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제2법칙’을 모르는 것은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은 것과도 같다는 찰스 스노우의 일갈은 유명하다. 스노우는 영국의 과학자이면서 소설가로서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의 단절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세간에서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은 사람은 교양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제2법칙을 모른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하지는 않는다. 내 경험에 따르면 오히려 제2법칙을 아는 것이 부끄러운 (“그런 것도 다 알아?” 하는 식으로) 시절도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테넷>은 사람들에게 물리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영화배우 로버트 패틴슨은 <테넷>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 석사 학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일반물리학을 충실히 배웠다면 <테넷>을 즐기는 데에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떤 계의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양 ‘엔트로피’

먼저, 영화 <테넷> 속 열역학적 시간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열역학과 엔트로피 법칙에 대해 알아보자. 열역학은 열에 관한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이다. 이를 설명하는 초기 이론으로 열소이론이 있다. 열소이론이란 질량이 없는 열소(caloric)라는 입자를 도입해 열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18세기에 화학 혁명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라부아지에 등이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이론이기도 하다.

흔히 열역학이 정립되고 발전한 결과 영국에서 증기기관을 필두로 한 산업혁명이 촉발되거나 가속됐다고들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통념이다. 오히려 열기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 속에서 열역학이 발달했다. 처음에는 온도와 부피, 압력 등 거시적인 물리량을 중심으로 열 현상을 기술했으나 19세기 후반기에는 미시적인 분자들의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통계역학적으로 열 현상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19세기 중반에는 열역학과 관련된 법칙들이 제시되었다. 제1법칙은 열현상에서의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즉, 닫힌 계(closed system; 물질은 출입이 불가하나 에너지는 출입이 가능한 계)에 열량이 공급되면 그 계는 물리적인 일을 하고 또한 계의 내부 에너지도 증가한다. 에너지가 열량이나 일 등의 형태로 바뀔 수는 있어도 중간에 사라지거나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는다.

제2법칙이 그 유명한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고립된 계(isolated system; 물질과 에너지 모두 출입 불가능한 계)에서는 엔트로피라는 양이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제2법칙은 엔트로피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있어서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제2법칙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우주에서는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어서 엔트로피라는 양이 줄어드는 그런 방향으로는 자연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엔트로피란, 간단히 말해서 어떤 계의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양이다. 직관적으로 우리는 정돈된 상태와 어질러진 상태에 대한 개념이 있다. 이를 좀 더 과학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그 계가 취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결부시키는 것이다.


영화 ‘테넷’ 속 열역학적 시간

우리 우주에서는 엔트로피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시간이다. 왜 시간은 한쪽으로만 흐르는지 과학자들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특정한 방향성 때문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을 시간이 흐르는 방향과 일치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도이다. 이를 열역학적 시간이라고 한다. 영화 <테넷>에서 다루는 소재가 바로 열역학적 시간이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많다. 시간 여행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특정한 시점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타임슬립(<옥탑방 왕세자>, <터널> 등), 원하는 시점으로 마음대로 도약하는 타임 리프(<백 투 더 퓨처>, <터미네이터> 등), 서로 다른 시점이 혼재하거나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타임 워프(<시그널>, <카이로스> 등), 특정한 시기가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타임루프(<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장르에서도 시간은 오직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

▲ 영화 <테넷> 속 건물 폭파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테넷>이 다른 점은 시간의 흐름이 다른 두 사건을 하나의 화면에 구현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시간 역행을 다룬 작품은 여태 거의 없었다. <테넷>에서는 시간 순행적 사건과 시간 역행적 사건이 한 시점에 구현돼 있다. 그러니까 시간의 흐름이 앞뒤로 서로 대칭적인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이런 대칭성은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데, 제목부터가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똑같은 <TENET>인 것도 그렇다.

시간 역행을 열역학적으로 풀어보면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일들이 벌어진다. 영화 속에서 자동차 폭발이 있었는데 시간 역행자의 관점에서는 불꽃이 사그라들고 인체가 저체온증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시간 순행하는 세상에서 시간 역행적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영화적 상상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예컨대 우리는 몸속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신체를 일정한 온도로 유지한다. 몸 밖의 대기는 보통 체온보다 낮으므로 신체에서 허공으로 열량이 방출된다. 만약 제2법칙이 거꾸로 작용한다면 대기는 더 차가워져 얼어붙고 우리 몸뚱이는 뜨겁게 불타오를 것이다. 그런 우주에서는 우리 같은 구조물이 안정적인 생명현상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엔트로피 법칙

영화 <테넷> 속 열역학적 시간의 이해가 아직 어려우신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해가 어렵다면 엔트로피 법칙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좀 더 쉽게 이해해 보도록 하자. 예를 들어 넓은 책상 위에 연필꽂이가 하나 놓여 있다. 연필꽂이의 단면적은 책상 면적의 1/10이라 하자. 이제 10자루의 연필이 연필꽂이에 꽂혀 있는 경우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연필이 연필꽂이에 꽂혀져 있는 경우를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경우보다 더 정돈돼 있다고 말한다. 즉, 후자의 경우가 더 무질서하다. 연필을 임의로 흩어 놓을 때 연필꽂이 안에 10자루의 연필이 모두 들어가는 경우의 수는 연필이 모두 책상 위에 있을 경우의 수보다 훨씬 더 적다. 여기서 우리는 정돈된 상태를 가능한 경우의 수가 적은 상태로 기술할 수 있고, 이때의 엔트로피를 경우의 수와 결부시켜 (로그 값에 비례하는 양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정의된 엔트로피는 작은 값이다. 즉, 정돈된 상태는 엔트로피가 낮다. 반대로 무질서한 상태는 취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서 엔트로피가 더 크다. 그러니까, 제2법칙을 달리 말하자면 자연현상은 무질서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살면 책상 위는 온갖 문구용품 등으로 어지러워진다. 즉,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힘들여 애쓰지 않는 이상 저절로 책상이 정리되는 경우는 없다.

비빔밥을 예로 들어 보자. 처음 비빔밥을 받아 들면 밥과 고기와 달걀과 각종 나물들과 양념이 가지런히 각자의 위치를 차지한 채로 분리돼 있다. 이제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섞으면 이 모든 요소들이 골고루 뒤섞인다. 섞기 전에는 그릇의 어느 부분에서 숟가락으로 퍼 올리느냐에 따라 달걀만 올라오거나 시금치만 올라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골고루 뒤섞인 뒤에는 그릇의 어느 부분에서 숟가락으로 퍼 올려도 그 내용물이 거의 똑같다. 섞기 전의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섞은 뒤의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로 바뀌었다. 어느 정도 섞고 나면 더 이상 섞을 필요가 없이 아주 골고루 섞인 상태가 된다. 이때는 엔트로피가 최대인 상태라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일단 비빔밥을 섞기 시작하면 아무리 오랜 세월을 뒤섞어도 원래의 상태, 즉 밥과 고기와 달걀과 나물과 양념이 가지런히 분리된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비빔밥 하나를 수십 년 동안 섞어보지 않아도 우리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전자의 경우의 수보다 후자의 경우의 수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2법칙이다. 비빔밥을 뒤섞는 과정은 비가역적이다.

이번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제2법칙을 살펴보자. 용기에 얼음을 여러 조각 담고 뜨거운 물과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붓는다. 처음에는 얼음과 물과 에스프레소가 잘 분리돼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각 분자들이 열심히 이리저리 충돌하면서 마치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젓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충분히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얼음은 다 녹고 적당히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남는다. 여기서 아무리 오랜 시간이 더 지나더라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다시 얼음과 뜨거운 물과 뜨거운 에스프레소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제2법칙은 이 예에서처럼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흐른다고 간단히 정리할 수도 있다. 그 반대 방향, 즉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열량이 전달되더라도 제1법칙(에너지 보존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만약 제2법칙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얼음에 뜨거운 물과 에스프레소를 넣었을 때 얼음은 더 낮은 온도로 떨어지고 물과 에스프레소는 끓어서 증발해 버릴 것이다. 추운 겨울 방을 데우기 위해 보일러를 켜는 일도 소용없을 것이다. 방바닥에 깔린 파이프 속의 물은 끓어넘치는데 파이프와 방바닥의 온도는 더 내려갈 테니 말이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 자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제2법칙은 자연현상의 비가역성, 또는 비대칭성에 관한 법칙이다.

▲ 맥스웰의 도깨비 법칙을 나타낸 그림으로, 어떤 가상의 존재(도깨비)가 온도가 같은 두 방 사이에 앉아, 두 방문 사이에 오가는 기체 분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한다고 가정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다 섞인 비빔밥도 젓가락으로 일일이 밥알과 나물과 고기를 골라내고 찢긴 달걀도 다시 모아서 합치고 밥알이나 나물에 묻은 고추장과 참기름도 다시 다 회수해서 원래 나올 때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은가? 비슷하게, 어떤 미시적인 초지능적 존재가 있어서 미지근한 물의 분자 상태를 일일이 파악해 속도가 큰 분자와 작은 분자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균일하게 미지근한 물을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과학에서는 그런 존재를 맥스웰의 도깨비라 부른다.

물론 원론적으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제2법칙이 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깨비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써야 하고 결과적으로 엔트로피가 더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할지 상상해 보라! 냉장고가 차갑게 유지되는 것도 모터가 냉매를 순환시키는 물리적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도깨비를 포함한 전체 계의 엔트로피는 줄어들지 않는다.

영화적 상상력을 받아들이고 아주 국소적으로 시간 역행이 가능하다고 인정한다면 <테넷>은 시간 순행과 역행 장면을 한 화면 속에 대단히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어쩌면 시간의 흐름이 대칭적인 우주를 구성할 수 있다는 놀란 감독의 상상력 자체가 대단한 셈이다. 만약 누군가가 과학적으로 그런 가능성을 증명하거나 그 증거를 실험적으로 포착한다면, 노벨상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도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