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에서 발견된 삼각형의 진리
기원전 4,000년경,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형성된 넓고 비옥한 평야에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현재의 이라크 주변)의 남쪽 지역에는 바빌로니아 왕국이 있었는데, 바빌로니아인들은 설형문자, 일명 쐐기문자를 만들어 인류 문명의 씨앗을 싹트게 했다. 이 지역에서는 질 좋은 점토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이를 이용해 점토판을 만들었고, 그들이 깨우친 진리를 쐐기 문자로 새겼다. 여기에는 지리학, 천문학, 법학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 바빌로니아 수학에 관한 내용을 담은 점토판 ‘플림톤 322(Plimpton 322)’ (출처: 위키백과)
이들 점토판 중에는 알 수 없는 숫자의 배열이 담긴 점토판(Plimpton 322)이 있었는데, 훗날 이 숫자는 삼각형의 세 변과 각도의 비율을 관계식으로 나타낸 ‘삼각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직각삼각형의 빗변은 늘 밑변, 높이와 일정한 비율을 갖고 유지하고 있는데 삼각법은 이들의 비율을 나타낸 관계식이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사원, 궁전 등을 건축하기 위해 삼각법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삼각형 각과 변의 길이를 다룬 학자는 끊임없이 등장했다. 기원전 200년 전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도 삼각함수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삼각함수의 원형은 굽타 시대 인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긴다. 실제로 삼각함수 용어 사인(sine)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말이다. 인도에서 연구된 삼각함수는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1748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사인’ ‘코사인’ 등 지금의 삼각함수 약어를 만들어 정립했다.
원에서 탄생한 삼각함수
직각삼각형은 두 변이 이루고 있는 한 각이 직각(90도)인 삼각형이다. 삼각함수의 삼각비는 이 직각삼각형의 변의 비율로 찾을 수 있다. 직각을 마주 보고 있는 빗변의 길이에 대한 높이의 길이의 비가 ‘사인(sine)’이다. 빗변의 길이에 대한 밑변의 길이의 비는 ‘코사인(cosine)’이다. 밑변의 길이에 대한 높이의 길이 비를 ‘탄젠트(tangent)’라 한다. 직각삼각형의 크기에 상관없이, 세 각의 크기가 같으면 사인, 코사인, 탄젠트 값은 언제나 같다.
이런 삼각비를 삼각형의 내각 범위를 넘어 모든 각으로 확장시킨 개념이 삼각함수다. 삼각함수는 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원의 그래프를 이용해서 삼각함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그래프에 원점이 (0, 0)이고 반지름이 1인 원을 그려보자. 원의 중점에서 원 위의 한 점을 잇고, 그 점에서 x축으로 선분을 내려보자. 그럼 직각삼각형이 만들어진다.
사인함수는 빗변의 길이에 대한 높이의 길이인데, 빗변의 길이(원의 반지름)가 1이다. 즉 높이의 길이가 곧 사인 값이 되고, 밑변의 길이가 코사인 값이 된다. 좌표 평면 위의 한 점 p(1,0)이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한 바퀴 돌았을 때, x축을 기준으로 원의 높이가 어떻게 변할까? 높이가 0에서 점점 증가하다가 1까지 커지고, 다시 점점 줄어 0이 된다. 이후 마이너스 방향으로 다시 1까지 커지다가 원래 자리로 오면 0이 된다. 원을 한 바퀴 돌 때 높이의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는 아래와 같다.
▲ 삼각함수를 주기를 갖는 그래프로 나타낸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원을 한 바퀴 돌면 이 값은 줄어들었다가 늘어나고,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들 게 된다. 처음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다시 같은 값들을 반복한다. 이처럼 사인함수의 그래프는 1회전할 때마다 특정한 파동 형태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360도를 돌 때마다 주기가 반복되는 주기함수다. 삼각함수의 주기는 반지름이 1인 원의 원주의 길이인 2π(파이) 다. 같은 방법으로 밑변의 길이 변화를 나타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코사인함수의 그래프가 나온다.
파동의 모양을 닮은 주기함수
이처럼 삼각함수는 주기성을 갖고 있어, 주기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쓰인다. 예를 들어 심전도, 태양의 흑점 개수 변화 등은 삼각함수를 결합해 설명할 수 있다. 이 외에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전자기파, 뇌파 등을 비롯한 파동을 다룰 때도 삼각함수는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
그러나 실제 자연 현상에서 관찰한 파동은 위에서 본 사인함수처럼 완벽하고 깔끔한 형태의 파동을 이루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한 심전도, 뇌파 등만 생각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인함수와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현상은 삼각함수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 삼각함수 여러 개를 더하거나, 곱한 다소 복잡한 형태로 결합해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삼각함수를 조합해 여러 현상을 수학으로 설명한 사람은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조제프 푸리에다. 당시 푸리에는 열이 시간에 따라 전도되는 과정을 수식으로 나타낸 열 방정식을 풀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던 중이었다.
▲ 주기가 있는 함수를 삼각함수의 급수로 바꿔 나타내는 '푸리에 급수' (출처: 위키피디아)
그는 주기성을 띠고 있는 삼각함수를 적절히 변형하면 자연 현상을 수식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삼각함수를 변형하거나 조합한 ‘푸리에 급수’를 만들었다. 즉 푸리에 급수는 주기가 있는 함수를 삼각함수의 급수로 바꿔 나타내는 방법으로, 복잡한 함수로 이루어진 식을 삼각함수인 사인함수와 코사인함수의 조합으로 다루기 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크다. 실제로 푸리에 급수는 진동수 분석 등 관련 있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말하는 음성도 삼각함수가 포함된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의 목소리를 푸리에 급수를 이용해 나타내면 사람마다 다른 식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즉 단순히 귀로 구별할 수 없는 소리를 푸리에 급수를 통해 성별은 물론 사람 고유의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삼각함수로 이뤄진 푸리에 급수는 각종 신호 처리, 통신 분야 등에서 쓰인다.
공학의 근본 삼각함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삼각함수는 변의 길이와 각도에 관한 함수다. 그래서 공간에서의 위치, 회전 등을 다루는 공학 분야에서도 필수적으로 쓰인다. 혹자는 로봇 공학을 연구하려면 수학을 공부하라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로봇 공학 등 복잡한 기술 밑단에는 삼각함수 등 기본 수학이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봇 팔을 설계할 때 ‘어떤 분위를 얼마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고려할 때도 삼각함수가 필요하다. 팔의 길이, 손가락 관절 하나하나의 길이와 회전 각도를 모두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변과 각도의 함수인 삼각함수가 필수적인 것이다.
▲ 삼성전자 갤럭시 버즈 라이브
노이즈 캔슬링도 삼각함수와 같은 파동의 원리를 활용한 예로 들 수 있다. 삼성전자의 무선 이어폰 '갤럭시 버즈 라이브'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화제가 됐다. 노이즈 캔슬링은 소음의 파동을 없애는 방식으로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파동은 '간섭 현상'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는데 두 개의 파동이 합쳐지면 더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 주기와 위상이 같은 두 파동이 중첩될 때는 파동이 강해지고(보강 간섭), 주기는 같으나 위상이 정반대인 두 파동이 만나면 파동이 중첩돼 사라진다(상쇄 간섭). 노이즈 캔슬링은 이어폰에 부착된 마이크를 이용해 주변 소음을 담은 뒤 그 소음의 파동을 분석해 정반대 파동을 일으켜 소음을 상쇄시키는 기술이다.
인공지능(AI), 드론, 로보틱스,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술들은 이미 우리의 현실 속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이쪽 분야의 발전이 더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기술들은 서로 융합되며 상호작용할 것이고, 이를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천 년 전 지구에 살던 바빌로니아인들은 상상도 못했을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고도화된 과학 기술 개발의 기저에 그들이 점토판에 새기며 깨우친 삼각함수의 기본 원리가 깔려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