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은 좋든 싫든 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 몸 전체 질량의 70% 정도가 물이죠. 또 우리에게 필요한 여러 영양분은 물에 녹은 상태에서 운반됩니다. 만약 물이 없었다면 우린 이렇게 여러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다세포생물로 진화할 수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영양분은 물에 녹아 운반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산소와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지요. 그래서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약 80%에 이르는 수의 적혈구가 혈관 속을 누빕니다. 세포로 갈 때는 산소를 가져가고 올 때는 이산화탄소를 운반하는 거죠. 그럼 왜 산소와 이산화탄소는 물에 잘 녹질 않는 걸까요?


물과 친하면 친수성, 물과 친하지 않으면 소수성!

물 분자는 다들 아시다시피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가 모여 만들어집니다. 이때, 두 수소 원자는 아래 그림처럼 산소를 중심으로 104.5도의 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굽은 구조를 가지다 보니 수소가 모여 있는 쪽은 부분적으로 플러스 전기를 띠게 되고, 반대쪽은 부분적으로 마이너스 전기를 띠는 거죠. 이렇게 분자 전체로는 중성이지만 부위에 따라 부분적인 전하를 가지는 분자를 극성분자라고 합니다.

이런 관계로 물 분자는 주로 극성을 띠는 분자나 이온과 결합을 더 잘합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다양한 영양분들, 아미노산, 포도당, 바타민, 무기염류들은 대부분 극성을 띠기 때문에 물에 잘 녹는 거지요. 하지만 이산화탄소와 산소 같은 분자들은 극성을 띠지 않는 무극성분자기 때문에 물에 잘 녹질 않습니다. 극성분자나 이온처럼 물과 친한 물질을 친수성 물질이라고 하고, 물과 친하지 않은 물질을 소수성 물질이라고 하지요. 공기를 구성하는 질소나 산소, 이산화탄소는 모두 무극성 물질로 소수성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수성 물질로 기름이나 고무, 유리 등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등의 고분자 물질도 소수성입니다.

그런데 소수성 물질 중에서도 물과 극히 친하지 않은 물질을 초소수성 물질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소수성 물질과 초소수성 물질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물질 위에 물방울을 올려놓는 겁니다. 물과 친한 물질과 만나면 물방울이 옆으로 퍼져 물질과의 접촉면을 넓힙니다. 반대로 물과 친하지 않은 물질 위에 올려진 물방울을 물질과의 접촉면을 줄여 반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하지요. 초소수성 물질의 경우는 아예 완전히 둥근 모양을 해서 물질과의 접촉면을 최소화합니다. 그래서 물과 이루는 각도가 150도 이상 되는 경우 초소수성 물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초소수성

자연에서 초소수성을 띠는 대표적인 물질이 연잎입니다. 물속에 뿌리와 가지를 두고 잎만 물 위로 내민 연의 경우 잎 표면에 물이 묻을 일이 아주 잦지요. 이렇게 물이 잎 표면에 있으면서 여러 지저분한 물질과 섞이면 광합성을 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연잎은 표면이 초소수성이 되도록 진화합니다. 연잎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표면에 3~10㎛ 크기의 수많은 돔 형태의 돌기가 가득합니다. 워낙 크기가 작으니 물방울이 그 사이로 스며들지 못하고 돌기 위해 매달려있는 상태가 되지요. 그래서 연잎이 조금만 움직여도 불안정한 물방울은 또르르 구르게 되는데 이때 연잎 표면의 먼지가 같이 쓸려 내려가 표면을 광합성을 하지 좋은 깨끗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전력 설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연잎 원리를 이용한 코팅기술 (출처: YTN 사이언스)

이런 초소수성에 주목한 과학자들은 인공적으로 초소수성 코팅을 만듭니다.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을까요? 바로 나노 사이즈와 마이크로 사이즈가 혼합된 거친 표면이 필요합니다. 앞서 연잎이 바로 이런 성질을 가진 거지요. 이렇게 아주 작은 돌기가 있으면 물이 닿을 표면 자체가 아주 적어져 비로소 초소수성을 띠게 됩니다. 돌기 사이의 공기층 위에 물방울이 떠 있는 모양새가 되는 거지요. 이렇게 인공적으로 만든 초수성 코팅을 활용하면 칼로 물을 베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초소수성 물질은 이미 다양하게 연구되거나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디스플레이 분야입니다. 얇은 막 형태의 투명한 초소수성 필름을 디스플레이 표면에 부착하는 거지요. 지문이 잘 묻어나지 않고 먼지가 쌓여도 물로 슬쩍 씻어내면 깨끗해집니다. 건물 표면에도 초소수성 물질을 코팅하면 물로 씻기만 해도 먼지가 다 사라지니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요.

이런 특징으로 인해 태양광 전지의 표면 재료로 활용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일단 물로 씻기만 해도 표면이 깨끗한 것이 장점입니다. 태양전지는 표면의 이물질에 의해 햇빛이 차단되면 발전 효율이 떨어지지요. 그래서 항상 표면을 깨끗이 닦아주어야 하는데 초소수성 물질을 코팅하면 물만 슬쩍 뿌려도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거지요. 거기다 돌기가 큰 역할을 합니다. 돌기의 크기를 태양광 파장보다 작게 만들면 표면의 반사율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현재 태양광 전지는 약 35% 정도가 반사되는데 초소수성 코팅을 하면 반사율이 6%로 줄어들어 약 30% 정도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거지요.

▲ 초소수성 물질을 태양광 전지 표면에 코팅하면 발전 효율을 위해서 표면을 깨끗이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

또한 초소수성 코팅제는 수분에 민감한 제품에도 사용됩니다. 음료수가 쏟아져도 털어내기만 하면 깨끗해지는 기능성 의류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고, 전자제품의 표면을 코팅하는 데도 사용됩니다. 배의 경우도 선체 전체에 초소수성 코팅을 하고, 구름 속을 다니는 비행기 날개에도 사용됩니다. 그리고 표면을 건조하게 유지하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달라붙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의료기구에도 사용되고 있지요.

독일에서는 시민들이 이 초소수성 코팅제를 재미있게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술집이 많아 항상 밤마다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들로 골치를 썩던 세인트 파울리 가의 주민들이 부근 벽에 초소수성 코팅제를 발라버린 것이죠. 보통 소변을 보면 일부는 벽에 스미고 일부는 아래로 흐르게 되는데 초소수성 코팅제를 바르자 소변이 바로 반사되면서 노상방뇨자의 바지를 적셔버린 것이죠. 이게 소문이 나자 노상방뇨가 줄어들었고, 또 벽에 흡수되지 않고 흘러버리니 악취 또한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돌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한 제조공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산 비용이 많이 들지요. 그리고 돌기구조가 워낙 미세하다 보니 표면이 잘 깨지는 약점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소수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가격도 비싸고 강성은 약해집니다. 이런 점 때문에 더 많은 곳에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싼 가격에 더 내구성이 좋은 초소수성 물질을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