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하며 우리가 분명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빛과 물질은 '입자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 이것은 마치 사람이 '남자면서 여자이다'라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과 비슷하다. 이 개념은 우리의 직관으로는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이중 슬릿 통과 실험을 통해 입증된,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양자 역학의 기본적 사실이다. 이러한 양자의 이중성을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양자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라고 하며,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물체를 관찰할 때 이미지는 망막에 전달되어 연속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며, 초당 24프레임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도 연속적인 영상으로 느끼게 한다. 1/24초로 나눠서 본다면 분명 불연속적인 정지 그림임에도 우리에겐 연속적으로 보인다. 멈춰진 상태1과 상태2가 중첩되어 우리에겐 연속된 상태로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중첩이며, 거시세계가 아닌 미시 양자세계로 가면 양자중첩이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원자의 모습은 흔히 태양계와 같이 전자가 원자핵의 궤도를 도는 형태로 표현되지만, 앞서 다룬 전자의 확률분포 모델이 양자중첩을 표현하기에는 조금 더 적합하다. 즉, 전자가 원자의 영역 안에서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발견 될 위치의 확률을 따져서 이를 그래픽으로 표현한 전자 구름 형태가 양자세계의 중첩을 표현하기에 알맞다. 특이한 것은 입자와 파동의 상호 별개의 상태의 것이 겹치고 겹쳐서 새로운 상태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즉, 0 아니면 1인 별개의 상태가 중첩되어 0~1사이의 어중간한 상태를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이를 활용하는 것이 바로 양자 컴퓨터이고, 개념적으로 중첩을 설명한 실험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그럼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슈뢰딩거 고양이는 양자이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슈뢰딩거 (출처: 위키백과)

미시세계에서 전자(입자)가 파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거시세계에서도 이들의 중첩개념을 설명할 수 있을까? 즉, 입자와 파동의 중첩 상태가 거시세계에서도 관찰될 수 있을까?

빛의 속도에 비해 무한히 느린 물체들은 거시세계에서는 물질파를 관찰할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면 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 이 공이 지닌 물질파의 파장은 10-50 nm 정도로 짧아, 파동이 아닌 하나의 수평선처럼 보이게 된다. 즉, 파동특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파동방정식으로 나타나야 존재확률로 중첩을 설명할 수 있으며, 거시세계에 대한 양자중첩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중첩의 개념은 보어와 보른이 속한 학파가 주장한 코펜하겐 해석에서 시작됐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나누는 관점을 기반으로, 양자의 상태는 관찰(측정) 여부에 따라서 사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슈뢰딩거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며, 아래와 같은 실험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 (출처: 위키백과)

이 실험에는 원자와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 고양이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들어있고, 원자는 A 상태(예를 들면 입자)일 수도 있고 B 상태(예를 들면 파동)일 수도 있다. 원자가 A상태라면 그림 속 기계장치는 움직이지 않지만, 원자가 B 상태라면 기계가 움직여 독약이 든 병을 깬다. 그리고 고양이는 숨을 거둘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가 현재 A, B 중에 결정되지 않은 중첩상태라고 가정한다면, 상자 속 고양이는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있는 것인가? 고양이는 거시세계의 존재인데, 중첩을 주장한 코펜하겐 해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슈뢰딩거가 제시한 이 실험은 보른이 제시한 양자상태의 중첩을 부정하기 위해 구상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고양이의 생사에 관한 역설은 거시세계에 대한 양자 확률과 상태의 중첩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좋은 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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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사고실험은 거시세계의 고양이를 미시세계로 확장하여 설명하고자 했다. 사실 거시세계 고양이의 생사는 중첩되지 않는다. 파동이 구분 가능한 미시세계는 파동의 중첩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으나, 고양이와 거시세계에서는 고양이가 지닌 파장이 너무 짧아서 둘 중 하나의 상태만을 갖게 된다. 아직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일부 이를 설명할 이론들이 있기는 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인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알기 위한 탐구는 분자를 이용한 실험 등을 통해 계속 되고 있다.

 

양자중첩을 이용한 컴퓨팅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20세기 최고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원리를 만들어낸 폰 노이만의 사고에서는 0, 1 둘로만 세상을 정의할 수 있고, 이를 반영하듯이 컴퓨터의 시초 ‘2진법’을 탄생시켰다. 현대의 전자식 컴퓨터는 반도체를 사용하므로, 전기가 흐르면 1, 흐르지 않으면 0으로 두는 방식으로 계산하며, 0 또는 1, 둘 중 하나의 값을 가지는 이 기본 단위를 비트(bit)라고 부른다.

최근 미래의 컴퓨터 기술로 자주 언급되는 양자 컴퓨터는 바로 0과 1의 상태를 넘어서는 중첩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개념이다. 양자 컴퓨터에서는 하나의 비트가 동시에 0과 1을 갖는 것을 허용한다. 이것을 퀀텀 비트(quantum bit)라고 하며, 줄여서 큐비트(qubit)라고 한다. 큐비트는 0과 1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어서 관측하는 순간 0 또는 1로 결정된다. 따라서 2개의 큐비트만으로 00, 01, 10, 11을 나타낼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기존의 2진법에서는 0과 1이라는 고정된 값만을 나타냈지만, 큐비트는 중첩된 상태를 지니고 있기에 관측하기 전에는 해당 정보를 알지 못한다. 이는 양자 암호화에도 활용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열쇠가 있어야만 0, 1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양자중첩 개념은 암호화에도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제시되고 있는 3진법 컴퓨터는 엄밀히 양자 컴퓨터는 아니지만 0, 1 상태만이 아닌 중간상태에서도 컴퓨팅이 가능함을 보인다. 즉, 전기가 흐리지 않는 0인 상태와 전기가 흘러서 정보처리가 가능한 1인 상태 이외에 누설전류(터널링과 유사)가 발생하는 상태가 존재하고, 이 상태도 정보처리에 활용 가능함을 보이는 것이 3진법 컴퓨팅으로 양자 컴퓨터의 개념이 일부 활용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양자중첩, 물리학을 철학의 세계로 확장하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슈뢰딩거와 앙숙 관계였던 하이젠베르크도 양자중첩 상태를 인정했다. 즉,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전자나 입자의 위치량과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기에, 그중 하나의 명확한 값을 갖는 상태(정지 사진과 같이 위치량이 명확한 상태)는 수많은 상태의 중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삶에 적용하자면, 나라는 존재는 과거 어떠한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무한대의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들이 모두 별개의 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별개의 상태들이 중첩된 상태이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양자역학 이야기 –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중첩

이런 별개의 상태를 인정하는 순간, 사실 다중 우주를 인정하게 된다. 필자가 양자 역학 원고를 쓸지 말지 결정하는 시점으로 돌아갔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쓰지 않기로 했다면 지금 이론 소개를 위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로 선택 했기에 하나의 우주가 펼쳐진 것이다. 다중 우주 이론에 따르면, 글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우주는 그에 따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필자의 선택이 지금 시점의 내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않았겠지만, 이 글을 보고 어떤 정보 또는 지식이라도 알게 되었을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양자중첩은 당사자에게는 느끼지 못하는 선택의 순간이 되지만, 관찰자나 후대 영향을 받는 존재 입장에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무한대에 가까운 선택지를 두게 만든다.

양자중첩에 기반한 다중 우주 이론은 아직 소수의 물리학자들이 지지하는 아이디어 차원의 이론이기는 하다. 하지만 자연철학에서 시작한 뉴턴의 고전 역학이 미시세계에 대한 이해로 이동하면서 양자 역학은 철학의 영역으로도 범위를 확장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