의 광경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았지만 작품 속에는 비참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암시가 가득합니다.

대표작들을 살펴보았는데요. 모든 거장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번 루드비히 미술관 작품들은 예술가와 컬렉터의 신념, 열정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겁니다.

작품 해석이 주를 이루는 기존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과 예술을 한 편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로 큰 호응을 얻은 스타 도슨트.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등 다양한 전시 해설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 전시 해설가로 자리매김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와 의미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사랑한 화가들>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 1,2>등 이 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