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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Z세대의 자기소개는 자신의 MBTI를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MZ세대의 사주’라 불릴 정도로 MBTI를 공유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MBTI 유형별 선물과 연애 방식, 직업 등이 재미난 짤로 소개되고, 같은 유형끼리 모여 고민을 나누거나 조언을 구하기도 하죠. 많은 이들이 나를 대변하는 근거로서 자신의 MBTI를 이야기하는 시대인데, 과연 MBTI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MBTI가 과학이다 VS 아니다’의 논쟁 사이에서 과연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칼 융에서 시작해 브릭스 모녀가 완성한 MBTI

▲ 젊은 시절 캐서린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의 모습 (출처: Meyers & Briggs Foundation)

MBTI는 프로이트의 제자 칼 융(Carl Gustav Jung)의 심리 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칼 융은 콤플렉스와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만든 심리학자인데, 그가 만든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의 심리학자 캐서린 브릭스(Katherine Briggs)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 모녀가 세계 2차 대전 중인 1940년대에 공식화해 공개했습니다. MBTI라는 이름도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이를 제작한 모녀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죠. 분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MBTI는 네 가지 항목 당 두 개의 상반된 지표를 조합해 총 16가지의 성격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단순화, MBTI의 맹점

사람의 성격과 태도를 유형화했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많은 심리학자와 과학자들은 MBTI를 비판하곤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검사의 근간이 되는 여러 이론을 증명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과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험군과 대조군을 비교하여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게 필요한데 MBTI는 과학적 연구를 위한 제반 요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칼 융의 정신분석학은 오늘날 과학적인 분석을 중시하는 심리학계에서 유의미하게 다뤄지거나 평가받고 있지 않은 분야로, 통계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신뢰도와 타당성 등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칼 융 스스로 자신이 정리한 성격 유형은 엄격한 분류가 아닌 단지 자신이 발견한 성격들의 ‘대강의 경향’이라고 경고했음에도 MBTI 검사에 채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MBTI는 ‘사람의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는 시도’로 규정하곤 합니다. MBTI가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과 더불어, 검사를 진행할 때 나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검사를 받은 뒤 5주 후에 다시 검사를 받았을 때 무려 50%나 되는 사람이 검사 결과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또한 MBTI의 경우, 사람들의 특성이 특정 스펙트럼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추측에 근거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지닌 다층적인 면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인간 성격의 특성을 파악한다고 하기에는 반쪽짜리 시도이자 인간을 너무 단순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죠.

학술적 잣대를 조금 내려놓으면 보이는 것들

그러나 재밌는 건 이러한 비판과는 별개로 많은 사람이 MBTI를 남과 다른 나만의 성향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이자 근거로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구분되면서도 특정 유형에 소속됨으로써 사회 안에서 정체성을 갖춘 사회적인 ‘나’를 들여다보는 검사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MBTI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MBTI에 담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들이 심리 검사를 보다 대중적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를 학술적 잣대로만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검사 중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도 MBTI를 활용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MBTI 연구소에 따르면 1979년부터 MBTI를 토대로 한 많은 논문과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 국내의 경우 지난 1990년 ‘성격유형검사(MBTI)의 한국 표준화에 관한 일연구’를 시작으로 의학, 경영,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 MBTI를 활용한 논문이 발표된 바 있습니다.

한편, 실제 상담 현장에서 MBTI를 이용한 부부 상담 프로그램, 부모 상담 등이 존재합니다. 두 사람이 어떤 측면에서 다른지 파악하고, 서로의 성향에 맞는 대화 방식을 알아갑니다.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MBTI를 활용하고 있죠. 이는 MBTI가 재미로만 하는 검사가 아님을 보여주는데, 한 사람의 성향을 대략적으로 정의해 주는 하나의 지표로, 그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관계지향적 한국인, MBTI 인기는 당연

과학이냐, 아니냐의 논쟁과는 별개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제 MBTI는 일상적인 대화 주제가 되어버릴 정도로 대중화되었습니다. 이 같은 MBTI의 인기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구글트렌드를 활용해 전 세계 MBTI를 검색해 본 결과 한국인이 서치하는 MBTI 검색 빈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약 10배가량 높습니다.

▲ 출처: 구글트렌드

한국의 수치가 100일 때, 그다음으로 높은 나라가 16이니 전 세계에서 MBTI를 가장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MBTI에 열광하는 걸까요? 이는 한국인 특유의 관계지향적 성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은 자신보다 주변의 관계에 집중하는 ‘관계주의’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가 자기소개를 할 때 나를 소개하기보다 장남, 막내, 가장 등 가족 관계에서 ‘나’를 소개합니다. ‘훈이 엄마, 준이 아빠’ 등 자녀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입니다.

이렇게 ‘어떤 우리’ 안에 있는지를 중시 여기는 한국인에게 타인과의 관계 정립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합니다. 직장, 학교, 친구 관계 등 MBTI는 나와 타인의 성향을 알려주며 내가 다른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되는지 안내해 주는 나침반으로서 한국인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본질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려는 노력

MBTI가 공개된 지 80여 년이 흐른 지금, MBTI를 과학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많은 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자명합니다.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에게 MBTI는 사람을 유형화하여 분류한 지표 그 이상으로 여겨 지기도 하는데요, 정확성이 떨어지는 검사결과를 토대로 타인을 차별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너무 몰입하기보다는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도구로 여기고 활용하는 건 어떨까요? ‘MBTI가 과학이다 VS 아니다’ 식의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MBTI를 통해 우리는 전보다 ‘나’에 관심을 가지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자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MBTI를 통해 알게 된 특성을 바탕으로 어떤 부분을 발전시키고, 조심해야 하는지 등 나를 알아가기 시작할 때, 나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 역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성장의 발판이자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MBTI를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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