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매해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 정도까지 대략 한 달 정도 장마 전선이 머물러 있게 되는데, 이 장마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북태평양 기단과 오호츠크해 기단이다. 온도가 서로 다른 두 기단이 만나 세력을 다투는 동안 장마전선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비가 지속적으로 내리게 된다. 장마 기간에는 평균 습도가 연중 최고치인 80∼90%까지 올라간다. 올해의 경우 장마 기간 동안 최고 습도가 96%까지 이르며 빨래가 거의 마르지 않는 상태처럼 높은 습도를 경험하는 지역도 있었다. 그렇다면 습도 100%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리고 물속에서는 습도가 100%인 걸까? 그런데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습도는 사실 '상대습도'라는 개념이라고? 오늘 칼럼에서는 습도의 개념과 습도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함께 알아보자.
절대습도, 상대습도 두 가지가 있다고?
공기 중에 실제로 어느 정도의 습기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는 '절대습도'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생활에서 접하고 사용하는 습도는 대부분 '상대습도'라는 사실. 상대습도가 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절대습도의 개념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습도와 관련하여 반드시 알아야 할 과학적인 용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앞에서 언급한 장마철 습도, 일기예보에 등장하는 습도 모두 % 단위로 표시하는데 이는 포화 수증기량에 비해 현재 수증기량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상대습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습도란 ‘상대습도’를 짧게 줄여서 ‘습도’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반면 ‘절대습도’는 1m3의 대기 중에 섞여있는 수증기의 양을 g(그램)으로 나타낸 것으로 g/m3 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절대습도는 현재의 수증기량을 그대로 수치화한 것으로 용어 그대로 절대량이다. 하지만 절대습도를 수치로 들어도 그 수치가 공기에 어느 정도 포화됐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적으로 상대습도를 사용한다.
▲ 온도에 따른 수증기량을 나타낸 그래프. 이 그래프에서 붉은 선상에 있는 공기는 포화 상태, 선 아래에 해당하면 불포화, 선 위의 상태에 해당하면 과포화 상태가 된다.
절대습도와 상대습도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포화 수증기량’이란 용어도 이해해야 한다. 포화 수증기량은 말 그대로 ‘대기 1m3에 들어 있는 포화 상태의 수증기의 양’이다. 쉽게 말해 공기가 수증기로 꽉 찬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포화’라는 용어는 화학에서 용액을 다룰 때 많이 사용하는데, 설탕물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설탕을 '용질'이라 부르고, 물은 '용매'라 한다. 그리고 설탕(용질)을 물(용매)에 녹여 넣은 액체 즉, 설탕물이 바로 '용액'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온도에서 용질인 설탕을 용매인 물에 넣다 보면 더 이상 녹일 수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가 바로 ‘포화’상태이다. 만약 포화 상태에서 0.00001g이라도 더 설탕을 담으면 그 설탕은 더 이상 녹지 못하고 아래로 가라앉아 석출(결정 형태로 변화됨)된다.
이러한 ‘포화’의 개념을 공기에 대입해 볼 수 있다. 가로 세로 높이 1m의 공간 즉 1m3의 공기가 수증기로 꽉 차서 더 이상의 수증기가 포함될 수 없는 상태가 ‘수증기로 포화된 상태’이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존재하는 수증기의 양을 '포화 수증기량'이라 부르고 단위는 절대습도와 마찬가지로 g/m3을 사용한다.
▲불포화 상태의 공기를 냉각시키게 되면 이슬점에 도달해서 응결을 시작하게 되고, 남는 수증기는 물로 응결된다.
과학적으로 공기가 수증기로 포화됐을 때 ‘이슬점’에 도달했다고 표현하는데, 쉽게 말해 수증기로 포화된 상태인 공기에는 0.0001g이라도 더 수증기가 외부에서 유입되거나 혹은 내부에서 수증기가 발생하게 되면 더 이상 수증기 상태로 있지 못하고 물방울로 응결이 된다. 설탕물에서 설탕이 더 이상 녹지 못하고 결정 형태로 보이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샤워를 할 때 욕실 거울에 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가 된 것은 이미 욕실 내부가 수증기로 포화되고 남은 수증기는 물로 응결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슬이 된 상태인 것이다. 이쯤 되면 "습도 100%에 도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답은 나왔다. 습도 100%에서 수증기 초과분은 공기가 더 이상 품지 못하고 물로 변해버린다. 또 습도는 대기 중에서 측정하는 지표이므로 물속에서의 습도라는 개념은 애초에 성립하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알 수 있다.
습도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나?
최근에는 온ㆍ오프라인 어디에서나 습도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습도계를 사지 않아도 온도계 2개만 있으면 습도의 측정이 가능하다. 온도계 중 하나는 구부를 젖은 헝겊으로 싸고, 다른 하나는 그냥 두면 되는데 이때 젖은 헝겊으로 싼 온도계는 습구, 노출해 둔 온도계는 건구가 된다.
공기가 건조한 상태 즉, 상대습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빨래가 잘 마른다. 같은 원리로 습구의 구부를 감싼 젖은 헝겊에서 증발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고, 물이 액체에서 기체 상태로 기화할 때는 주변의 열을 흡수하는 흡열반응이 일어나므로 습구에서 온도가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현재의 기온을 나타내는 건구와 습구의 온도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상대습도는 낮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건구와 습구의 온도차가 줄어든다는 얘기는 습구를 싸놓은 젖은 헝겊이 잘 마르지 않을 정도로 공기가 상대적으로 수증기로 포화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구와 습구의 온도 차이가 아예 0인 경우는 아래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습도가 100%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건구와 습구의 온도 차이에 따른 상대습도를 나타낸 표
▲시중에서 찾아볼 수 있는 건습구 습도계. 습구 쪽은 헝겊으로 감싸져 있고, 작은 물통이 달려 있다.
가정에서 유지해야 하는 적정 습도는 몇 퍼센트일까?
실내가 쾌적하다고 느끼는 데는 온도뿐만 아니라 습도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적정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절에 따라 제습기 혹은 가습기를 사용하는 가정이 많다. 적정 습도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15℃에서는 70%, 18~20℃에서는 60%, 21~23℃에서는 50%, 24℃ 이상일 때는 40% 정도이다. 각 온도 범위에서 적정 습도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으니, 건강을 위해서 적정 습도는 약 [40~60%] 정도를 유지하면 된다고 기억하자. 이보다 습도가 낮으면 코 점막이 말라 바이러스ㆍ세균을 걸러내기 어려워 감기에 쉽게 걸릴 수 있고, 이보다 습도가 높으면 곰팡이와 세균의 생장 증식이 너무나 활발하게 일어난다.
보통 우리나라는 겨울에 건조하고 여름에 습하지만 요즘에는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절하기 위해 제습기와 가습기를 과하게 사용하다 보니 적정 습도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도 습도계를 구비하여 습도 값을 체크하면서 적정 습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5개의 디지털 습도계 모두 온도와 습도 측정치가 다르다. 또, 온도보다는 습도 측정치의 차이가 더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건습구 습도계의 경우 물통에 물을 채워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과학실험에서 사용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알려주는 디지털 습도계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측정기들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저렴한 측정기일수록 오차는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가정에서 습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2개 이상의 다른 제조사의 제품을 가지고 습도를 측정한 다음 평균을 내어야 어느 정도 실제 측정치에 가까운 값을 얻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서도 중요한 적정 습도 관리!
▲ OLED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공장(FAB)의 내부 모습
가정과 사무실 등에서 건강을 위한 적정 습도 유지가 중요한 것만큼 각종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도 습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디스플레이 공장(일명 FAB)에서는 제품 생산에 최적화된 온도 23℃, 상대습도 55% 내외로 환경을 관리하고 있다. 이 온도와 습도는 제품 생산뿐 아니라 사람이 지내기에도 최적의 온ㆍ습도라고 볼 수 있다. FAB에서는 가정과는 달리 '외조기'라 불리는 대형 설비를 사용해 온ㆍ습도를 관리하고 있는데, 이 '외조기'는 외부 공기를 FAB 내부로 흡입하는 설비로, 공기의 온도를 조절하는 동시에 제습과 가습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외부 공기를 FAB 내부로 흡입하는 ‘외조기’ (출처: 한국공조엔지니어링 공식 블로그)
실내 습도가 높거나 낮을 때 우리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디스플레이 공정에서도 적정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FAB 내부의 습도가 너무 높거나 낮을 때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습도가 너무 높을 때에는 설비 또는 재료가 부식되면서 원활한 공정 수행이 어려워질 수 있고, FAB 내부에 박테리아 등 미생물이 증식해 보건 위생상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반면, 습도가 너무 낮게 유지되면 정전기가 발생해 디스플레이 기판 제조 시 미세 전자 회로의 단선 가능성이 증가하고, 그 결과 디스플레이의 생명과도 같은 픽셀 점등 불량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번개가 칠 때 도체인 금속성 물질이 번개에 맞아 파괴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뿐만 아니라 낮은 습도에서는 FAB 내부에서 파티클(미세 이물질)의 활동성이 증가해 먼지나 미세 이물질이 제품에 침투해서 생산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이 하락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칼럼을 통해 우리의 건강 유지를 위해 가정에서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디스플레이 공장과 같은 첨단 전자 산업 현장에서도 적정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됐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오늘 다룬 습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활하는 곳 모두에서 적정 습도를 유지해 건강을 지켜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