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커피를 내려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 할 참에 컴퓨터에서 나는 기계음이 신경쓰여 음악을 튼다. 음악을 들으며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사이 어느 샌가 컴퓨터 기계음은 사라졌다. 아니 내 귀는 더 이상 컴퓨터 소음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단지 기분 탓은 아니다. 어떤 음이 다른 음에 의해 잘 들리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마스킹 효과(masking effect)’ 혹은 ‘청각 마스킹 효과’라고 한다. 마스크는 우리가 얼굴에 쓰는 것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본래 감추고 차폐한다는 뜻도 있다. 즉 다른 음을 가린다는 의미에서 이를 ‘마스킹 효과’라고 한다.


마스킹 효과는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 것일까?

그럼 마스킹은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청각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소리를 듣는 건 귀의 안쪽에 있는 달팽이관이다. 달팽이관은 긴 튜브형의 관이 달팽이 껍데기 모양으로 말려있는 형태를 띠고 있고 그 속을 림프액이란 액체가 채우고 있다. 귀로 들어온 소리는 림프액의 파동이 되어 달팽이관을 지나간다. 달팽이관에는 섬모를 내놓고 있는 청세포들이 있다. 림프액의 진동에 섬모가 떨리면서 세포막의 이온 채널이 열리면서 세포막 바깥의 이온이 들어온다. 전기 신호가 발생하고 연결된 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되어 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청세포마다 이 시스템이 조금씩 달라 이온채널이 열리는 진동수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높은 음과 낮은 음을 구분할 수 있다. 또 진동의 세기가 달라지면 채널이 열리는 청세포의 개수가 달라져 우리는 큰 소리와 작은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이 정도 원리를 알면 마스킹 효과에 대해 이해할 준비가 끝났다.

▲ 마스커(강한 큰소리)가 존재할 때 최소 가청 한계가 변동된 하한 곡선을 나타낸 그래프

마스킹 효과의 기본 원리는 최소 가청 한계를 높이는 것이다. 어떤 소리가 들리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크기는 가져야 하는데 이를 ‘최소 가청 한계’라고 한다. 달팽이관의 청세포 섬모가 어느 정도 이상으로 흔들려야 우리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큰 소리가 섬모를 크게 움직여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원래의 음이 작은 소리였다면 그 진동은 큰소리에 의해 움직여진 섬모의 움직임에 묻혀버리게 된다. 즉, 최소 가청 한계가 높아져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때 방해하는 소리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최소 가청 한계가 더 높아져 마스킹 효과도 커진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공사장 소음이 큰 곳에서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려면 자꾸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최소 가청 한계가 커지는 경우 중 하나는 두 소리의 음 높이가 비슷할 때다. 음의 높이는 파동의 진동수(혹은 주파수라고도 한다.)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우리 귀의 청세포들은 위치에 따라 반응하는 진동수가 다르다. 그래서 한 음에 대해 반응하는 청세포가 차이가 많이 나는 다른 높이의 음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마스킹 효과가 떨어진다.

반대로 서로 비슷한 높이의, 즉 진동수가 비슷한 높이의 음에는 반응을 더 잘한다. 따라서 서로 비슷한 높이의 음이 들리면 해당 청세포의 최소 가청 한계가 다른 청세포보다 높아지게 된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의 음과 콘트라베이스의 음은 서로 구분이 잘 되지만 같은 바이올린끼리의 음은 구분이 잘되지 않는 이유다. 또 비가 내릴 때 주변에서 나는 소음은 묻혀서 조용하지만, 사람 소리는 잘 들리는 이유도 된다. 보통 주변에서 나는 잡음은 그 진동수가 빗소리와 비슷하게 낮은데 비해 음성은 빗소리에 비해 진동수가 꽤 높은 편이라 마스킹 효과가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킹을 하는 소리의 크기가 커지면 진동수가 다른 소리도 마스킹을 하게 되는데 이때는 낮은 음의 소리가 마스킹 효과가 크다. 이는 마스킹하는 소리가 낮은 경우 마스킹하는 진동수 폭이 넓고 소리의 음이 높은 경우는 마스킹하는 진동수 폭이 좁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는 귀의 청세포가 낮은 소리일수록 감지하는 영역이 서로 많이 겹치고 높은 소리일수록 겹치는 폭이 좁기 때문이다. 이를 확산 마스킹이라고 한다. 큰 북을 둥둥 울리면 주변의 음 높이가 다른 낮은 소리를 듣기 어려워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고음의 바이올린 소리는 아무리 커도 같이 연주하는 다른 악기의 소리를 마스킹하지 않는다.

또 하나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다른 쪽에는 끼지 않고 있을 때,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의 마스킹 효과가 나타나질 않는다. 이는 끼지 않은 쪽의 청세포가 마스킹 효과를 받지 않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마스킹 효과가 뇌의 작용이 아니라 청세포의 작용임을 알 수 있다.


동시 마스킹 효과와 경시 마스킹 효과의 차이

이런 마스킹 효과는 두 소리가 동시에 들릴 때도 일어나지만 순차적으로 들리는 경우에도 일어난다. 동시에 두 소리가 들릴 때 한 소리가 묻히는 것을 ‘동시 마스킹(Simultaneous masking) 효과’라고 하는데 그 원리는 앞서 이야기한 이유들 때문이다.

한편, 두 소리가 순차적으로 들릴 때 나타나는 마스킹 현상을 ‘경시 마스킹(Temporal masking) 효과’라고 하는데 큰 소리가 들린 직후의 작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큰 소리를 들으면 청세포의 섬모가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때 청각의 최소 가청 한계가 순간적으로 높아진다. 그래서 평소라면 들렸을 작은 소리가 이 높아진 가청한계를 통과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큰 소리가 먼저 들은 소리도 묻어버리는 현상이다. 이미 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다니 청각마스킹은 시간을 역류하는 것일까? 원리는 이렇다. 청세포의 섬모를 흔드는 소리의 파동은 딱 한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연못에 돌멩이를 던진 때 생긴 파문이 한참 계속 이어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렇게 파동이 이어지는 것이 청세포가 음을 감지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어떤 소리를 들은 뒤 바로 비슷한 높이의 더 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새로운 파동이 섬모를 덮어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전의 파동이 이어지지 않으면서 앞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이 경우 뒷소리와 앞소리의 간격이 몇 밀리초 ms 정도로 아주 짧아야 한다.


일상 생활 속 마스킹 효과를 찾아볼 수 있는 현상

이런 마스킹 효과는 일상에서도 자주 접하게 된다. 먼저 빗소리다. 폭우가 아닌 잔잔하게 내리는 비는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빗소리는 빗방울이 사물에 부딪칠 때 나는 파동이다. 대부분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벽체나 바닥, 아스팔트, 식물의 잎이나 줄기, 바위, 철망 등에 부딪친다. 부딪치는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만들어지는데 이에 따라 각기 비슷한 진동수의 다른 소음들을 마스킹하는 효과를 낸다. 봄비가 조용히 내리면 주변이 잠잠해지는 현상은 비에 의한 마스킹 효과다.

또 다른 마스킹 효과의 예는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이란 낮은 소리부터 높은 소리까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모든 영역에 걸쳐 비슷한 크기의 파동을 동시에 내놓을 때 들리는 소리다. 백색소음의 또 다른 특징은 불규칙한 소리라는 점이다. 마치 삼원색의 빛을 합하면 하얀색이 되듯이 모든 소리를 매우 복잡하고 랜덤하게 합쳐버리면 백색소음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백색소음에 익숙하게 되면 이 백색소음보다 작은 생활 잡음, 예를 들어 냉장고 소리, 층간소음, 모깃소리와 같은 원하지 않는 잡음들을 가릴 수 있게 된다. 백색소음의 대표적인 예는 폭포소리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각기 다른 높이에서 바위나 물표면 주변의 나무들에 부딪치면서 다양한 영역의 진동수를 가진 소리를 만든다. 그래서 폭포 주변에서는 물소리 말고 다른 소리가 묻혀버린다.

조용한 카페의 음악은 또 다른 마스킹이다. 카페 음악 중에는 보컬이 빠진 연주곡이 많다. 이 연주곡들은 차 잔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카페 밖 자동차의 소음, 커피를 내리는 소리, 옆자리 손님들의 식사 소리들을 마스킹한다. 오히려 음악이 없는 카페에서 우린 더 소음에 민감해진다. 하지만 맞은 편 일행과의 대화가 마스킹되면 곤란하다. 고음의 보컬은 가까운 이들이 하는 말마저 마스킹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보컬이 빠진 연주곡 혹은 보컬이 있더라도 낮은 음의 나지막한 음악들이 주로 선곡된다.

마스킹효과는 의학적 치료에도 사용된다. 외부 소리 자극이 없는데도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소리를 느끼는 현상을 이명이라고 한다. 주변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소리에 혼자 괴롭다. 이럴 때 이명 마스커를 사용하기도 한다. 주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는데 부드러운 자연소리나 백색 소음 등을 통해 이명을 마스킹하는 것이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내 이름이 잘 들리는 이유는?

그런데 마스킹 효과와 달리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내 이름이 잘 들리는 ‘칵테일 파티 효과 (Cocktail party effect)’라는 것이 있다. 시끄러운 장소에서 친구와 이야기할 때 우린 오로지 상대의 말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주변이 웬만큼 시끄러워서는 상대의 말을 놓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우리는 친구의 음성으로 분류되는 소리 말고 나머지에 대해선 흘려버린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은 말 그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전혀 의식치 않게 된다. ‘선택적 주의’ 혹은 ‘선택적 청각’이라고도 한다. 앞서 마스킹 효과가 주로 청세포의 프로세스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칵테일 효과는 뇌와 귀의 협력 프로세스다. 뇌가 특정 목소리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면 귀의 달팽이관은 해당되는 소리의 크기를 높이고 다른 소리는 낮추는 식으로 친구의 소리만 증폭시킨다.

그런데 이 칵테일 효과는 전혀 뜻밖의 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당신이 친구와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당신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주변에서 말한다면 뇌는 그 순간 익숙한 단어-이름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 혹은 당신이 주식을 산 회사의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의 누군가가 그 회사 이름을 말한다면 마찬가지로 뇌는 당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단어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 순간 친구의 말을 놓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칵테일 효과와 마스킹 효과는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먼 우리의 조상은 야생의 현장에서 다른 어떤 소리보다 주변 동료의 경고 신호에 그리고 천적의 으르렁대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었고, 청각과 관련된 뇌는 바로 그런 소리를 듣기 위해 나머지 소리들, 주변의 바람소리, 새소리, 혹은 자신의 생존과 무관한 소리들을 흘려보내도록 진화한 것이다. 마스킹 효과가 인간의 음성보다 훨씬 낮은 음에서 더 효과가 큰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