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라디오가 나온다. 라디오는 20세기 초, 목소리를 전파에 실어 보내던 기술을 상용화한 최초의 기기였다. 양방향 라디오를 작게 만든 제품이 무전기였고, 무전기 기술을 발전시키니 차량용 전화가 태어나고, 휴대폰이 개발됐다. 재미있게도 라디오는 초기 아마추어 무선 통신(HAM) 기술에 기반했고, 아마추어 무선은 ‘무선 전화’를 연구하는 도중에 나왔으니,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온 셈이다. 제자리로 돌아온 휴대폰이 그 후, 세상을 바꿀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통화 전용 1세대 이동통신
▲ 모토로라 다이나텍 8000X (출처: 모토로라)
첫 번째 휴대전화 서비스는 1983년, 첫 번째 상용 휴대전화 모토로라 다이나텍 8000x와 함께 시작했다. 나중에 1세대로 불리게 되는 초기 아날로그 셀룰러 방식 이동통신은 할당된 주파수를 여러 개의 채널로 잘게 쪼개 썼다. 채널을 분리했기에 여러 명이 같은 주파수를 써도 전화처럼 1대1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문자메시지 같은 부가 기능은 없었고, 넣을 생각도 안 했다. 기존에 쓰던 유선 전화는 당연히 ‘음성 통화’만 하는 기기였기에, 이용자도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집 전화’ 정도로 여기고 있던 탓이다. 음성 통화도 그리 품질이 좋지는 못했다.
▲ 삼성전자 SH-100 (출처: 삼성전자)
국내 1세대 휴대전화 서비스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시작했다. 첫 국산 휴대폰은 89년 5월에 출시된 삼성전자 SH-100이다. 휴대전화라고 부르긴 하지만 요즘 스마트폰 기준으로 보면 벽돌처럼 투박하게 느껴진다. 크기는 20cm(세로) x 7cm(가로) x 4.6cm(두께)고, 무게 800g이었다. 당시 별명은 ‘냉장고폰’. 악전고투 끝에 개발에 성공해 세계적으로 1천만 대 이상 팔렸고,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후 1994년 히트 상품인 ‘애니콜’ 브랜드 첫 모델 SH-770을 내기에 이른다.
진짜 휴대폰 시대를 연 2세대 이동통신
점점 휴대전화 사용자가 늘어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기존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주파수 자원이 한계에 다다랐다. 문제에 대한 답으로 나온 방식이 2세대 디지털 셀룰러 방식 이동통신이다. 1991년 유럽은 GSM으로 불리는 시분할 다중접속(TDMA) 방식 이동통신을 채택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휴대기기가 지원하는 네트워크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1996년부터 코드 분할 다중 접속(CDMA) 방식 이동통신을 채택했다.
2세대 이동통신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로 바뀌면서, 통화 품질 개선과 함께 문자메시지 같은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요금이 너무 비싸 많이 쓰진 않았지만, 간단한 모바일 게임도 즐길 수 있었다. 휴대폰이 가장 크게 진화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폴더, 슬라이드 등 다양한 디자인을 가진 휴대폰이 출시됐다. 컬러 액정 및 DMB, 음악 재생, 무선 인터넷, 카메라 기능 등 지금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탑재되는 기능들도 이때 대부분 들어갔다.
▲ (왼쪽부터) SCH-A100, SGH-T100, SGH-V500 (출처: 삼성전자)
‘깍두기 폰’으로 불리며 인기가 많았던 ‘애니콜 폴더(SCH-A100)’, 세계 최초 TFT-LCD 컬러 휴대폰 SGH-T100, ‘가로본능 폰’이라 불렸던 회전형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SGH-V500 역시 이때 나왔다. 특히 가로본능 폰은 휴대폰의 미래가 ‘통화’가 아니라 ‘콘텐츠’에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폰이었다.
3세대, 스마트폰이 세계를 바꾸기 시작하다
아날로그(1세대)와 디지털(2세대)로 불리던 이동통신은 3세대부터 뒤에 제네레이션이란 의미가 있는 G가 붙어 분류되기 시작한다. 주로 GSM을 기반으로 개선한 WCDMA를 기반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이 기술로 서비스된다. 중간에 나온 2.5세대 휴대폰부터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이긴 했지만, 3세대 이동통신은 다운로드 속도를 최대 2Mbps, 나중엔 14.4Mbps(HSDPA)까지 더 끌어올렸다. 다시 말해 동영상이나 인터넷 같은 휴대폰 부가 기능으로 여겨지던 기능들이 통화 기능을 밀어내고 주인공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을 만들어줬다. 지금은 익숙해진 USIM 칩을 한국에 처음 선보인 기술이다.
실제 많이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WCDMA 전국망이 완성된 2007년부터다. 이때부터 3G 지원 휴대폰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VOD, 음원 제공 업체도 생겼다. 모바일 게임도 한층 더 성장했다. 글로벌 로밍도 편해졌다. 그리고 2009년 아이폰 3GS가 한국에 출시되면서 무게추가 스마트폰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휴대폰 시장은 순식간에 스마트폰 시장으로 재편됐다.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떠오르고, 카카오톡, 애니팡 같은 스마트폰 앱이 화제를 쓸어 담았다.
▲ SAMSUNG Galaxy S (출처: 삼성전자)
아이폰이 업계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 휴대폰의 아성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던 2010년, 삼성전자는 갤럭시S를 내놓는다. 지금까지 이어진 갤럭시S 시리즈의 막을 연 스마트폰이다. 4인치 슈퍼 AMOLED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이 폰은 같은 시기 출시된 아이폰 경쟁 기종 중에서 가장 우수한 제품이었다. 삼성전자 최초로 1,000만대를 판매한 스마트폰이자, 그 후 10년을 이어진 갤럭시/아이폰 스마트폰 양강 체제를 구축한 첫 작품이다.
4세대, 유튜브 시대가 시작되다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이동통신 세대교체도 빠르게 이뤄졌다. 1세대가 9년, 2세대가 10년 정도 전성기를 누렸다면 3세대는 5년이라는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막을 내렸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해 주파수 자원 한계가 빨리 온 탓이다.
LTE로 대표되는 4세대 이동통신은 2011년 상용화를 시작해, 2012년부터 빠르게 가입자를 늘려나갔다. 더 빨라진 속도로 초기에는 다운로드 속도를 최대 75Mbps지원했으며, 현재는 최대 1Gbps까지 지원하고 있다. 속도가 빨라지자 기존에는 느려서 잘 이용하지 않았던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 이용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회/문화적 변화를 일으켰다. 모바일 게임 시장 역시 기존 콘솔, PC 게임보다 더 큰 시장 규모를 가지게 됐다.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 연결, 스마트폰으로 이뤄지는 소비, 스마트폰으로 만들어지는 생산이 중요한 경제 요소로 들어왔다.
고화질 대용량 콘텐츠들이 확산되면서, 대화면 스마트폰의 인기도 높아졌다. 특히 갤럭시 노트 시리즈는 너무 크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표준 사양이 됐다. 대화면 덕분에 콘텐츠를 즐기기 좋은 탓이다. 누가 스마트폰에 펜을 쓰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갤럭시 노트 팬덤은 S펜으로 인해 생겨났다.
5세대, 미래는 누구 손에 달려 있을까?
2019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 보다 한발 앞서 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시작했다. 최대 20Gbps 속도를 보여주는 초고속 성능을 비롯해 엄청나게 빨리 반응하는 초저지연, 매우 많은 기기를 동시에 연결하는 초연결성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아직 그런 장점을 모두 실감하기엔 5G 네트워크의 완성이 더 필요하다. 당분간은 두 배 빠른 LTE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예전에 LTE가 그랬던 것처럼, 5G 역시 몇 년 안에 빠르게 개선되며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초고속, 초연결, 초지연 시대의 수혜자는 과연 누가 될까?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가상현실? 스마트 팩토리? 가정용 로봇? 8K TV?
갤럭시 폴드는 그런 미래에 대한 질문이자 ‘길 찾기’다. 2019년 공개된 이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은, 당분간 스마트폰의 진화는 ‘디스플레이’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게임, 유튜브와 같은 비주얼 콘텐츠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되면서 이용자는 들고 다니기 간편하면서도 더 큰 화면을 찾고 있다. 앞으로 클라우드 게임 같은 PC급의 게임을 스마트폰에서도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서비스가 늘어나면 그 수요는 더 폭증할 것이다. 그에 맞는 기기는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즐거운 상상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