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모든 육지가 물로 뒤덮인 세상. 겨우 살아남은 인류는 인공섬에서 바다를 표류하며 생존 투쟁을 벌이며 살아갑니다. 흙은 아주 귀한 재화 교환의 수단이 되었고, 사람들은 최후의 육지라 알려진 드라이랜드를 찾아 떠납니다. 1995년에 개봉한 영화 <워터월드>의 줄거리입니다. 20년도 훨씬 넘은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그저 영화적 상상이라고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요?

빙하가 녹고 있다

지구에는 남극, 북극 외에도 산악 빙하, 떠다니는 해빙 등 다양한 빙원이 곳곳에 존재합니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얼음이 녹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어 빙하의 면적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에 따르면 2020년 10월 북극을 덮고 있던 얼음 면적은 528만㎢로, 역대 10월 관측 값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북극 빙하 면적은 2016년 10월 640만㎢, 2018년 10월에는 606만㎢를 기록했는데, 2020년의 면적은 역대 두 번째로 가장 작았던 2019년 10월의 566만㎢보다도 작은 수치입니다.

토마스 슬레이터 영국 리즈대 극지 관측 및 모델링 센터(CPOM) 연구원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23년간 전 세계적으로 총 28조 톤의 얼음이 사라졌는데요. 사라진 얼음의 50%가 그린란드 빙하와 남극의 평평한 얼음층인 빙붕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얼음이 녹는 속도도 빨라졌는데, 1990년대에는 매년 약 8000억 톤의 얼음이 녹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1조 2000억 톤,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1조 3000억 톤에 이르는 얼음이 매년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웨이츠 아포칼립스, 워터월드 실현 가능성은?

▲ 스웨이츠 빙하 (출처: NSIDC)

세계 곳곳의 빙하가 빠르게 유실되면서 과학, 지질, 기후 등 관련 전문가들이 남극에 있는 스웨이츠 빙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스웨이츠 빙하 면적은 약 19만 2000㎢. 한반도(22만 2000㎢) 크기와 비슷한 규모로 남극의 초대형 빙하 중 하나로 꼽힙니다. 스웨이츠 빙하는 별명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지구 종말의 빙하’입니다. 스웨이츠 빙하가 붕괴돼 전부 녹는다면 해수면은 65cm 가량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되고, 주변 빙하까지 가세한다면 해수면이 3m까지 올라가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들이 바다에 잠겨 수천만 명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좌) 2001년 스웨이츠 빙하의 동쪽 빙붕 (우) 2019년 스웨이츠 빙하의 동쪽 빙붕 (출처: NASA EARTH OBSERVATORY)

이 같은 어두운 미래가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 스웨이츠 빙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마다 500억 톤 가량이 녹아서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속도가 늦춰지지 않는다면 수년 내 무려 3125억 톤에 달하는 물이 바다로 유입됩니다. 스웨이츠 빙하 지구 종말 시나리오는 먼 훗날의 일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동쪽 빙붕에 사방으로 뻗은 균열이 발견되면서, 3~5년 내 갑자기 붕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 빙하학자들이 경고했습니다.

따뜻한 해수의 방향을 바꾸는 해저 고정 커튼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스웨이츠 빙하 조사선 (출처: International Thwaites Glacier Collaboration)

스웨이츠 빙하를 떠받치는 빙붕이 다시 두꺼워지고 회복하기 위해선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요. 이를 위해 빙하학자이자 핀란드 라플란드대학교 북극센터의 존 무어 교수 연구팀과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은 ‘해저 고정 커튼(seabed anchored curtains)’이라 부르는 구조물 건설을 제안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커튼’이란 토목섬유 물질을 이용해 물에 뜨게 만든 구조물로, 따뜻한 해수의 흐름을 막고 물의 방향을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해저 커튼 구조물이 따뜻한 해수의 방향을 바꿔 빙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면 스웨이츠 빙하의 동쪽 빙붕이 두꺼워지면서 다시 빙하를 지탱하는 단단한 버팀목이 된다는 이야기이죠.

연구팀은 다른 잠재적인 접근법들도 제시했습니다. 빙하의 일부분에 빛을 반사하거나 단열할 수 있는 물질을 배치하는 방법, 눈이 평소처럼 바다로 날아가지 않도록 울타리를 세우는 방법, 빙하 아래 해저에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윤활유 역할을 하는 물을 제거해 빙하의 움직임을 늦추는 방법 등입니다. 무어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아이디어가 향후 몇 세기 동안 빙하가 녹는 것을 막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거라고 강조합니다.

규산염 유리로 만든 미세 구슬이 빙하 유실을 막는다?

▲ (좌) 규산염 유리로 만든 미세 구슬 (우) 테스트 진행 모습 (출처: ICE911)

미국의 비영리 환경단체 아이스911 연구진도 빙하 유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연구진은 북극권 알래스카에서 규산염 유리로 만든 미세 구슬을 얼음 표면에 뿌리는 실험을 진행해 얼음이 녹는 속도가 크게 느려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규산염 유리는 실리카라 불리는 이산화규소를 주성분으로 하는데, 규소와 산소 그리고 약간의 금속 원소로 이뤄진 규산염 광물은 지각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연구진은 이런 특징에서 착안해 규산염 유리를 얼음 유실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생각했습니다. 연구진이 미국지구물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지구의 미래’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현장 실험에서 빛 반사율은 미세 구슬 덕분에 15~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규산염 미세 구슬을 살포했을 때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북극 대부분 지역에서 잠재적으로 해수 온도가 3℃ 하락하며, 해빙의 두께는 최대 20인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 것

무어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스웨이츠 빙하의 붕괴가 향후 3~5년 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인류는 이러한 빙하 유실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방법들 또한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임시방편의 물리적인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과 관심입니다.

우선 소비생활에서부터 변화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같은 기능과 성능을 가진 제품이라면 에너지 효율이 높거나 폐기물 발생이 적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구매 패턴이 정착되면 생산자도 제품을 만들 때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하게 되고, 장기적으로 경제구조 자체가 친환경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폐기물 재활용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입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35배 더 많은 열을 가두는 강력한 온실가스입니다. 주로 폐기물 매립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데요. 재활용이 촉진되면 매립지로 반입되는 폐기물량이 감소하므로 메탄 발생량도 감소하게 됩니다. 또한 폐기물 발생량이 감소하면 소각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감소하는 연쇄효과도 나타납니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 상승뿐만 아니라 해류 및 생태계 변화, 바다의 담수화, 동물 개체 수 감소, 빙하에 묻혀있던 바이러스의 부활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빙하의 종말이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우리의 적극적인 실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