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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손전등 기능을 켜고 손가락 끝을 올려놓으면 손가락이 빨갛게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귀나 볼, 손가락 끝같이 신체에서 얇은 부분은 빛이 약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걸 이용해 혈액의 흐름을 관찰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한 학자들이 있었다. 빛이 통과하면서 남긴 그림자를 검사하면, 피가 흐르는 흔적도 찾지 않겠냐고.

시간이 걸렸지만 연구는 성공했고, 이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그런 기술이 됐다. 스마트 워치를 뒤집으면 보이는 빛나는 센서, 거기에 이 기술이 담겼다. 이름은 PPG(Photoplethysmogram). 우리 말로는 ‘광 혈류 측정’이라 부르지만, ‘광 용적 맥파 측정’이나 ‘광 용적 측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빛을 이용해 피의 흐름을 관찰하는 기술이다.


PPG로 혈액을 관찰하는 방법

어떻게 혈류를 관찰할 수 있을까?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이는 것처럼, 심장이 피를 보내기 위해 뛸 때도 혈관을 따라 미세한 변화가 생긴다. 이런 것을 맥파(Plethysmogram, PTG)라 부른다. 맥파가 움직이는 속도는 피가 흐르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다. 심장에서 나온 혈액이 손가락 끝에 닿기까지는 약 1~2초가 걸리지만, 맥파는 약 0.16초가 걸린다고 한다.

PPG는 이런 맥파를 측정한다. 맥파가 움직이는 속도는 동맥의 두께, 혈액의 밀도 같은 혈관 상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 사람의 순환계–심장 및 혈관 상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계속 측정하면 심박수를 알 수 있기에 맥파만 잘 측정해도 전반적인 심장 건강 상태나 체력 수준을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럼 빛으로 어떻게 맥파를 측정할까? 맥파에 따라 변하는 미세한 혈류량을 조사해서 파악한다. PPG 센서에서 피부로 빛을 쏠 때, 혈류량에 따라 흡수되는 빛의 양이 달라진다. 따라서 빛이 얼마나 흡수됐는지를 측정하면, 혈액량의 변화를 알 수 있다. PPG라는 단어가 원래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빛으로(Photo) 변화를(plethysmo) 기록한다(graphy).

▲ 혈류를 측정하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Micatlan)


사람을 구하는 PPG 기술

PPG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1938년 미 세인트루이스 의대의 허츠먼(Alrick B. Hertzman.)이 발표한 논문에서다. 피부에 빛을 비췄을 때 반사되어 오는 양과 혈액량 사이의 관계를 발견해서 보고하면서, 이때 쓴 기술을 PPG라고 불렀다. 빛(자연광도 가능)과 반사나 투과된 빛을 계측하는 검출기만 있으면 쓸 수 있었기에, 간단하고 저렴해서 상용화도 빠르게 이뤄졌다. 피부에 절개하거나 바늘을 꽂을 필요가 없기도 하다.

대표적인 제품은 혈중 산소포화도(적혈구가 운반하는 산소량) 측정기다. 1974년 아오야기 타쿠오가 PPG 기술을 이용해 개발했고, 1983년부터 상용화됐다. 의료 필수 장비 중 하나로, 드라마에서 사고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가 손가락 끝에 끼고 있는 장비다. 이 장비가 개발된 이후, 산소포화도는 체온, 맥박, 호흡, 혈압에 이어 의사가 체크하는 생체 징후(Vital signs, 생명 유지 증거)가 됐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때는 무증상 확진자가 응급 상황에 놓이는 걸 파악하기 위해 쓰이기도 했다.

▲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기

PPG로 맥파뿐만 아니라 산소포화도도 측정할 수 있냐고? 그렇다. 적외선 및 적색광을 이용해 혈류량 변화를 계속 지켜보면서 혈중 산소 포화도(SpO2)를 측정할 수 있다. 이때는 적혈구에 결합된 산소화 헤모글로빈과 비산소화 헤모글로빈의 광 흡수도 차이를 검출해서 측정하게 된다. 맥파 측정에는 적색광 대신 녹색광을 주로 쓴다. 적색광과 적외선은 야외에서 태양광에 포함된 적외선 등의 영향을 받아 안정적인 맥파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녹색광은 적혈구에 적당히 흡수가 잘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하게 쓰이는 PPG 기술

간단하기는 하지만 응용하기 쉬웠던 기술은 아니다. 반사된 빛에는 꼭 필요한 정보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노이즈가 함께 들어온다. 당장 손목에 착용하는 스마트 워치에 들어 있는 PPG 센서만 해도, 피부색/몸동작/밴드에 닿는 압력/외부 광원 등 다양한 이유로 측정값이 계속 바뀐다. 이런 상황에서 잡음을 최소화하고, 측정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PPG 기술은 21세기에 들어와, 광전자 소자와 디지털 신호 처리 기술이 발전하고 나서야 활용처를 넓힐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난 2021년 6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피부 움직임에 따라 변형되는 신축성 OLED 디스플레이와 PPG 센서를 하나로 통합한 제품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피부 부착 후 천 번을 늘려도 정상 작동이 확인된 이 제품은, 피부에 밀착해 더 정확하게 심박 신호를 잡아낸다. 일상생활에서도 제품을 붙인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다. 분자기반 전자소재로 만든 유기 센서는 유연하고 신축성을 지니기에, OLED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에 잘 어울린다. 앞으로 상용화된다면, 고령화 사회에 꼭 필요한 제품이 될지도 모른다.

▲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스트레처블 헬스 모니터링 시스템 (출처: 삼성전자 뉴스룸)

심박수를 체크하는 스마트폰 앱도 있다. 스마트 워치와 마찬가지로, 신체 상태 측정을 위해 쓴다. 웰토리(Welltory) 앱이나, FDA의 승인을 얻은 피브리첵(FibriCheck) 같은 앱이 PPG 기술과 스마트폰 카메라를 결합해 심박수나 혈압 측정을 돕는다. 다만 모두 의료 제품이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관리해 평온한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웰빙 서비스에 가깝다. 편하게 쓸 수는 있지만, 측정값이 전문 장비와 20%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고됐다.

물론 전문 의료기기도 있다. PPG 기술은 실제로 의료용 장비를 개발하며 발전했으니까. CES 2022에 출품될 휴대용 혈압 모니터링 장치인 바이오디스크(Biodisc)는 둥근 조약돌 같은 장치에 손가락 끝을 올리면, PPG 기술을 이용해 혈압을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로 구동되며, 쓰기 쉬운 게 장점이다. 측정 시간은 약 20초. 한국 스카이랩스에서 개발한 반지형 의료기기 CART-1은 불규칙한 맥파를 감지하기 위한 의료기기다. 손가락에 끼면 특별한 조작 없이도 이용자의 맥파를 계속 모니터링해 불규칙 맥파가 나타나는지 기록한다.

▲ PPG 센서가 측정한 관람객의 심박수에 맞춰 전구가 깜빡인다. (출처: The Bentway)

예술 작품에 PPG 기술이 쓰이기도 한다. 멕시코 출신의 예술가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는 PPG 기술을 활용한 ‘펄스 토폴로지(Pulse Topology)’ 전시를 열었다. 관람객이 어두운 전시장에 들어가면, PPG 센서를 통해 검출된 관람객의 심박수에 맞춰 조명이 리드미컬하게 깜빡인다. 수십 명의 두근거림이 수천 개의 LED 불빛으로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아름답다.

PPG 기기를 장착하는 부위에 따라 활용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손끝, 스마트 워치는 손목, 스마트 링은 손가락에 착용하지만, 귀와 머리, 발목 등에도 PPG 기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귀로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가 개발되고 있으며, 2022년에는 PPG 센서를 장착한 이어폰이 출시될 가능성이 크다. 웨어러블 생체 인식 솔루션 기업 발렌셀(Valencell)에서는 귀에 부착해 혈압을 재는 장비를 출시할 예정이다.

우리는 보통 스마트 워치에서 주로 접하지만, 그 밖에도 PPG를 쓰는 곳은 더 있다. 최근에는 얼굴을 측정해 심박수 등을 확인하는 방법도 이용하기 시작했다. 감성텍에서 만든 ‘AI 심장 카메라’ 같은 기술이다. 이 기술을 적용한 ‘하트핏’ 앱을 쓰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1분 정도 쳐다보는 것만으로 이용자의 얼굴 변화를 측정해 심박수, 건강 정보, 집중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UCSF 제프리 올긴 교수팀은 PPG 기술을 응용해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로 당뇨병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빛으로 혈류의 흐름을 측정해 본인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이 가능한 PPG 기술, 바쁜 현대인들에게 건강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울 수 있는 필수 기술로 자리잡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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