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면서 풍경 사진을 비교해보면 똑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도 겨울철의 색감이 더 어둡고 흐릿하다. 색상도 명암도 밋밋해 보인다. 대기 온도의 차이도 있겠지만 먼지 때문에 컬러 톤도 변한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파랗던 하늘이 다시 뿌옇게 변했다. 심한 날이 이어지면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시행되며 화력발전소, 공장, 공사장뿐만 아니라 경유 차량에도 오염물질을 줄이는 제한이 따른다. 산업혁명 시기에 공해 문제를 자주 겪었던 유럽에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차 판매가 중단되기 시작한다. 유럽 각국 정부는 이런 결정을 2016년부터 연쇄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석유 엔진의 퇴출은 전기차를 주축으로 교통수단을 재편한다는 의미다.

전기차는 움직이는 전자제품이다. 전기차도 스마트폰처럼 전자제품이라는 말이다. 자동차의 관점보다는 전자제품의 특성에서 보면 자율주행 자동차와 더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지금도 수많은 자율주행 기능이 자동차에 옵션으로 들어가고 있고, 해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간을 대신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중이다. 자율주행이란 자동차 스스로 보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것이다. 수백만 년 진화해온 인간의 신경망과 근육의 활동을 반도체와 모터 같은 전자장치가 대신한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보는 방법 또한 인간의 시지각을 모방하는 일이다.

라이다(LiDAR)로 일컫는 레이더 센싱 장치가 3차원 공간 정보를 추적하며, 마치 인간이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듯, 좌표로 가득한 공간을 디지털 정보로 채운다. 그런데 자율주행 레벨 5의 기준점이라며 중요시하는 이 정보에는 컬러가 없다. 색채 없는 좌표 값의 집합에 불과하다. 컬러는 레이저 광원만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별도의 컬러 필터를 갖춘 카메라로 인식해야 된다. 자율주행 기술의 측면에서는 공간 정보에 컬러 데이터까지 수집하고 계산해야 되는 현실이 복잡하겠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컬러를 구분하고, 색으로 가득 찬 공간을 살아가는 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로의 표지판, 신호등, 어린이 보호 차량 등 모두 컬러로 약속해 놓았다. 빨간 불에 서야 한다는 규칙은 지구 전체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문제는 보색 관계인 빨간색과 녹색도 기계의 입장에서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낮과 밤의 조명 차이, 날씨에 따른 색감의 변화, 건물 유리와 다른 차량의 반사광, 비 오는 밤의 혼란스러운 난반사, 황사와 미세먼지 속에서 흐릿한 대기 등 시시각각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래왔듯 기계에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자율주행차에 장착된 라이다(LiDAR) 센서로 인식된 주변 환경은 작은 점들의 집합이다. 거리와 높이에 따라 나이테처럼 다른 층위의 선처럼 보인다. 이것을 흑백의 이미지로 재구성한 후 특이한 부분에 붉은 컬러로 상태를 표시한다.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컬러 환경

자율주행차는 일종의 로봇이다. 스스로 인식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로봇도 라이다 센서를 통해 공간 정보를 읽고, 판단하며 움직인다. 로봇 공학은 모든 공학기술이 한데 모이는 융합 분야라고 한다. 장치와 기구를 움직이는 부분은 기계공학이고, 환경을 센싱하고 판단하는 것은 컴퓨터 공학에 해당하며, 도로를 걷고 인간과 협업하기 위해서는 인간공학의 이해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인간과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인지과학과 심리학, 디자인이 융합된 분야의 연구도 필수적이다.

인공지능은 신체에 해당하는 기구 장치가 없기 때문에 데이터만으로 충분하지만, 로봇은 공간을 점유하고 움직이는 특성 때문에 훨씬 더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실제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는 오래전부터 실물로 작동하고 있지만, 아직도 로봇과 산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와 만화 속 로봇은 하늘을 날며 변신하고 온갖 재난에서 인간을 구해주고 있는데, 현실의 로봇은 실험실 밖으로 나오는 것도 큰일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장치와 전선들을 동반하고 연구원 서너 명이 둘러싸며 이동해야 되는데, 보도블록이 꺼져 있거나 도로 경계석만 만나도 계산식을 달리 적용해야 되는 것이 현실이다. 움직임도 느리고 어눌한데, 시각 정보의 취득과 연산 과정도 인간에 비해 느리다. 자신의 좌표계를 공간 정보와 대조하며 실시간으로 새로운 경로를 설정하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한다. 전력량 대비 무게 배분 때문에 로봇에게 배터리를 무한정 늘려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쉽게 빠진다.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리며 시각 정보를 근거로 매 순간 판단 내리는 능력은 그래서 참 대단한 일이다.

인간의 감각 기관 중에서 시지각이 점유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것처럼 이 세상은 시각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구분하고 이해하는 공간 세계는 모두 컬러 정보를 지니고 있다. 멀리서는 우주에서 바라본 푸른 별 지구로부터 현미경 속의 코로나바이러스의 붉은 촉수까지 모두 컬러다.

▲ 대표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이미지는 회색 구체에 붉은 촉수를 가진 모양이다.
일반적인 세포 이미지에 비해서 회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더욱 강렬한 인상을 준다.

초음파 영상처럼 컬러 정보가 모호한 경우에도 독특한 규칙을 만들어 생생한 색상으로 표현한다. 인간에게는 이토록 자연스럽고 당연한 컬러 체계도 로봇에게는 낯설다. 과도하고 불필요한 컬러 데이터의 세상에서 로봇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 추출하는 데에도 큰 노력이 필요하다. 자몽, 오렌지, 한라봉을 컬러로 구분하는 과정은 아직도 어렵다. 인공지능과 같은 높은 수준의 시스템이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형태와 컬러 정보를 서로 대조하고 유사성과 차이를 구분하면서 수치화된 특성값을 산출하여 기준과 비교하는 프로세스 자체는 처리 과정으로도 복잡하지만, 카메라의 각도, 장애물, 조명 상태, 반사광 등의 영향을 받으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로봇들에게는 단순한 형태에 단색 또는 대비가 강한 컬러 환경이 더 편안하다. 제어 시스템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도 노이즈와 오류가 적은 상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로봇과 공존하게 될 미래의 세상을 준비하자면 도로와 거리 환경을 덜 복잡하게 정비해야 되고, 도로 차선과 표지판 등은 제 색깔이 선명하도록 유지해야 하며, 고성능 기계의 활동 공간과 인간의 공간을 구분하는 완충지대도 필요하다. 길바닥은 이음매 없이 매끈하고 장애물을 더 걷어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공간은 인간에게 더 안전하다. 기계와의 공존은 늘 인간 중심이기 때문이다.

▲ 인간 작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산업용 로봇에는 보통 오렌지색이나 노란색으로 외양을 마감한다. 최근에는 인간과 로봇의 공존 또는 협업을 위한 인간-로봇 상호작용(Human-Robot Interaction) 연구가 크게 늘었다. 길거리를 함께 공유하게 될 인간형 로봇과 배달 로봇도 행인의 눈에 잘 띄도록 표면에 원색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미래를 위한 컬러 디스플레이

기계가 보는 세상은 대용량 데이터의 흐름과 집합이지만, 인간이 기계를 통해서 보는 세상은 컬러의 흐름과 집합이다. 17세기 뉴턴(I. Newton)이 벽의 구멍을 통해 들어온 뽀얀 햇빛에서 무지개색 패턴을 발견하고, 화가 페르메이르(J. Vermeer)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장치를 통해서 투사된 영상에 종이를 얹어 윤곽선을 따라 그린 비밀에서 엿볼 수 있듯이, 컬러는 과학과 예술은 물론 산업과 여가활동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밝고 선명한 컬러를 구현하기 위해서 화가들은 고급 안료를 찾아 헤맸고, 화학자들은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고 섞는 실험을 지속해왔다.

흑백 사진의 발명과 비슷한 시기에 컬러 사진 기법도 발명한 것을 보면 컬러를 향한 인류의 욕망은 강렬했다. 16세기 베네치아의 색채화파가 피렌체의 소묘화파에게 억눌린 이래, 근대시대 내내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세계관의 지배를 당하며 컬러는 오랫동안 배척당했다. 흑백의 시대였다. 그런 관념적인 전통에 반기를 든 인상주의 화가들이 망막에 비친 원색의 컬러를 내세우면서 19세기 말 오래된 무채색의 질서는 깨지기 시작했다. 컬러 영화와 방송을 통해 인류는 물감과 잉크의 빛바랜 컬러 대신 광학적인 컬러가 주는 빛나는 색상을 만끽하게 되었다. 컬러는 빛의 스펙트럼이라는 뉴턴의 원리를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서나마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 작가였던 티치아노(Tiziano Vecelli)의 <에우로페의 납치>, 티치아노의 그림에는 컬러가 넘실댄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그림이 거의 흑백에 가깝다면, 베네치아 지역의 화가들은 색채 사용에 거리낌이 없었다.

얼마 전부터 학교 교실에는 칠판과 함께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들어섰다. 한동안 구석에 매달린 작은 TV 형태였는데, 최근에는 칠판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형 스마트 디스플레이로 바뀌고 있다. 비대면 수업 환경이 시작된 후, 학생들은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배운다. 학교 밖으로 나와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서로 다른 디스플레이 종류를 오가며 눈으로 정보와 재미를 찾는다. 이런 변화에 따라 색채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종이와 인쇄 기반의 컬러 교육도 필요하지만, 디스플레이 중심의 환경에 적합한 내용이 더 필요하다. RGB 컬러 조성의 원리는 물론 CIE 1931 색공간을 이해하면서 BT.2020(Rec.2020) 색공간의 특성까지 배울 필요가 있다. 디지털 컬러 체계의 특성과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더 좋은 디스플레이를 선택할 수 있고, 시각적으로 더 나은 콘텐츠를 산출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인 색채 환경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컬러 안목을 높일 수 있는 우수한 디스플레이와 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최근 양산이 시작된 삼성디스플레이의 QD 디스플레이는 그런 면에서 미래 세대에게 한 걸음 더 진전된 컬러 화면을 제공한다.  백라이트가 필요한 LCD와는 달리 자발광 방식으로 보다 완벽에 가까운 화질을 만든다. 스스로 빛을 내는 퀀텀닷을 활용해 순도 높은 색을 표현할 뿐 아니라 색역(color gamut)이 더 넓어져서 BT.2020 기준에 근접한다.

▲ CIE 1931 색공간에 표시한 BT.2020의 색범위

아울러 명암을 포함하는 컬러 볼륨도 더 깊고 휘도도 높다. 이러한 기술적 향상은 사용자에게 더 밝고 진한 컬러의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컬러가 풍부하다는 말이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우도 많지만, 고해상도 영상 시대가 열린 후 시각적 기준이 높아졌다. 4K 해상도의 선명도는 HD급 영상을 훨씬 능가한다는 사실을 모두 체감하고 있다. 우리는 파란 하늘 대신 미세먼지에 익숙해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더 풍부한 컬러 환경을 경험하면 다시 칙칙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진보한 컬러 디스플레이 기술은 단지 상품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각 자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다. 디스플레이를 통한 인류의 진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 한가운데에 삼성디스플레이가 있다.

▲ 삼성디스플레이의 최신 솔루션인 QD 디스플레이는 기존의 복잡한 LCD 방식에 비해 표출 절차를 줄여서 색영역과 밝기 표현, 명암 대비, 시야각 등에 유리하다. 고해상도 광색역 디스플레이의 기준점을 바꾸는 기술 혁신으로 미래를 향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