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있게! 알았지?”
한때 유행했던 드라마에서 패션디자이너인 주인공이 동료 직원에게 자주 쓰던 대사다. ‘날이 서 있는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는 디자인을 하라’는 의미로 당부하는 주인공의 의도가 ‘엣지’라는 하나의 단어에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엣지(edge)는 원래 어떤 사물의 맨 끝부분을 의미하는 단어다.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은 기존의 중앙 데이터 처리 방식인 클라우드의 한계를 보완한 가장 첨단화된 컴퓨팅 시스템으로,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팅 시스템의 맨 끝 단계이자 단말 장치에 가까운 곳에서 데이터가 처리된다고 하여 '엣지 컴퓨팅'이라 붙여졌다. 최근 5G 통신 기반의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등이 널리 사용되면서 기존 클라우드보다 전송 지연과 대역폭 제한을 줄여 더욱 빠르게 컴퓨팅, 사물인터넷 기술을 지원할 수 있는 '엣지 컴퓨팅'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클라우드는 어떤 단점이 있었나?
기존의 데이터 처리 과정은 중앙서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른바 클라우드(Cloud)라는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이를 저장하는 대상인 중앙서버가 마치 하늘에 높이 떠있는 구름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 모든 데이터가 중앙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형태이다 보니, 필요할 때 즉시 해당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대부분의 IT기업들은 그동안 클라우드 시스템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해 왔다.
그런데 클라우드 시스템 서비스의 사용량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서버와 데이터 센터에서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한것이다. 이와 함께 통신 과정에서 보안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자 과학자들은 새로운 방식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그 결과 '엣지 컴퓨팅'이라는 신개념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엣지 컴퓨팅은 컴퓨팅은 물론 메모리와 대역폭, 그리고 애플리케이션 같은 리소스(Resource)를 네트워크의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전송 지연과 대역폭의 제한을 줄여주는 신기술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중앙서버에서만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면, 엣지 컴퓨팅은 스마트폰처럼 통신으로 연결된 디바이스에서도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 엣지 컴퓨팅
엣지 컴퓨팅의 대표적 사례로는 미래 모빌리티 중 하나로 꼽히는 ‘자율주행자동차’를 들 수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실시간으로 도로와 보행자, 그리고 교통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IoT 기기의 상징적 모델로 통한다. IoT 기술을 자율주행자동차에 적용하는 이유는 순간적으로 주변 환경을 판단하여 처리해야 하는 자동차의 특성 때문이다.
만약 자율주행자동차가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으로 운행한다면, 카메라를 통해 수집하는 도로나 보행자에 대한 정보를 클라우드에 전송하여 분석한 후 그 결과를 다시 돌려받아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주행할 수 없다. 반면에 엣지 컴퓨팅 기반의 자율주행자동차는 데이터를 전송하고 수신하는 복잡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가령 사람이 달리는 차 앞을 지나갈 때 자율주행자동차는 즉시 상황을 판단해서 브레이크에 데이터를 전송하여 멈추도록 실행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5G 통신 시대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통신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이때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자동차는 자율주행이 기능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엣지 컴퓨팅 기반의 자동차는 통신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독자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으므로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이처럼 엣지 컴퓨팅이 자율주행 운행에 있어서 안전에 꼭 필요한 시스템이다 보니, 도심 전체의 원활하고 안전한 교통 체계 구축에도 활용되는 등 그 사용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미 라스베이거스 시가 스마트 교통 솔루션을 추진하면서 2018년부터 엣지 컴퓨팅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 시 당국은 지금까지의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여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엣지 컴퓨팅 기반의 교통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데, 당초 계획했던 대로 추진된다면 라스베이거스 시의 교통 정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장 안전을 위해서 활용되는 엣지 컴퓨팅
한편 엣지 컴퓨팅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조 현장에서 작업자의 안전을 모니터링하고, 환경 현장에서 오염 방지를 위한 감시자의 역할까지 하는 등 그 사용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제조 현장에서의 엣지 컴퓨팅은 배전반 상태를 진단하거나, 현장 근무자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는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조성하고 있는 스마트팩토리의 근무자 안전은 엣지 컴퓨팅이 담당하는데, 배전반 상태를 진단하는 기능은 현장의 열화상과 온도 등을 분석하여 배전반 화재와 전력차단 사고를 IoT가 보내준 데이터를 참조하여 판단한다. 또한 근무자의 체온과 뇌파, 심박 수 등을 측정하는 센서를 안전모에 부착하여 인명사고를 예방하는 업무에 엣지 컴퓨팅을 활용하고 있다.
▲ 엣지 컴퓨팅으로 하천 범람을 감시한다 (출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근무자의 안전 외에도 엣지 컴퓨팅은 스마트팩토리의 환경관리까지 맡을 예정이다. 폐수 오염도에 따라 수자원 정화 프로세스를 조절하고, 고가의 배기가스 전용 센서가 없어도 가상센서를 활용해서 배출 농도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엣지 컴퓨팅 기술을 이용하여 하천을 24시간 능동적으로 감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첨단 하천 감시 및 경보 시스템’을 개발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하천 상황을 상시로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메타버스에도 엣지 컴퓨팅이 활용된다?
엣지 컴퓨팅이 자율주행 자동차만큼이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야는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다. 메타버스는 초월이란 의미를 가진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용어로서,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한단계 더 확장된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메타버스 서비스의 선두주자인 로블록스(RBLX)를 떠올려 보면 엣지컴퓨팅이 메타버스가 작동하는 데 있어 얼마나 필수적인 시스템인지 알 수 있다. 로블록스는 지난 2021년 5월을 기준으로 570만 명의 최대 동시접속자를 달성했고, 1억 6400만 명 이상이 매월 플랫폼에 접속하고 있는 전 세계 최대의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중요한 점은 메타버스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플랫폼에 접속한 사용자들이 같은 세상에 들어와 있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보고 있다는 점을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또 하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디바이스는 모두가 제각각이다. 누구는 스마트폰으로 접속하고 누구는 노트북,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태블릿으로 접속한다. 디바이스의 성능에 따라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동시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의 숫자가 적게는 수 백만 명에서 많게는 수 억 명에 이를 수 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사용자들이 접속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시스템은 분산처리가 가능하고, 모든 디바이스에서 무리 없이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엣지 컴퓨팅만이 메타버스를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비대면 교육과 콘텐츠, 그리고 쇼핑 및 헬스케어 등 메타버스 기반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기본적인 일상생활의 상당 비중도 메타버스로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용자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또는 가상현실 기기 등을 통해 똑같은 가상의 세상을 보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엣지 컴퓨팅이 그런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로 대두되고 있다.
엣지 컴퓨팅, AI시대의 블루오션이 되다
앞에서 열거한 사례들처럼 엣지 컴퓨팅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엣지 컴퓨팅의 단점은 기술 도입을 늦추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속하고 정확한 자율주행을 위해 자동차 구석구석을 IoT 디바이스로 채워 넣은 만큼, 경제성은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보다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엣지 컴퓨팅에 대해 투자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들의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 전망도 대단히 밝다. 글로벌 시장 예측 전문기관인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28억 달러에 불과했던 엣지 컴퓨팅 시장이 향후 5년 동안 매년 26.5%씩 성장해서 오는 2024년에는 9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처럼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엣지 컴퓨팅 기술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자동화 기술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엣지 컴퓨팅 기술이 상용화되어 로봇, 센서 및 IoT 장치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와 같은 모바일 기기에도 적용된다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