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원자와 전자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개념도는 닐스 보어가 주장했던 원자모델이다. 원자핵 주변을 전자가 공전하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 보어의 제자인 러더퍼드에 의해 궤도는 타원형으로 수정됐고, 더 나아가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바탕으로 전자의 위치는 궤도가 아니라 확률론에 기반한 전자 구름 형태라고 표현한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

보어, 하이젠베르크, 보른은 관측자의 행위가 양자의 존재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을 발표한다. 코펜하겐 해석은 우주를 거시 세계와 미시세계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우리의 일상생활이 포함되는 거시 세계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 역학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코펜하겐 해석의 세계관에서 미시 세계의 규칙은 거시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다. 거시 세계에서 물질의 상태는 우리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태고, 우리가 눈으로 본다고 해서 그때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에 대한 결정은 빛이라는 그 대상을 관측했을 때 정해진다는 주장으로, 관측 전에는 상태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중첩 상태라 부른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관측행위를 통한 파동함수의 붕괴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전자는 파동함수로 상태를 서술할 수 있는데, 측정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상태가 확률적으로 겹쳐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관측을 진행하면 그와 동시에 파동함수가 붕괴해 버리고, 더 이상 겹침 상태가 아니라 단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서술과 실제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표준 해석으로 양자 역학의 정통 이론 중 하나다.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이름은 당시 보어가 살았던 덴마크 수도 이름을 따왔다. 하지만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비판했던 물리학자들도 있었다.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반발

이후 하이젠베르크의 적수인 슈뢰딩거가 등장하면서 코펜하겐 해석에 맞대응하고자 고양이를 꺼내 든다. 하지만 코펜하겐의 무리를 완벽히 무찌르지는 못했다. 슈뢰딩거는 '고양이 사고실험'을 통해 관측 행위 전까지는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파동함수의 확률론에 의하면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필요 없이 단지 그 확률이 5:5라는 점만 충족하면 됐다. 왜냐하면 어차피 고양이 상자에 들어 있는 방사성 물질의 붕괴 자체도 확률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고양이의 상태도 확률적으로만 나타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코펜하겐 해석은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에 대해서도 동시에 빛이 입자이며, 파동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관측 행동에 영향을 받아 그 특성이 정의된다고 해석했다. 즉, 두 가지 상태가 중첩되더라도 동시에 A이면서 B일 필요는 없고 그저 확률로만 중첩 상태가 존재하면 된다는 것이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슈뢰딩거에 이어 이번엔 아인슈타인이 등장한다. 실재론자였던 그는 광양자설을 주장하며 양자역학의 태동기를 함께 했지만, 코펜하겐 해석에는 반발했다. 아인슈타인은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우리가 관측했을 때 그 대상의 상태가 정해진다는데, 그럼 우리가 달을 보기 전에는 달의 상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가, 우리가 달을 보는 순간 상태가 정해진다는 말인가?" 라며 비판했다. 즉, 우리가 보지 않을 때도 달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실재론자는 당연히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코페하겐 해석론자들은 실증론에 기반하여 관측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이해하고 싶지 않은 논리였다. 그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본인이 제안한 사고실험을 통해 양자중첩 이론을 붕괴시키려고 노력했다.

 

아인슈타인의 1차 공격 - 불확정성 원리 위배에 관한 사고 실험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시간과 에너지 사이의 불확실성 원리 위배를 위해 고안한 아인슈타인 상자 (출처: 위키미디어)

아인슈타인은 첫 번째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특정시간(∆t)에 광자를 방출하고 줄어든 상자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상자)를 고안했다. 변화된 무게 차는 곧 에너지의 편차로 해석할 수 있기에 시간 변화량과 에너지 변화량을 오차 없이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불확정성의 원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아인슈타인은 주장했다. 그러나 광자 방출 시 발생하는 반동력 때문에 위치량의 불확정성과 시간측정 자체에 대한 오차가 있어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반격은 실패했다.

 

아인슈타인의 2차 공격 - EPR 역설

아인슈타인은 양자중첩 주장을 붕괴시키고자 국소성에 관한 사고 실험을 두 번째로 제시한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비균질 분포(좌)와 균질 분포(우)에서 나타나는 에르고딕 성질 (출처: 위키미디어)

우선 국소성의 원리가 무엇인지 간단히 알 필요가 있다. 물이 들어있는 컵에 잉크를 떨어뜨렸을 때 잉크가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순간을 상상해 보자. 이때는 잉크의 확산은 비균질 분포를 보이기 때문에 컵 안에는 잉크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물리학에서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영역의 물체는 영향을 서로 직접 주지 못한다는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가 통용된다. 즉, 잉크가 컵 전체에 퍼지기 전까지 처음 떨어뜨린 잉크는 잉크가 없는 부분과 섞이지 않는다. 떨어져있기 때문에 물만 있는 공간과 잉크가 있는 공간의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잉크가 고루 섞여서 컵 안의 물이 모두 검게 변한다.

어느 곳이나 시간 평균과 통계 평균이 같아 존재확률이 고르고 같아지면서 에르고딕해진다.

에르고딕(ergodic)이란,

어떤 동역학계의 궤적이 거의 항상 공간 전체를 밀집하게 채우는 성질을 뜻한다.

 

따라서 모든 계는 자신의 위상공간(phase space) 전체를 충분히 탐색할 시간을 제공하면 열역학적 평형에 이르며 에르고딕해진다. 우리가 방(위상공간)에서 처음 에어컨을 틀면 에어컨 주위만 시원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방 전체가 시원해지는 것과 같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EPR 역설에 의한 스핀 방향 결정 사고실험

아인슈타인은 국소성 위배 불가능에 관한 해석을 통해 양자중첩을 붕괴시키고자 했다. 아인슈타인은 1935년 그의 제자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EPR 역설을 주장했다. EPR이란 아인슈타인(Einstein)과 포돌스키(Podolsky) 및 로젠(Rogen)의 이니셜을 따와 불리는 주장으로, 정확한 논문의 이름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가?'였다.

만약 검은 돌과 하얀 돌이 들어있는 상자가 각각 있다고 치자. 어떤 돌이 들어있는 상자인지는 모른 채 수억 광년 떨어트려 놓은 후 한쪽 상자의 돌을 관찰하면 자연히 반대편 상자의 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즉, 한쪽 상자를 열었을 때의 결과가 다른 쪽의 입자에 대한 관측 없이도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두 돌은 서로 국소성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을 만큼 먼 거리에 놓여 있고, 빛보다 빠른 존재가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 돌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다시 말해 광속보다 빠른 원격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원거리 유령작용(spooky action)이라고 지적하며, 양자중첩 개념을 부정하고자 했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아인슈타인의 설명이 이번에는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고실험에 의한 양자 얽힘 상태를 의미 있는 정보 전달로 보지 않는다. 양자얽힘이란 태초에 양자들이 서로 얽혀 있던 상태라는 개념으로, 중첩 상태에서 한쪽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쪽은 곧바로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개념이다. 물리학의 '국소성' 원리가 통하지 않는 이른바 '비국소성'이 적용된다는 주장이다.

 

빛 보다 빠른 존재가 있으면 정보전달에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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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좋은 손전등으로 물체를 비추면 멀리서도 그림자가 생긴다. 그렇다면 투사거리를 더 멀게 하여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 그림자를 투사시켜 보자. 이 엄청난 성능의 손정등이 약간 움직이더라도 수억 광년 떨어진 위치의 그림자는 엄청나게 크고 움직이는 거리는 상당하다. 투사 거리가 멀수록 그림자는 광속만큼 빠른 움직임을 보이거나 심지어 광속보다 더 빠르게 그림자가 이동한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투사된 그림자도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자 자체를 이동시킨 것은 아니다. 빛보다 빠른 상호작용은 허용되지만, 광속보다 빠른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 (왼쪽부터) 일상적인 열교환과 열역학 2법칙이 배제된 열교환.  두 상태 모두 1법칙은 만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얽힘을 활용한 에너지/정보 교환이 있을 수 있음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양자 열역학에서는 뒤집힌 열교환(reverse heat flow)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양자상태의 두 핵스핀(nuclear spin)이 초기에 서로 연결된 양자 얽힘 상태였다면, 차가운 스핀은 더 차가워지고 뜨거웠던 스핀은 더 뜨거워지는 국부적 열교환이 발생한다.

 

어디에 응용되는가

알아두면 쓸모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코펜하겐 해석과 EPR 역설

양자 얽힘 특성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 순간이동도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의미 없는 정보만 전달되니 그저 머릿속으로 하와이를 떠올리는 것과 같다. 하와이를 생각했다고 해서 내가 지금 그곳에 앉아있지는 않는다. 양자 얽힘은 의미 있는 정보 전달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양자암호,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등의 분야에 활용하고자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은 양자 얽힘이 유의미한 정보 전달이 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초기 단계이다. 여기저기서 고품질 양자 얽힘 광원 개발, 큐비트를 이용한 양자컴퓨팅 원리 개발 등 양자 얽힘에 관한 과학계의 새로운 소식이 들린다. 우리 세대가 끝나기 전에 또다시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온다면 그건 양자 얽힘을 이용한 기술개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