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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최고의 아나운서 자리를 박차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던 아나운서 박나림과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TFT그룹 김주아 사원이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 김주아 사원은  박나림 아나운서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는데요~

박나림 아나운서와 함께 한 시간들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김주아 : 만나 뵙게 돼 정말 반갑습니다. 1996년에 MBC에 입사했으니 아나운서로 지낸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나운서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박나림 :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고 싶긴 했어요. 구체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한건 대학부터예요. 아버지는 제 성격과 기질에는 광고가 잘 맞을 거라 하셨는데, 전 아나운서에 관심이 갔어요. 싫증을 잘 내는 편이지만 아나운서라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죠. 실제로 방송의 긴장감과 재미가 생활의 활력이 되어줬고요.
 

김주아 : 오랜 기간 활동했기에 실수한 경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박나림 : 저는 주로 생방송을 진행해서 NG는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일은 많았죠. 한 번은 야외촬영이 잡혔는데 큰 태풍이 올라온 거예요. 취소를 하자니 이미 장소 섭외가 다 돼서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태풍을 뚫고 태안반도까지 가기는 했는데 엄청났죠.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포크레인으로 땅 파서 텐트 치고, 세트 세우고…김성주 아나운서 원고는 바람에 다 날아가 버렸어요. 결국 제 원고를 빗물을 접착제 삼아 테이블 위에 도배해서 같이 봤죠.^^

 
김주아 : 아나운서로서 최고의 사랑을 받던 지난 2004년 돌연 프리랜서 선언을 하셨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박나림 :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5년 버티면 잘한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어느덧 10년 이상이 지나 있더군요. 관계나 일이 안정되고 편한 건 사실이지만 10년 후, 20년 후의 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제 정체성도 찾고 싶었고요. 더 나이가 들면 겁도 많아지고 해볼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 역시 좁아지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과감히 안전선 밖으로 나간 거예요.

 

김주아 :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들이 방송활동에 전념하는 것과 달리 박나림 아나운서는 <월드비전> <스마일재단> 등의 사회공헌과 후학양성에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고 있는데요. 아나운서 박나림을 다양한 활동의 현장으로 이끈 계기가 있다면요?

 

박나림 : 누구나 어릴 때부터 봉사에 대한 마음은 지니고 있다 생각해요. 저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거죠. 저는 잊고 있었는데 신동진 아나운서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네가 처음 입사했을 때 나중에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하더니, 자리를 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시기적인 차이는 있지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경험 등 제가 가진 것들을 나누는 게 더 풍성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김주아 : 아나운서란 디스플레이를 통해 시청자와 소통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라 볼 수 있는데 박나림 아나운서에게 있어 디스플레이란 무엇인가요?^^

 

박나림 : 아나운서를 하다보니 제 삶 자체가 디스플레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바르고 잘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요. 방송이든 강의든 봉사든 내 삶과 안 맞으면 진실성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사실성과 신뢰성도 잃게 되는 거니까..삶과 방송에 차이를 두지 않으려는 것, 사람들과 가까이 있고자 노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있어 디스플레이란 “내 마음을 나누는 곳” 이에요

진실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게 되는 곳, 그게 바로 제가 있어야 할 자리인 거죠.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고객에게 가감없는 기술력과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서는 게 진정한 디스플레이의 비전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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