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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엔이 지정한 ‘세계 유리의 해(International Year of Glass)’이다. 유엔은 기초 과학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바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기초 과학 분야를 선정해 기념하는데, 2022년에는 유리가 선정되었다. 사실 우리는 주변에서 유리를 흔하게 마주한다. 유리컵, 유리창 등의 일상 제품부터 망원경, 광통신망, 디스플레이까지 현대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물질 중 하나다. 유리는 일상의 편의를 넘어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와 함께해 온 물질 유리의 역사

유리를 사용한 역사는 고대 로마 제국을 거슬러 올라간다. 심지어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도 유리 제품이 발견된 바 있다.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에는 기원전 4000~5000년 전에 제작된 유리 구슬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구석기인들은 화산 활동이나 번개 등의 자연 현상 속에서 광물이 녹았다 굳어진 흑요석이나 섬전암 등 천연 유리를 다양한 도구로 활용했다. 이런 면에서 유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대표적 물질 중 하나라 부를 수 있다.  인류는 고대의 *대롱불기법에서 출발해 오늘날 사용되는 *플로트 공법 등 다양한 제조 공법을 개발해 오며 유리의 응용 분야를 획기적으로 넓혀 왔다.

* 플로트 공법: 녹은 주석의 표면에 유리 용융물을 부어 요철이 없이 평평하게 만든 유리

▲ 좌: 천연유리로 사용된 흑요석, 우: 긴대롱에 유리용액을 묻힌 뒤, 반대편 끝에서 입김을 불어 만드는 *대롱불기법 (출처: the UN International Year Of Glass 홈페이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유리의 구조는 흡사 액체를 순간적으로 동결해 모든 원자의 움직임이 멈춘듯한 배열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로 나뉘는데, 기체와 액체는 원자나 분자가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뒤섞이지만, 고체는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유리는 고체처럼 딱딱하면서도 무질서한 원자 배차를 가진 물질이다. 이러한 구조는 ‘비결정성 고체’로 분류한다.

 ▲ 액체 같은 유리의 입자 배열 모습

액체와 같이 무질서한 유리의 구조적 특징은 방향이나 위치가 바뀌더라도 그 속성이 바뀌지 않고, 미세영역 경계에 의한 빛의 산란이 없으므로 *흡수 대역만 없다면 가시광선 대역에서 매우 투명하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고체가 갖는 기계적 강도도 있다. 따라서 저장 용기부터 건축자재, 안경 등의 광학 도구 및 광통신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 흡수 대역: 특정 물질에 의하여 흡수되는 전자기파 스펙트럼의 파장 대역

유리로부터 시작된 과학기술 혁신들  

수천 년 동안 유리는 더 투명하고, 더 강한 유리를 대량생산 하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리는 과학과 기술을 혁신으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근대 초기에 탄생한 현미경, 망원경과 같은 광학 도구이다. 다양한 형상의 렌즈를 조합해 구성된 이 광학 도구들은 투명한 유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세계를 확대해 보여준 현미경은 인류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로 이끄는 첫걸음이 되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밤하늘을 관찰했던 망원경은 새로운 우주관과 세계관을 안겨줬다. 과학의 발전에 유리로 된 광학 도구의 역할을 빼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날의 기술 혁신 역시 유리를 제외하곤 생각할 수 없다. 세계 각국을 연결하며 막대한 양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광통신망이 가장 대표적이다. 고순도 광섬유 유리의 개발은 이전에 구리선을 활용했던 통신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는 광통신 네트워크를 가능케 했다.

▲ 광섬유 모습

유리를 실처럼 뽑아내는 기술이 발명된 것은 100년 정도 되었지만, 이를 정보 전달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유리 내 불순물의 함량을 극도로 낮추는 것이 필요했다. 물리학자 카오(Sir Charles Kuen Kao, 200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에 의해 유리 내 빛의 손실 메커니즘이 정밀하게 분석된 후 순도가 높은 석영 유리가 개발되고 나서야 광통신에 기반한 초고속 통신망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디스플레이에서 유리의 역할은?

오늘날 정보 전달의 또 다른 핵심 기술은 바로 디스플레이다. 정보를 시각적 형태로 전달하는 디스플레이는 현대인들의 일상 전반에 필요한 핵심 기기로, 이런 디스플레이를 제조할 때 유리 기판을 사용한다. 기판은 투명하면서도 내열성과 일정한 두께를 가지는 평탄도가 중요한데, 이를 충족시키는 물질이 바로 유리이다. 유리 기판은 디스플레이의 뼈대를 이루면서 박막 트랜지스터, 컬러 필터, 편광 필름 등 디스플레이의 각종 부품이 집적되는 장소다.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유리는 평면뿐 아니라 휘어진 형태로도 적용되면서 커브드 모니터도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 나온 폴더블 디스플레이에는 UTG(Ultra-thin Glass)라 불리는 초박형 강화유리가 윈도우 글래스로 적용되었다.

유리를 수십 ㎛(마이크로미터)로 얇게 가공할 경우 바깥층 원자에 가해지는 응력이 약해지며 높은 곡률로 유리를 휠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초박형 강화유리가 적용된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매우 얇고 유연해서 수십만 번의 접었다 펼침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내성과 강도를 갖게 되었다. 

▲ 디스플레이 커버 윈도우로 사용되는 초박형 강화 유리, UTG

유리창이나 가정용 유리 용기를 생각하면 유리가 수십만 번 접히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세계적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오징어 게임> 속 징검다리 게임에 사용된 강화유리를 봐도, 유리가 특수한 공법을 통해 매우 강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반 유리는 압력을 받으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유리가 눌리며 휘어진다. 이때 제일 심하게 늘어나는 바깥쪽이 유리가 감당하는 한계를 초과하면 부서지고 만다. 강화유리는 고온이 된 일반 유리의 양면에서 차가운 공기를 불어 식히며 내부보다 수축된 형상을 가지도록 가공한 유리다. 양 표면의 수축된 유리가 내부의 팽창된 유리를 감싸도록 해 충격에 대한 강도를 높인다. 이런 강화 유리는 유리 표면 속 이온을 다른 이온으로 치환해 만들기도 한다.

기원전부터 시작한 유리 제조 공정부터 광섬유나 디스플레이 등 현대 정보통신산업을 이루는 기술까지, 유리의 역할은 날로 확장되고 발전하며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엔 재생에너지, 항공산업 및 증강현실과 혼합현실의 핵심 소재로도 유리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중이다. 인류의 발전에는 늘 유리가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중요한 핵심 소재로서의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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