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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리나(Sapphirina)라는 동물플랑크톤이 있다. 몇 mm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갑각류다. 이름처럼 바다의 사파이어라 불린다. 현미경으로 봐야 제대로 보이긴 하지만, 정말 다양하고 아름다운 빛을 낸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생물도 아닌데, 투명하게 변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빛이 45도 각도로 비치는 순간, 사피리나에 반사된 빛이 가시광선에서 자외선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 눈은 자외선을 볼 수 없기에, 그 순간 사피리나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이런 현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가능하다면, 그동안 상상만 했던 많은 일이 현실이 된다. 영화 원더우먼에 나오는 투명 비행기, 해리포터에 나오는 투명 망토, 공각기동대에서 볼 수 있는 광학미채 슈트까지 정말 많다. 투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철학자 플라톤의 책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욕망이니까. 굉장히 어려워 보이는데, 이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다고 나선 기술이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메타물질(Metamaterial)이다.


메타물질이 보여준 투명 망토 제작 가능성

메타물질은 자연에 없거나, 쉽게 찾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지도록 사람이 만든 물질을 말한다. 인공적인 새로운 물질, 대안 물질이란 뜻이다. 주로 빛, 그러니까 전자기파와 관련된 광학적 특성을 가진 물질을 많이 만들지만, 음파나 열전도 등 다른 여러 가지 파동에 대응하거나, 특수한 물리적 특성을 가진 메타물질도 연구하고 있다. 크기는 정말 작다. 메타물질이 제어하려는 파장보다 작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시광선 파장이 400~700nm 정도라면, 가시광선을 제어하기 위한 메타물질은 그보다 작은 100nm 정도가 돼야 한다.

앞서 말한 투명화와 메타물질은 무슨 관계일까?

메타물질은 주로 파동을 다루기 위해 만든다. 제대로 만들면 빛을 비롯해 음파, 전자파, 지진파 등 여러 가지 파동을, 자연적인 특성과는 다르게 우리 뜻대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빛이 우리에게 닿았을 때, 반사되지 않고 뒤로 흘러간다면 어떨까? 소리가 들리기 전에 다른 곳으로 새어버린다면 어떨까?

다른 사람은 우리를 보지 못하고, 다른 소리를 우리는 듣지 못하게 된다. 메타물질은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실제로 지난 2006년, 미 듀크대학 데이비드 스미스 교수 연구팀이 이를 증명했다. 지름 5cm, 높이 1cm의 작은 구리관을 메타물질로 만든 고리로 둘러싸고 마이크로파를 쐈더니, 레이더에서 감지하지 못했다. 마이크로파는 구리관에 부딪히지 않고 그냥 흘러가 버렸다. 특정 조건에서만 작동한다는 한계는 분명했지만, 투명 망토를 만들 가능성이 엿보였다. 이때부터 메타물질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2015년에는 미국 UC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3차원 입체 물체를 가시광선 영역에서 사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보통 빛이 물체에 닿으면 반사되거나(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다), 흡수되거나(까맣게 보인다), 통과하면서 꺾인다(굴절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메타물질을 이용하면 빛을 엉뚱한 방향으로도 꺾을 수 있다. 거울을 이용해 햇빛을 다른 곳에 비추는 것처럼, 특정 각도로 빛을 제어한다. 이런 메타물질을 물체 주변에 여러 개 설치해 길을 만들면, 그 길을 따라 빛이 다른 곳으로 흘러버린다. 이러면 반사가 되지 않으니 우리가 볼 수 없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처음 생각한 사람은, 러시아 물리학자 빅토르 베셀라고(Victor Veselago)였다. 그는 196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연과는 반대되는 특징을 가진 물질이 있다면, 어떤 물리적 특성을 가지게 되고, 어떤 분야에 응용하면 좋을지 제시했다. 볼록 렌즈인데 빛이 흩어진다면? 오목 렌즈인데 빛이 모인다면? 재미있는 생각이지만, 이런 개념이 구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한참 나중 일이다. 그런 물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니까.

1990년대에 영국 임페리얼 대학 물리학자 존 펜드리 교수는 군용 스텔스 기술을 조사하다가, 방사선을 흡수하는 재료 특성이 물질의 분자나 화학 구조가 아니라, 물리적 형태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물질 내부 구조를 아주 미세하게 변화시키면 물성이 바뀐다는 걸 알게 되고, 앞으로 이렇게 만들어지는 물질은 기존 물질을 뛰어넘을 거라는 의미로 ‘메타물질’이라 불렀다. 이후 펜드리는 일반 물질의 결정 구조와 비슷하게, 특정 형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인공 구조물-메타물질을 고안하게 된다.

21세기 들어와 메타물질 연구가 활발해진 데에는 반도체 공정 기술 발달도 빼놓을 수 없다. 수십 나노미터 이하 미세 패턴을 형성할 수 있는 제작 기술이 없다면, 메타물질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메타물질은 수학과 물리학에 기반해 구조를 만들고 설계한다. 화학적으로 특성이 결정되는 기존 물질과는 다르게, 기계적인 구조물에 더 가깝다. 메타원자로 불리는 인공 원자로 구조를 만들고, 만들어진 구조를 주기적으로 배열해 물질을 만든다. 여기서 원자의 형태, 구조, 크기, 배열 등을 조정해 빛이나 음파의 움직임에 영향을 끼친다.


다양하게 활용될 메타물질

메타물질이 가지고 온, 파동을 인공적으로 제어한다는 개념은 정말 매력적인 아이디어다. 하지만 정말 쓸 곳이 있을까? 아직 상용화된 메타물질은 드물다. 다만 연구되고 있는 응용 및 활용 분야는 정말 넓다.

층간 소음을 비롯해 생활 소음을 줄이거나, 음파 탐지기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잠수함을 만들 수 있다. 전자기파를 제어할 수 있다면 IT 기기나 전자 제품 초소형화에 응용할 수 있으며, 고성능 통신 부품, 센서와 검출기, 태양광 발전, 의료 진단 영상 장치 등 다양한 분야에 쓸 수 있다. 음향을 제어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다. 초음파 영역 대에서 사람 뼈를 찍거나 금속을 투과할 수 있어서, 의료용이나 비파괴 검사에 쓰는 방법도 찾고 있다. 지진파 제어가 가능하다면, 대형 지진에서 사람과 건물을 지킬 수도 있다.

포항공대 노준석/김영기 교수 연구팀은 메타물질에 액정기술을 붙여,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초소형 홀로그램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가시광선 영역에서 매우 선명한 홀로그램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한번 만들면 광학적 특성을 바꾸기 힘든 메타물질의 단점을, 액정기술로 보완했다. 앞으로 미생물이나 화학물질 검출 센서에 이 장치를 접목할 예정이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팀은 3D 프린팅이 가능한 판 격자 구조의 플라스틱 메타물질을 만들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강성과 강도를 가지고 있지만 매우 가벼운 이 물질은, 해양, 자동차, 항공기 및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 위해 프린팅될 수 있다.

▲ 국내 연구진, 초박막 메타렌즈 개발 (출처: YTN 사이언스)

포항공대 노준석 교수팀과 고려대 이헌 교수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한승훈 마스터팀은 메타물질을 활용해, 적외선 초박막 메타렌즈와 이를 대량생산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렌즈는 기존 렌즈의 성능을 유지하면서 두께는 머리카락 1/100에 불과하다. 실제 상용화가 이뤄지면 기존 적외선 카메라 장치의 크기를 크게 줄일 수가 있다.

투명 망토에서 시작된 메타물질 연구는 이제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갔다. 아직 상용화가 되려면 많은 어려움이 남아있지만, 빠르게 열매를 맺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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