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시각과 청각, 촉각보다도 먼저 가졌다. 그 탓일까? 사람은 무엇보다 후각으로 먼저 상황을 파악한다. 화재 현장을 떠올려보자. 냄새를 맡고 ‘뭐가 타나?’하고 생각하지, 불이 난 걸 보고 냄새를 맡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는 본인이 알기 어렵다. 이걸 IT 기기가 먼저 맡아 알려주면 안 될까? 가능하지만 쉽지 않다. 인간의 많은 감각 중에 후각 센서 개발이 상당히 늦어진 이유다. 냄새를 맡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한 탓이다. 후각 수용체 유전자 종류만 해도 약 400여 개다. 수용체 한 종류가 하나의 냄새를 맡지도 않는다. 냄새를 맡는다는 건 뇌가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전자코의 간단한 역사
전자코(Electronic nose)는 이렇게 파악하기 어려운 냄새를 파악해, 데이터로 바꿔서 활용하기 위한 기술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냄새를 통해 물질의 상태 및 성분을 분석해내는 전자장치다. 연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1962년 일본에서 발명된 반도체 제조에 사용하는 가스 센서를 시초로 본다.
이 제품은 특정 가스가 많아질 경우 금속에 부식이 일어나는 성질을 이용해 가스 유출을 감지했다. 1982년에는 영국 워릭 대학의 퍼사우드가 서로 다른 센서를 함께 사용해 이 기술을 개선할 방안을 발표했고, '87년 한 과학잡지에 전자코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면서 계속 그렇게 불리게 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90년대 ESA(유럽항공우주국)에서 미르 우주정거장 내부의 공기를 관찰하기 위해 전자코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이때 쓰인 전자코 기기는, 우주정거장에서 일어난 화재를 빠르게 감지해 알림으로써 유용성을 인정받았다.
21세기 들어와 IT 기술 발전과 함께 전자코 기술도 크게 진화하게 된다. 새로운 화학 센서, 센서 제조 기술 및 데이터 분석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이 등장했다. 이를 통해 전자코 장비의 크기가 작아지고 성능이 향상되면서, 2010년대부터 화학, 의료, 음식물 품질, 공정제어,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게 된다. 특정 냄새만 감지하면 된다면, 굳이 수백 가지 센서를 함께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의 전환도 한몫했다.
건강과 안전을 위해 널리 활용되는 전자코
전자코는 어떻게 냄새를 맡을까? 간단히 말하면,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다. 냄새는 기본적으로 냄새 원인 물질과 후각 세포가 만나면서 만들어진다. 전자코는 후각 세포 대신 반도체 형태의 센서를 통해 냄새를 맡고, 맡은 냄새를 뇌 대신 컴퓨터를 이용해 분석한다.
센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가스 센서다. 특정 가스의 농도에 반응하는 센서를 여러 개 사용해 냄새 원인 물질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후각 기능을 모방한 바이오 센서다. 가스 센서를 복수로 사용하는 방법은 이미 실용화가 되었으며, 소형화를 위해 바이오 나노 센서 방식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날숨으로 폐암 진단하는 ‘전자 코’ 개발 (출처: YTN 뉴스)
전자코를 연구하는 이유는, 냄새를 통해 특정 물질을 검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는 냄새를 맡고 화재 상황을 짐작하는 것처럼, 어떤 냄새가 어떤 상황에서 나는 냄새인지를 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전자코는 인간만큼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냄새를 맡을 수는 없다. 대신 특정 물질을 찾아내거나, 인간이 맡을 수 없는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라우바우드 대학 연구팀은, 환자의 호흡을 분석해 식도암에 걸리기 쉬운 사람을 찾아내는 전자코를 만들었다. 식도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은 80%까지 높아진다. 전자코는 이런 암을 안전하고 저렴하게 조사할 수 있다. 식도암뿐만 아니라 다른 암도 가능하다.
▲ETRI 연구진이 개발한 호기 가스 분석 시스템 (출처: ETRI 보도자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진단치료기연구실 연구팀은 폐암 세포 배출물질 감지 센서가 달린 전자코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밖에 세균과 바이러스 탐지, 천식 같은 다양한 질병이나 유해 요소를 이른 시간 안에 찾아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보안 및 안전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미국 노매딕스에서는 지뢰 탐지용 전자코 피도(Fido)를 개발했고, NASA에서도 우주정거장 유해물질 감지를 위해 전자코를 사용한다. 공항에서 총기류와 폭탄, 마약 탐지를 위해 탐지견 대신 쓸 수도 있다.
▲썩은 음식을 파악하는 ‘바이오 전자코’ 개발(출처: KBS뉴스)
전자코의 미래, 냄새를 재현하는 것도 가능할까?
모든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전자코가 가야 할 미래도 기술적으론 정해져 있다. 더 작고, 싸고, 감도가 좋아져야 한다. 스마트폰에 탑재할 정도로 작아지면 정말 널리 쓰이게 된다. 아쉽지만 아직 기술 수준이 여기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만약 전자코가 널리 확대다면, 다음은 어떻게 될까? 사실 모두가 꿈꾸고 있지만, 냄새나, 냄새로 인해 만들어지는 미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후각이 인간 경험에 미치는 큰 힘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각이나 청각보다 연구가 미진했던 가장 큰 이유가, 냄새를 재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8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위해요소감지BNT 연구단은 바이오 나노 센서를 이용한 전자코를 만들었다. 이 기술을 이용해 냄새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수 있다면, 거꾸로 냄새를 만드는 것도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2016년 프랑스 센소웨이크에서는 향기로 사람을 깨우는 후각 알람 시계를 개발했다. 냄새는 미각까지 이어진다. 2019년 미국 스타트업 바쿠소(VAQSO)에선 향기 카트리지를 이용해 VR에서 맛을 느끼는 듯한 ‘생각이 들게 하는’ 장치를 선보인 바 있다.
냄새를 맡는 전자코와 냄새를 전달하는 후각 재현 기술이 만나면, 디지털 후각 인터페이스가 완성된다. 디지털 후각 인터페이스가 등장하면, 우리가 생활 환경을 긍정적으로 제어할 힘이 된다. 지금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집 안에 콕 박혀 있을 때, 싱그러운 바다 냄새와 함께 멀리 여행하는 영화를 볼 수 있다면, 답답함이 좀 누그러지지 않을까? 하루 빨리 그런 날이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