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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pixel)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림 요소(picture element)’를 줄여서 만든 말이다. 매우 간단한 말이지만 우리 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 될 디지털 영상과 이미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술인 만큼 픽셀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생활상을 크게 뒤바꿔 놓았다. 그렇다면 픽셀 기술은 어떻게 발전해온 것일까?

글. 크리스 터너(Chris Turner)

최초의 픽셀, 원형은 점묘파 미술

▲ Study for La Grande Jatte (1884-1885)_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프랑스 화가. 1859-1891)

그림을 요소로 환원해서 픽셀의 원형을 제시한 것은 미술에서 맨 처음 시도되었다. 신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용한 점묘법(Pointillism)은 이전까지 면을 그리던 미술 작화 방식을 점을 찍어 표현하는 방법으로 바꿔 놓았다. 빛과 색을 중시한 이전의 미술 기법에서 탈피해 모든 사물을 점으로 묘사한 신인상주의는 픽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대의 이미지 표현 기술의 원형이다.

이와 같은 점묘법의 창시자는 프랑스 화가였던 조르주 쇠라였는데, 그는 점묘법을 통해 컬러가 다양한 빛의 혼합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색과 색이 모이면 고유의 색감이 사라지고 다른 색이 떠오르는 간섭현상을 밝혀냈는데, 쇠라를 비롯한 신인상주의 화가들이 이를 캔버스 위에서 구현해냈다.

이미지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기까지

화면에 문자 형태든, 스마트폰의 아이콘이든 픽셀이 디지털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은 현대의 컴퓨터보다 먼저 등장한 세 가지 수학적 발견을 기반으로 한다. 첫 번째는 프랑스의 귀족이자 1800년대 초에 나폴레옹 치하에서 지방 장관을 맡기도 했던 장 조제프 푸리에(Jean Joseph Fourier)가 발견했다. 푸리에는 소리뿐만 아니라 열과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까지도 다양한 주파수와 진폭을 가진 일련의 ‘파동(wave)’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통찰에 기여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 이상 지난 후에 소련의 공학자 블라디미르 코텔니코프(Vladimir Kotelnikov)는 푸리에의 변환(파동 이론)을 기반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위한 두 번째 중요한 요소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샘플링 정리(Sampling Theorem)’인데, 1933년 코텔니코프는 특정한 간격으로 스냅샷(샘플)을 찍으면 어떤 장면이든 상관없이 신호로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색의 변화나 장면의 전환도 충분한 샘플을 확보하면, 얼마든지 정보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왼쪽부터) 장 조제프 푸리에(Jean Joseph Fourier)와 앨런 튜링(Alan Turing)

마지막 발견은 바로 보편적인 컴퓨팅 기계의 윤곽을 묘사한 앨런 튜링(Alan Turing)의 1936년 논문이다. 그의 위대한 혁신은 올바른 명령어 집합(현재는 소프트웨어라고 한다)만 있다면 어떤 체계적인 프로세스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푸리에의 변환, 코텔니코프의 정리 그리고 튜링의 기계를 거쳐 이미지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될 수 있다는 이론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픽셀을 기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TV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Lumière brothers)는 초창기 영화 기술을 발전시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1895년경에 완전한 영화 시스템을 보여줬으며 이러한 시스템 개발에 자신들이 전적으로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둘 다 카메라, 필름, 영사기로 이루어진 완전한 시스템을 스스로 구축하지는 못했다. 영화 시스템의 일부분은 에디슨의 이전 파트너들이, 다른 비슷한 부분은 뤼미에르 형제와 함께 일했던 소수의 프랑스 발명가들이 만든 것이다.

▲ 1. 1950년대 TV  2. CBS 프로그램 ‘See It Now’에 등장한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자막  3.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수행한 컴퓨터 훨윈드(Whirlwind)

그러나 영상의 존재가 기술의 문제, 픽셀의 영역으로 전환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TV였다. 그 이유는 TV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영상을 편집하고 화면을 재구성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51년 12월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훨윈드(Whirlwind) 컴퓨터는 에드워드 머로(Edward R. Murrow)가 진행하는 CBS 프로그램 ‘See It Now’에 그래픽 자막을 보여주기 위해 검은 스크린에 하얀 점들을 배열해서 보여줬다. 이 점들은 ‘안녕하세요, 머로 씨(Hello Mr. Murrow)’라는 문자를 하나씩 보여줬고, 그 후에 천천히 글자가 사라지면서 다시 반짝였다. 이것이 바로 컴퓨터를 이용한 그래픽, 즉 픽셀 기술이 영상에 개입한 최초의 기록이었다.

마침내 시작된 디지털 융합

▲ 1970~80년대는 컴퓨터 그래픽에 있어 ‘래스터 이미지’가 ‘벡터 이미지’로 전환된 시기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는 화면을 구성하는 투박한 픽셀, 즉 ‘래스터(Raster) 이미지’가 더 촘촘한 화소와 진일보한 픽셀 기술을 바탕으로 매끈하고 세련된 ‘벡터(Vector) 이미지’로 전환된 시기이다. 이 같은 진화는 1970년대 초반부터 픽셀과 디지털 영상 분야로 수많은 인력들이 옮겨가면서 시작되었다. 디즈니(Disney)와 루카스필름(Lucasfilm), 스탠퍼드대학교, 나사(NASA),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 등 많은 기업과 연구 기관들이 디지털 영상에 기반한 픽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실험하고 연구했다. 

그러다 마침내 3D 애니메이션이 디지털 이미지, 픽셀, 컴퓨터 처리 능력을 모두 폭발적으로 향상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픽사(Pixar)에서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실험실 설립이 이루어졌다. 픽사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바탕으로 처음엔 루카스필름이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데 앞장섰고, 1995년에는 픽사가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를 발표하면서 ‘3D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다. <토이 스토리>는 오로지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제작된 역사상 첫 번째 장편 영화이기도 했다.

픽셀에서 디스플레이로, 픽셀 기술의 새로운 시대

픽셀의 기술적 정의는 ‘비트로 디지털화된 이미지’이다. 픽셀에 들어가는 정보는 비트(Bit)로 표시하는데, 비트 수가 높아질수록 표현할 수 있는 색상 수가 많아진다. 1비트 컬러는 2의 1승, 즉 2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뜻한다. 8비트 컬러는 2의 8승인 256가지 색상을, 16비트 컬러는 2의 16승인 65,536가지, 24비트는 16,777,216가지 색상을, 32비트는 4,294,967,296가지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이전까지 픽셀 기술의 진화는 비트와 함께 픽셀이 표현할 수 있는 색의 가짓수, 즉 색심도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픽셀 기술은 원본 색상을 얼마나 재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색재현율부터 움직이는 영상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주사율, 응답속도에 이르기까지 그 기술의 범위나 이슈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천으로 된 캔버스에서 TV 영상까지, 초창기 투박한 컴퓨터 그래픽에서 첨단 디스플레이 기기까지, 픽셀 연대기(年代記)는 말 그대로 디스플레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브라운관, LCD, OLED, QD-Display 등 디지털 융합 이후 픽셀 기술의 발전을 이끈 것은 바로 디스플레이였다. 앞으로 또 어떤 디스플레이가 등장해 새로운 픽셀의 역사를 써 내려가게 될 것인지 미리 상상하고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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