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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돌이 인스탁스 즉석 카메라에서 사진이 나오는 걸 보고 감탄하며 외쳤던 게 기억난다. “여러분, 보세요,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어요!” 이 천진난만한 반응이 재미있었던 건 즉석사진 기술이 굉장히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나온 게 1948년. 요즘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디지털 카메라와 비교하면 한참 할머니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뽑자마자 빛을 받으며 서서히 떠오르는 즉석 사진은 휴대폰 사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마술적이다. 그 아이돌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우리가 보는 3D 영화는 사실 진짜 3D가 아니다?

비슷한 반응이 조금 더 큰 스케일로 몇 해 전에 있었다. 3D 영화의 유행이 그것이다. 특히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의 [아바타] 등장 이후 영화계는 마치 영화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이 사용한 3D 기술은 기원과 원리만 따진다면 굉장히 원시적이었다. 안경을 쓰고 보는 3D 사진은 이미 1838년에 발명되었고, 19세기 사람들은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처럼 입체사진첩을 보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3D 영화 기술도 영화 발명과 함께 발전해 1950년대에 한 차례 전성기를 맞았다. [하우스 오브 왁스](House Of Wax, 1953), [키스 미 케이트](Kiss Me Kate, 1953),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 1954)와 같은 영화들이 바로 그 시기의 작품들이다. 그러니 지금의 3D 영화 유행은 복고 유행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던 건 여전히 이해가 되니, 역사가 어쨌던 3D 영상은 마술적이기 때문이다.

▲2009년에 개봉돼 전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이미지 출처 : www.movie.naver.com)

단지 여기엔 함정이 있다. 우리가 3D 영화라고 부르는 건 사실 3D가 아니다. 2D 이미지 두 개를 겹쳐 만들어 평면에 살짝 입체감을 준 2.1D 영상이라고 해야 할까. 3D 영상이 마땅히 가져야 할 미덕이 없다. [원더우먼](Wonder Woman, 2017)이 3D 영화라지만 우리가 뒤로 돌아가 원더우먼의 등을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최근 2D, 3D, 4D 등 다양한 상영 방식으로 개봉한 영화 [원더우먼]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 www.movie.naver.com)

대부분의 SF 영화팬들이 ‘입체영상’하면 떠올리는 장면은 [스타워즈 4: 새로운 희망](Star Wars episode IV – New Hope, 1977)에 등장한다. 알투디투(R2D2)의 몸에서 홀로그램 영상으로 튀어나온 레아 공주가 “도와주세요, 오비원 캐너비, 저의 유일한 희망이세요”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흐리멍덩한데다 가끔 튀기도 하고 흑백에 불과하지만 레아 공주를 360도로 완벽하게 재현한 3D 이미지다. 물론 이것이 진짜로 3D냐 또 묻는다면 말을 흐릴 수밖에. 3차원의 정의를 그대로 반영한다면 그 영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4차원의 존재뿐일 것이고 그 영상에는 레아 공주의 내장까지 다 드러나 있을 것이다.

▲1977년 작 영화 [스타워즈]에는 홀로그램을 이용한 장면이 나온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gizmodo.com.au)

이런 장치들이 그 이후의 SF 영화에 얼마나 나올까?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얼마 전에 나온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 2017) 예고편(아래 하단 영상)을 보면 1분 49초쯤에 거대한 3차원의 여자 이미지가 나온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3D 영상이 그렇게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지난 2013년에 개봉한 영화 [그녀](Her, 2013)에서는 주인공이 3D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게임 밖에서 주인공이 접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2D이다. 그리고 이전 시리즈보다 더욱 과학이 발전된 미래를 그린 새 [스타 트렉] 시리즈 – [스타 트렉 비욘드](Star Trek Beyond, 2016)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디스플레이들은 선명하고 깔끔한 2D다.

▲드니 빌뇌브 감독, 라이언 고슬링, 해리슨 포드 주연의 [블레이드 러너 2049] 예고편, 2017년 10월 개봉 예정
(영상 출처 : Youtube)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3차원의 영상을 따는 건 귀찮은 일이고 효용가치도 별로 없다. 조금 전 [원더우먼] 이야기를 했는데, 관객들이 굳이 원더우먼의 등을 봐야할 이유는 뭘까? 예술가들은 감상자가 보고 듣는 것을 통제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전쟁 장면에서 우리가 원더우먼의 등을 볼 수 없다면 감독이 그것 대신 다른 걸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독이 우리가 봐야 할 것을 그렇게 엄격하게 제한한다면 그 이미지는 결국 2D, 기껏해야 2.1D에 불과할 것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은 SNS에 올릴 셀카를 찍을 때 최대한 그 이미지를 통제하길 바랄 것이다. 이럴 때 3D 사진은 귀찮기 짝이 없다. 앞으로 3D 이미지를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발명되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2D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 같다. 적어도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건 아주 힘들다.

 

전통적인 영화의 위상을 위협할 VR 기술

3D 기법이 영화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는 건 VR(Virtual Reality)과 만났을 때다. 적어도 VR 게임에서 3D는 영화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전쟁씬에서 원더우먼의 등을 보는 건 의미가 없다. 그건 영화가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사정이 다르다. 게이머는 환경의 일부이고 창작자의 제한을 훨씬 덜 받는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얼마 전 칸에서 VR이 전통적인 영화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했는지 궁금했는데, 생각해보니 요새 그는 VR 게임 소재의 SF 영화인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을 감독 중이다. 최근 첫 번째 스틸이 공개되었는데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한 장면, 2018년 개봉 계정
(이미지 출처 : http://ew.com/movies/ready-player-one-first-look-photo-easter-eggs)

기술적으로 보면 특별할 게 없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지금도 존재하는 VR 헤드셋과 VR 장갑을 통해 가상현실 세계인 오아시스로 들어간다.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단편을 영화화한 옛날 키아누 리브즈(Keanu Reeves) 주연 영화 [코드명 J](Johnny Mnemonic, 1995)에서도 주인공은 같은 기기들을 이용해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갔었다. 그래도 이야기가 제대로 되려면 VR 헤드셋의 기능이 지금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지금 기기들은 해상도가 떨어지고 시야가 좁아 갑갑하기 때문이다. 해상도 문제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시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의외로 저 헤드셋은 보기와는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게 아닐까?

SF 영화의 예언은 시간이 흐르면서 구식이 될 수밖에 없다. 미래 과학과 기술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변수들의 영향을 받으며 늘 예상 밖의 방향으로 튀기 마련이고 상상력만으로는 그 모든 방향을 따라잡지 못한다. 미래에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기술에 바탕을 둔 3D 처리 기술이 발명되어 지금의 할리우드 예언가들이 내놓은 모든 예상들을 촌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우린 다들 주어진 재료들을 갖고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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