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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100명의 게이머가 온라인으로 접속해 최후의 1인이 살아남을 때까지 전투를 벌이는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참가자 모두가 비행기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활강을 시작해 지상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이 때 중요한 건 도착 지점의 위치인데, 어디에 낙하 하느냐에 따라 초반에 유리한 상황으로 게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비슷한 위치에 수많은 참가자가 뛰어내리게 되는데, 아래 그림의 두 게이머 중 누가 먼저 지상에 도착할까?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란?

▲ 사이클로이드 곡선 생성 원리 (출처: 위키피디아, Zorgit)

정답을 알려주기 전에 궁금한 건, 도대체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뭐길래 게임에서도 이렇게 활용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사이클로이드(cycloid)는 바퀴(wheel)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kuklos)에서 나온 말로 회전하는 바퀴 상의 한 점의 궤적을 표현한다. 원을 한 직선 위에서 굴렸을 때,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곡선의 자취가 바로 이 곡선이다. 자전거 바퀴의 옆면 어딘가에 점을 하나 찍고, 바퀴를 앞으로 굴리면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그려진다.

▲ 사이클로이드 곡선 강하 비교 실험 (출처: YTN 사이언스)

이 곡선은 최단 시간 강하 곡선으로, 말 그대로 가장 짧은 낙하 시간을 갖는 곡선이다. 이는 사이클로이드 곡선 위의 물체가 초반에 받는 중력가속도가 직선보다 크기 때문에 빠르게 낙하하게 되고, 기울기가 완만한 후반부에서는 관성에 따라 속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서 제기한 게임의 낙하 속도 문제의 정답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타고 내려오는 아래의 게이머가 된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또 다른 특이한 성질도 있다. 바로 어떤 점에서 출발을 해도 가장 낮은 위치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시 강하 곡선’ 또는 ‘등시 곡선’이라고 부른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역사

▲ ‘사이클로이드’ 명칭을 붙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초상화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처음부터 ‘최단 시간 강하 경로’라는 주제로 연구되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는 1501년 프랑스의 수학자 부벨(Bouvelles)이 ‘움직이는 원 위의 한 점에 의하여 생성되는 곡선’이라는 문서에서 원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최초로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호빵 모양의 사이클로이드 곡선 아랫부분의 넓이가, 곡선의 기초가 되는 생성원 넓이의 3배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사이클로이드’라는 이름도 이때 갈릴레이가 붙였다.

이후 사이클로이드의 접선을 그리거나, 넓이를 구하는 독자적인 방법들이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페르마나 데카르트, 토리첼리 등 다양한 수학자들로부터 나왔다. 또 영국의 건축가이자 천문학자였던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은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길이가 생성원 지름의 4배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적분으로 간단히 증명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과거엔 기하학적인 방식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웬만한 노력으로는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단 시간 강하 곡선의 특징과 관련해서는 1696년 스위스의 수학자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가 당시 유럽의 수학자들에게 문제를 낸 기록이 있다.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공이 중력에 의해 내려갈 때, 가장 빠른 경로(곡선), 즉,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뉴턴, 라이프니츠, 로피탈이 풀이에 성공했다고 하며, 특히 뉴턴은 단 하루 만에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18세기까지 수많은 수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고, 이러한 연구의 과정에서 미적분이나 해석기하학 등을 탄생 혹은 발전시키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적용된 생활 속 응용 사례

▲ 사이클로이드 곡선 형태로 휘어져 있는 워터파크 슬라이드

천재 수학자와 과학자들에게 꽤 즐거운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던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놀랍게도 일상 생활 속에서 오랫동안 활용되어 왔다. 워터파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워터슬라이드를 보면, 놀이터에서 보던 미끄럼틀과는 모양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직선이 아닌 사이클로이드 곡선 형태로 휘어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적인 미끄럼틀보다 더 빨리 내려오기 때문에 압도적인 속도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출발한 이용자가 완전히 지상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다음 이용자가 탑승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더라도 도착 시간이 같다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특징을 고려한 충돌 사고 예방 조치인 것이다. 비슷한 예로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도 가장 빠른 속도로 내려온다는 아찔한 경험을 이용자에게 최대한 제공하기 위해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 진자시계는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에 의해 발명된 이래 193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간 기록원이었다.

일정한 진자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진자시계도 사이클로이드의 등시 강하 곡선 성질을 활용한다. 이론상 진폭에 상관없이 같은 주기로 움직이며, 시계의 추는 사이클로이드 곡선상의 어떤 위치에서 출발을 해도 최저점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동일하다. 물론 추를 매단 줄의 마찰력 때문에 일정한 주기가 유지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런데도 여러 가지 기계적인 장치를 통해 이론적인 결과에 가까운 결과를 만날 수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나무로 지은 건물이 고여있는 빗물 때문에 썩는 것을 방지하고자 지붕의 기와를 사이클로이드 곡선 형태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빗물이 가장 신속하게 떨어지게 된다. 빗물이 강제로 최단 시간 강하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연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관찰된다. 독수리나 매는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서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활용해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온다. 물고기들도 물의 흐름을 통한 이동 속도를 높이기 위해 비늘 모양을 사이클로이드 곡선의 형태로 진화시켰다.

자동차 감속기 설계에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에서 파생된 ‘에피사이클로이드(epicycloid) 곡선’이 활용된다. 주어진 원에 외접하는 임의의 한 원이 주어진 원의 곡면을 따라 회전할 때, 외접원 위의 찍혀있는 한 점이 그리는 자취를 말한다. 즉, 평면상에서 생성원이 그리는 곡선이 아니라, 다른 원의 곡면상에서 생성원 위의 점이 그리는 곡선이 된다. 자동차 감속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기어의 톱니바퀴 모양을 손실률이 가장 적은 에피사이클로이드 곡선의 형태로 만들어서 효율성을 높인다.

천문학에서는 영원히 반복되는 빅뱅 이론을 지지하기 위해 사이클로이드 모델이라는 우주론의 모델이 등장하기도 했다. 우주 질량의 밀도가 너무 커서 결국 다시 수축하여 붕괴하고, 특이점에서 다시 팽창하여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따라 영원히 유사한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찾아보면 사이클로이드 곡선이 활용되지 않는 분야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우리와 과학자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정말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수학적 형태지만, 그 이상으로 심오한 가치를 갖는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Euclid)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의 법칙이란, 신의 수학적 방법일 뿐이다. 지금의 사이클로이드 곡선 역시 수학적 방법으로 간결하게 만들어진 불변의 아름다움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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