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전략 기술에 대한 예측은 다른 기술 분야 예측과 조금 다르다. 1~2년 정도 짧은 기간에 대한 예측은 매우 정확하지만, 10년 단위로 넘어가면 크게 틀리는 경우도 많다.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데다, 새로운 기기나 기술이 갑자기 유행하면서 흐름 자체를 바꾸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2020년은 조금 특이한 경우다. 코로나19로 인해 단기 예측조차 맞지 않을 것이라 봤는데, 돌아보면 거의 들어맞았고, 예측보다 더 빠르게 변화가 진행됐다.

세계적인 IT 리서치 그룹 가트너가 내놓는 기술 트렌드 보고서는 향후 3~5년 안에 중요하게 떠오를 기술 트렌드를 다룬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을 고려하기에, 기술 개발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파악하기 좋다. 2020년 10월 가트너가 내놓은 ‘2021년 중요 전략 기술 동향’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흐름을 반영한 보고서다. 앞으로 5년, 가트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IT 기술은 어떤 기술일까?

먼저 2021년 기술 전략 보고서는 주요 기술 9개를 3가지 주제에 3개씩 나눠 묶었다. 3가지 주제는 사람 중심적(People centricity), 위치 독립(Location independence), 회복 탄력성(Resilient delivery)이다. 서로 다른 주제라기보다, 같은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봤다고 보는 게 좋겠다. 예년과 다르게 특정 기술을 지칭하기보다 기술이 이렇게 쓰일 거라고 가리키는 내용이 많다. 개별 기술로 현재 트렌드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사람 중심적(People centricity) IT 전략 기술 

‘사람 중심적’ 주제에 모인 전략 기술은 이용자 개개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기술 흐름을 보여준다.

① 행동 인터넷 (Internet of Behaviors)

행동 인터넷은 얼굴 인식, 위치 추적같이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디지털 흔적을 추적하고,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센서 등을 통해 인간 행동을 추적, 분석하는 작업은 지금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거기에 개개인에 대한 피드백, 개인화된 서비스를 추가한 것이 행동 인터넷이다. 예를 들어 미 NBA에서는 2020년, 체온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반지 오우라(Oura)링을 선수들이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기도 했다. 중국에선 사회생활을 하려면 건강 코드 앱을 반드시 깔아야 한다. 코로나19 감염 여부, 진료 기록,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해 녹색 QR 코드를 받지 못하면 대중교통 이용이나 공공장소 접근이 제한된다. 

이런 흐름은 더 널리 퍼질 수 있다. 보험 회사에서 스마트 워치를 이용해 개인 운동량이나 운전 습관을 측정, 보험료 산정에 반영하는 식이다. 가트너에선 2025년까지 세계 인구 절반이 IoB에 영향을 받으리라 추정한다. 다만 사회적,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기술이라서, 기술적으로 가능해도 반드시 모두 쓸 거라 말할 수는 없다.

② 통합 경험 (Total experience, TX)

가트너는 보고서를 통해 ‘통합 경험’이란 다중 경험(Multi experience)에 고객, 직원, 사용자 경험을 연결해 발전시킨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먼저 다중 경험은 AR&VR 기술, 스마트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용자가 느끼는 경험, 사람이 기술을 공부할 필요 없이 기술이 사람을 이해하는 상황을 뜻한다. 통합 경험은 그런 다중 경험이 현실 사회에서 실제로 쓰이는 방법이다. 앞서 말한 행동 인터넷을 이용자 관점에서 풀어냈다고 봐도 된다.

예를 들어 가전제품을 사기 위해 대리점을 방문할 경우, 앱에서 시간과 장소, 재고 여부를 파악하고, 대리점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관리 사항을 안내받으며, 대기 시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기본값으로 정착되는 상황에서, 고객이 물건/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소비/사용하는 과정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기업은 여러 채널에서 직원과 소비자가 겪는 경험을 통합 관리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③ 개인 정보보호 강화 컴퓨팅 (Privacy-enhancing computation)

수많은 사물과 센서가 내가 남긴 디지털 흔적을 모아서 분석한다면, 이용자는 그 정보가 어떻게 분석 처리되어 사용될지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도 강화되는 추세다. 이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데이터 분석 환경’, ‘중요 정보 보호를 위한 데이터 분산 처리 및 분석’, ‘분석 처리 이전에 데이터와 알고리즘 암호화’다. 앞으로 여러 기관 및 기업 간 데이터 공유가 활발해질 상황에서, 가트너는 절반 이상의 대기업이 개인 정보보호 강화 컴퓨팅을 구현할 것이라고 말한다.


위치 독립적(Location independence) IT 전략 기술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안전하게 어디서나 일하고, 쇼핑하고, 친구와 어울릴 수 있기를 바라게 됐다. 이제 기술은 이런 요구를 처리/지원해야 한다. 위치 독립은 사람 중심 기술을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다.

④ 분산형 클라우드 (Distributed cloud)

클라우드 컴퓨팅은 10여 년 넘게 이어진 오래된 트렌드다. 올해도 여전히 등장했다. 분산형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서버를 여러 지역에 소규모로 분산 배치하는 형태를 말한다. 서버는 고객사에 (또는 가까운 지역에) 설치하고, 운영은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가 책임지는 형태다. 더 강력한 보안 옵션을 제공하고, 네트워크 비용도 낮출 수 있다. 얼마 전에 유튜브가 먹통이 됐던 것처럼, 중앙 서버나 일부 서비스에 일시적인 오류가 생겨서 전체 서비스가 마비되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는다. 클라우드 서버와 개인 컴퓨터 간 파일 동기화도 더 빠르게 이뤄진다. 개인 정보를 보호해 통합 경험(TX)을 향상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가트너는 2025년까지 대부분의 클라우드 서비스 플랫폼에서 분산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리라 예측한다.

⑤ 어디서나 운영 (Anywhere operations)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다시 닥쳐도, 비즈니스가 멈춰서는 안된다. ‘어디서나 운영’ 기술은 고객과 직원, 비즈니스 파트너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원격으로 접속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일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디지털/네트워크 기반 운영 모델이다. 인터넷 전용 은행이 좋은 사례다. 고객은 언제 어디서나 은행 업무를 할 수 있다. 원격 근무 지원은 이제 필수가 됐다. 나라 간 이동이 어렵게 되자 AR 스마트 글래스를 이용해 원격 협업을 한 사례도 생겼다. 슬랙(Slack)과 줌(Zoom) 같은 원격 협업 틀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뉴노멀로 떠올랐다. 지겹게 받아본 안전 안내 문자도 원격으로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부탁하는 ‘어디서나 운영’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꼭 필요한 기술인 탓일까? 가트너는 2023년 말까지 40% 정도 되는 기업이 온·오프라인이 혼합된 ‘어디서나 운영’ 모델을 적용할 거라고 본다. 

⑥ 사이버 보안 메시 (Cybersecurity mesh)

독립 환경과 분산 컴퓨팅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는 분산화된 보안 아키텍처를 말한다. 분산형 클라우드나 어디서나 운영 모델을 채택하기 위해 필수적인 보안 방법이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이 언제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안전하게 디지털 자산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보안 방법이다. 원격 근무자의 PC처럼, 현재 많은 자산은 기존 보안 경계 바깥에 존재한다. 접속 기기도 다양하고, 타사 앱과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하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접속하게 된다. 사이버 보안 메시는 사물이나 사람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보안을 구성하며, 모듈화된 대응으로 이런 접속을 빠르게 관리/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유연하면서도 촘촘한 사이버 보안 환경을 만들 수 있다. 2025년까지 사이버 보안 메시는 절반이 넘는 접속 요청을 처리할 예정이다.


회복 탄력성(Resilient delivery) IT 전략 기술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세계는 끝없이 변한다.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기도 하고, 감염병이 대유행하거나 전쟁이 터지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업은 적응하며 버티기 위해 노력한다.

⑦ 지능형 컴포저블 비즈니스 (Intelligent composable business)

IT 용어로 컴포저블(Composable)이란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필요에 따라 가용 자원을 다시 구성할 수 있는 기능을 뜻한다. 컴포저블 비즈니스는 이 단어를 빌려와 상황에 따라 업무 프로세스를 재구성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고 한다. 기존에 효율성을 중심으로 구축된 정적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감염병과 같은 외부 충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은 디지털 혁신과 좋은 사업 결과를 얻기 위해, 데이터에 기반한 빠른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능형 컴포저블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사용하면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 정보가 가진 의미를 파악하고 자기만의 통찰력을 더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⑧ AI 엔지니어링 (AI engineering)

데이터에 기반해 빠르게 의사 결정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선 데이터를 잘 다루는 능력을 넘어서, 쉽게 데이터를 사업이나 의사 결정, 제품 생산에 쓸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 도구가 바로 AI다. 하지만 가트너의 주장에 따르면 AI 프로젝트의 53%만이 상용화되며, 많은 리더는 AI 프로젝트를 실제 사업 모델로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AI 엔지니어링은 AI 프로젝트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관리하는 방법이다.

AI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DataOps, ModelOps, DevOps 세 가지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 모델을 만들고, 개발할 때부터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 AI 엔지니어링은 이런 방법을 통해 인공 지능 프로젝트가 가진 성능, 확장성, 신뢰성 등을 보여주고, 유지 관리, 새로운 적용, 문제에 대한 합의 방법도 제시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전체 가치를 판단하기 쉽고,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은지 확실히 알 수 있다. 

⑨ 초자동화 (Hyper Automation)

마지막으로 소개할 전략 기술 트렌드는 초자동화다. 간단히 말해 조금이라도 자동화할 수 있는 건 모두 자동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트너 부사장 브라이언 버크는 “초자동화는 이제 불가피하며 되돌릴 수 없다. 자동화할 수 있고 자동화해야 하는 모든 게 자동화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효율성과 속도, 민주주의는 디지털 비즈니스를 빠르게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며, 이는 자동화를 통해 지원되기 때문이다. 가트너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의 70%가 이미 이런 작업을 하고 있고, 실제로 지난 몇 년간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도입 등을 통해 자동화를 진행한 기업이 꽤 많다. 

효율성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탄력성 있게 개편하려는 마당에, 다시 효율성이 돌아온 것에 고개가 갸우뚱 해지긴 한다. 앞서 말한 효율성은 공급망 관리(SCM) 같은 내용이고, 지금 말하는 효율성은 반복 업무 자동화 같은 내용이라 생각하면 이해되긴 하지만. 초자동화는 이런 몇몇 작업을 자동화하는 것을 확장해서, 사업 과정에 필요한 많은 것을 자동화하려는 추세다. 동시에 조직에 남아 있는 최적화되지 않은 옛 잔재를 걷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가트너가 전망한 2021년 전략 기술 트렌드를 요약하면, 코로나19로 인해 기업은 빠른 디지털 전환을 강요받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빅데이터와 인공 지능을 이용해 자동화하는 기술, 기업이 탄력적인 조직으로 바뀌는 데 필요한 기술을 주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시기는 2025년이다. 이때쯤엔 정말 다수가 이런 기술을 쓰고 있을까?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미 많은 기업이 준비에 들어갔고, 쓰고 있다. 트렌드 예측이란 건 결국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고 전망하는 일이니까.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