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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곤란했던 생활 쓰레기와 산업 폐기물들이 소중한 자원과 제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단순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Upgrade)된 ‘업사이클링(Upcycling)’ 기술을 통해서다.

그동안의 리사이클링은 쓰레기와 폐기물에서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기계적, 화학적으로 분리해 원재료로 다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폐지를 재생지 재료로 사용한다거나 빈 깡통을 고철 소재로 사용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재활용된 소재나 제품은 품질이 저하되고 과정상 비용이 발생해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반면 최근 부각하고 있는 업사이클링은 쓰레기나 쓸모없는 제품들을 다시 새롭게 개조하고 변화시킨 후 재사용함으로써 원래보다 더 가치 있는 쓰임으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다운사이클링과 달리, 첨단 과학기술이나 세련된 디자인을 더해 본래 용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부가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탈바꿈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폐기물의 변신은 무궁무진! – 의류에서 레이싱카 연료까지?

업사이클링이라는 용어는 1994년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라이너 필츠가 ‘낡은 제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업사이클링 개념에 딱 들어맞는 사례는 패션 산업에서 먼저 등장했다. 트럭의 방수 덮개로 가방을 만들고, 고무나 페트병을 재활용해 의류를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K팝을 대표하는 방탄소년단(BTS)은 올해 9월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 폐기물로 만든 업사이클링 정장을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업사이클링 기술은 특히 에너지산업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폐기물 처리와 신재생에너지 생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복안이다.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중요한 연구성과들이 배출되고 있다. 2019년 6월 한국기계연구원 청전연료발전연구실은 커피 찌꺼기를 바이오 원유로 바꾸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커피 찌꺼기를 500℃까지 급속 가열해 수증기처럼 증발시키는 급속 열분해 방식으로 열량이 높은 바이오 원유를 얻은 것이다.

또 같은 해 11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환경자원재생연구센터의 연구팀은 음식물쓰레기를 난방 연료로 만드는 재생 고형연료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음식물쓰레기는 사료나 퇴비로 일부 재활용 됐는데,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사료는 조류인플루엔자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주요 감염원으로 지목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으며, 음식물쓰레기를 활용한 퇴비는 음식물 속 염분이 토양을 딱딱하게 만드는 문제로 인해 널리 쓰이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열분해한 후 탄소가 농축된 고열량 친환경 숯덩어리로 가공하는 방식으로 연료화에 성과를 이뤘다.

▲ 음식물쓰레기에서 난방 연료로 사용 가능한 청정연료 생산시설 개요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해 연료화 하는 연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청정에너지센터 연구팀은 목재 폐기물로부터 항공유 수준의 고탄소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은 열분해 과정에서 끈적하고 품질이 낮은 오일이 생산되는 한계가 있었으나, 연구팀은 수소를 첨가한 후 고온과 고압을 가하는 방식의 연속공정을 적용해 에너지 밀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바이오 항공유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폐기물의 연료화는 이제 연구에만 그치지 않고 산업에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단계로 이행되는 추세다. 프랑스의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스(Total Energies)는 와인 생산 후 남은 포도 찌꺼기를 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바이오에탄올 연료를 세계 최고 권위의 모터스포츠의 공식 연료로 사용할 전망인데, 대표적으로 2022년 FIA(국제자동차연맹)의 세계 내구 선수권 대회(WEC, World Endurance Championship)에서 사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반려동물 용품과 소형 가구로 재탄생한 포장재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가전회사들도 업사이클링의 다양한 적용을 모색하고 있다. 가전회사들이 주목하는 대표적인 폐기물은 포장재다. TV와 냉장고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포장재를 튼튼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통과정을 거쳐 가전제품이 가정에 도착하는 순간 포장재는 수명이 다한다는 점이다. 크기도 큰데 쓸데없이(?) 튼튼하기만 해서 한번 쓰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 기존에는 버렸던 TV 포장 박스를 반려동물 집이나 가구로 만들 수 있도록 한 삼성전자의 에코패키지 (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버려지는 TV 포장재로 고양이 집이나 소형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에코패키지를 선보여 호평을 받고 있다. 포장 박스에 점 패턴을 적용하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소품 제작을 위한 설명서를 제공한 것인데, 단순하면서도 쓰레기를 줄이는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덕분에 에코패키지는 세계 최대규모 가전 전시회인 CES 2020에서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를 인정받아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폐기물에서 황금을 캐는 현대판 연금술

▲ 삼성디스플레이가 폐에천트에서 추출한 은(Ag) 알갱이들

정보통신(IT)과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폐기물에서 소중한 자원을 추출해 다시 제품 제작에 활용하는 데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삼성디스플레이는 디스플레이 폐기물 속에서 보물을 찾는 데 성공했다. 디스플레이를 얇게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 과정에서 에천트(etchant)라는 화학액이 필요하다. 에천트는 하루에도 수십 톤이 사용되고 배출되는데, 삼성디스플레이는 사용이 끝난 폐에천트에 염화나트륨(NaCl)과 환원제(아스코브산) 등을 활용해 순도 99.999%의 은 분말을 추출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렇게 추출한 고순도 은은 본래 은의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은의 추가적인 채굴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OLED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필요한 빛 반사용 소재로 자원순환의 길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삼성전자의 경우 덴마크의 프리미엄 섬유 브랜드인 크바드라트(Kvadrat)와 파트너십을 맺고, 플라스틱 페트병에서 뽑아낸 폴리에스터 실을 활용해 만든 케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500mL 페트병 한 개로 2개의 케이스 제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케이스 포장재 또한 기존 플라스틱 포장재와 달리 모두 종이로 제작한 점에서도 친환경적인 가치를 담았다.


스마트폰의 이유 있는 변신은 무죄

우리나라 국민의 95%가 사용하고 있고 평균 2년 반마다 교체하는 스마트폰도 업사이클링이 주목하는 주요 아이템이다. 국내에서는 매년 1,900만 대의 스마트폰이 새로 태어나고 그와 비슷한 규모가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스마트폰은 기능이 멀쩡하더라도 신규 제품에 밀려서 생명을 다하는 경우가 많고, 오래 사용한 스마트폰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성능이 부족해지는 것이지 기본적인 작동은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중고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물인터넷(IoT) 디바이스로 재활용할 수 있게 하는 ‘갤럭시 업사이클링 앳 홈(Galaxy Upcycling at Home)’을 올해 1월 CES 2021에서 공개하고, 최근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베타서비스를 런칭해 눈길을 끌고 있다. 스마트폰의 사운드 센서를 활용해 아기나 반려동물의 울음소리를 감지하면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알람을 주고, 조도 센서를 활용해 어두워지면 조명이나 TV 전원을 켤 수 있다. 구형 스마트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업사이클링의 대중화를 이끌 것으로 전망돼 기대를 모은다.

▲ 삼성전자의 중고 갤럭시폰을 업사이클링한 디지털 검안기로 진료하는 모습 (출처: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업사이클링은 의료분야로까지 접목된다. 삼성전자는 국제실명예방기구(IABP)와 연세의료원과 협력해 폐기될 갤럭시폰을 디지털 검안기로 업사이클링해 의료기기가 부족한 국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고 갤럭시 스마트폰에 ‘아이라이크’ 플랫폼을 결합하여 의료진이 안저를 촬영하면 갤럭시폰 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사진을 분석해 안질환 여부를 확인하고, 안과의사들이 당뇨망막병증, 녹내장, 황반변성 등을 최종 진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난해 베트남에 이어 올해는 인도, 모로코, 파푸아뉴기니에 확대 지원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스마트폰에서 은퇴한 후 사회안전분야에서 제2의 폰생을 시작해 활약하는 사례도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공지능(AI) 영상분석 플랫폼 기업 델리아이와 함께 기부받은 중고 스마트폰을 지역사회 발달장애인, 독거노인 등을 위한 CCTV로 재활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예전 제품이라도 웬만한 CCTV보다 화질이 좋고, 통신 기능까지 기본으로 달려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업사이클링은 지구온난화 등 전 지구적 환경문제로 지속가능한 제품을 요구하는 시대적 트랜드와 완벽히 부합하면서 현대산업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ESG가 화두가 되는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경영을 다 하기 위해 다양한 업사이클링을 선보이며 친환경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중들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동시에 똑똑한 소비를 중시하기에 업사이클링의 물결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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