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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적으로 알코올이 안 맞는지라 술을 거의 먹지 못하는 내가 1년에 한번 와인을 먹는 날이 있다. 그 날은 여름 휴가의 첫날밤에 온 가족이 서로 격려하며 행복한 휴가를 즐기자는 의미로 갖는 연중행사인데 아이들 은 먹지도 못하는 와인을 자기 잔에 받아서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와인잔을 돌리며 온갖 포즈를 잡아보느라 신이 나는 시간이다. 어차피 와인 맛도 모르고 다 먹지도 못하니까 손에 잡히는 와인을 아무거나 샀었는데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와인 샵 직원에게 추천을 받아 좀 괜찮다는 레드와인을 준비했고 문제는 거기 서 시작되었다.
대충 집었던 예전의 와인들과는 다르게 올해의 레드와인은 아이들이 와인잔을 돌리면 와인잔 안쪽에 자국이 생겼다. 아이들이 “이게 뭐야?” 라고 신기해하는 그 순간 직업병이 발동하였다. “그건 마랑고니 효과의 한 예인데 와인의 눈물이라고 하는 현상이야” 라고 말하는 순간, 나를 향하는 짜증의 눈빛들… 또 TMI 시작이라며 무언의 구박이 시작되길래 얼른 사과하고 분위기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랑고니 효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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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랑고니 효과란 표면장력(액체의 표면이 스스로 수축하여 가능한 한 작은 면적을 취하려는 힘)의 변화에 따라 액체가 표면장력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효과를 말한다. 그리고 이 표면 장력의 변화는 액체의 농도나 온도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탈리아 파비아 대학의 카를로 마랑고니(Carlo Marangoni)가 1865년 박사학위 논문에 와인의 눈물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한 이후 마랑고니 효과라고 불리게 되었으나 사실 이 현상을 먼저 언급한 건 삼중점(기체, 액체, 고체가 서로 공존하는 온도와 압력)을 제안한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이다. 톰슨이 1855년 발표한 논문에서 ‘와인과 알코올음료의 표면에서 관찰되는 흥미로운 유체의 움직임’이라고 묘사했던 와인의 눈물을 마랑고니는 다음 그림과 같이 물리학적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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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탄올(끓는점 78.4℃)과 물(끓는점 100℃)의 혼합물인 와인이 든 잔을 돌리면 잔의 벽면에 와인이 묻어 얇은 막이 형성된다. 이때 에탄올이 먼저 기체로 날아가 와인잔 벽면에 묻은 얇은 막의 와인은 상대적으로 물의 양 이 더 많아지게 된다. 즉 도수는 낮아지고 표면장력은 커져서 아래의 와인을 잘 끌어당기게 되는데 이렇게 마 랑고니 효과에 의해 밀려 올라온 와인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와인의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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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와인이 우는 건 아니다. 마랑고니 효과로 나타나는 와인의 눈물을 보려면 에탄올이 잘 증발되어 농도 차에 의한 표면장력의 차이가 크게 나타날 수 있을 만큼 높은 도수의 와인을 준비해야 한다.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은 11~13%, 가벼운 레드 와인은 12~13%, 무거운 레드 와인이 약 14~15% 정도의 알코올 도수 를 갖는데 와인이 눈물을 흘리려면 보통 14% 이상의 알코올 도수가 필요하다. 무겁고 드라이한 와인일수록 눈물을 잘 흘리고 소믈리에들은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와인을 마시지 않고도 와인의 색과 눈물 등을 보고 와인을 만든 특정 포도 품종을 알아낼 수 있다.
와인이 없어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마랑고니 효과
마랑고니 효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작은 실험을 하나 해보자. 평평한 접시 위에 물을 조금 담아 얇은 막이 생기게 한 후 후춧가루를 뿌린다. 후춧가루가 퍼진 접시의 한 가운데 약간의 액체 세제를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후추가 접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이는 주방세제가 접시 가운데에 있는 물의 표면장력을 감소 시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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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춧가루를 이용한 마랑고니 효과 실험 (출처: 위키피디아, Jubobroff)
마랑고니 효과를 활용한 기술
최근 이 마랑고니 효과를 이용하여 기존 과학 기술의 한계를 넘는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커피링 현상’은 테이블 위에 떨어뜨린 커피 방울이 마를 때 제일 바깥쪽에만 링처럼 진한 얼룩이 남는 현상으로 1997년 미국 제임스프랭크연구소의 연구원인 로버트 디건이 국제 학 술지 ‘네이처’에서 처음으로 원인을 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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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잔을 따라 흘러내린 커피자국에서 커피링 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커피 방울의 가장자리에 있는 물은 다른 곳보다 빨리 증발하는데 이때 물이 원래 형태를 유지 하려는 힘이 생겨 가장자리로 계속 물을 보내게 된다. 이때 물속에 있던 커피 가루도 함께 바 깥쪽으로 몰려가게 되어 커피링 무늬가 생긴다. ‘오호 신기하다’라고 생각하고 끝낼 만한 커피링 현상은 다양한 물질들을 액체에 섞어서 분사하는 잉크젯 프린팅이 사용되는 생산 공정 에서 재료를 균일하게 코팅할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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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올해 5월 국내 연구팀이 물방울이 증발하는 공간을 한시적 으로 밀폐하면 커피링이 완전히 소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증발율이 다른 두 액체를 혼합하면 휘발성이 높은 액체가 먼저 증발하는데 이 증기가 공간에 가둬지면서 물방울의 표면과 반응해 표면장력 차이를 일으 킨다. 이때 발생하는 마랑고니 효과로 액체가 더욱 강하게 섞이면서 커피링 효과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증발 시스템을 최적화하여 디스플레이 원료 퀀텀닷과 태양광 패널 원료 페로 브스카이트와 같은 기능성 소자들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잉크젯 프린팅 기술로 균일하게 패터닝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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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쟁이가 물 위를 이동하는 것 또한 마랑고니 효과의 한 예이다. 이런 자연 현상을 이용하여 국내 한 연구팀은 마치 소금쟁이처럼 외부장치 없이 수면 위를 움직일 수 있는 먼지 크기의 마이크로로봇을 올 8월에 개발하여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마랑고니 효과를 이용해 내·외부의 조작없이 처음 제작한 모양만으로 다양한 동작이 가능한 소금쟁이 로봇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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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묵직한 레드 와인이 흘리는 눈물이었으나 물리학적으로 원리를 이해하게 된 이후에는 프린팅과 코팅 기술의 난제를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기도 하고 소금쟁이처럼 인체 속을 떠다니는 마이크로로봇을 만드는 중심 기술이 된 마랑고니 효과는 사소한 관찰이 얼마나 큰일을 해내는지에 대한 좋은 예이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