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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바로 태풍이다. 지난해 늦여름, 부산 해안가는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연이어 강타하면서 많은 피해를 보았다. 해운대와 광안리 주변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들 창문이 강한 바람에 의해 수십 장씩 깨지며 그 일대가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창문이 깨진 상황에 대해 직접적 원인은 태풍에 있지만, 또 다른 원인으로 고층 건물 주변에서 발생하는 ‘빌딩풍’을 지목한 바 있다. 빌딩풍이란 넓은 공간에서 불던 바람이 고층 빌딩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속도가 더 빨라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빌딩풍에 의한 피해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보니 전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오래전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대처방안을 연구해 왔다. 바람이 부는 방향과 반대로 창문을 설계하거나 건물의 모서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드는 이유도 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나 우리나라 잠실 제2 롯데월드 같은 건물 모양이다.

▲ 왼쪽부터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잠실 제2 롯데월드 타워

빌딩풍의 발생 원인을 설명하는 물리적 현상에는 ‘벤투리 효과(Venturi Effect)’가 있다.  벤투리 효과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 ‘지오반니 벤투리(Giovanni Venturi)’가 ‘베르누이의 정리’를 이용하여 해석한 물리 현상이다. 굵기가 다른 관에 유체를 통과시킬 때, 넓은 관보다 좁은 관에서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는 대신에 압력은 낮아지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빌딩들이 많은 도심의 바람은 빌딩들의 좁은 간격을 통과하면서 더 빠른 속도와 낮은 압력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벤투리 효과는 태풍 같은 강한 바람이 불 때만 발생하는 물리적 현상일까? 아니다. 태풍이라는 이슈가 워낙 영향력이 크다 보니 벤투리 효과가 덩달아 부각되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구들의 작동 원리와 아름답게 지어진 건축물에도 벤투리 효과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유기가 알아서 주유를 끝낼 수 있는 것은 벤투리관 덕분이다?

▲ 벤투리관의 이상적인 흐름(출처: 위키피디아)

주유소에서 연료를 넣을 때 일정량이 주입되고 나면, 주유기에서 ‘탁’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소리는 주유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로서, 주유기는 주유소 유류 탱크에 저장되어 있는 연료를 자동차의 연료탱크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장치다. 주유를 위해 주유기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당기면, 노즐이 열리면서 자동차 연료탱크로 연료가 흘러 들어간다. 얼핏 보면 주유기로 연료를 주입하는 과정이 매우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주유기를 들여다보면 벤투리 효과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주유기의 단면을 살펴보면 손잡이와 노즐, 그리고 주유관 및 베어링 등과 함께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벤투리관(venturi pipe)이다. 벤투리관은 압력을 줄이고, 유체 또는 가스의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관의 일정 부분을 좁게 만든 부품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유기로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하다가 자동으로 멈출 수 있는 비결은 벤투리관 덕분에 가능하다. 주유기 아래를 잘 살펴보면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이 벤투리관의 입구이며 작은 파이프 형태로 주유기 내부의 빈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

주유를 시작하게 되면, 벤투리관에 공기가 유입된 후 차량 내 연료탱크로 기름과 함께 배출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벤투리관으로 들어간 공기가 주유기 내부에 있는 부품 중 하나인 다이어프램(diaphragm)을 돌아서 다시 연료와 혼합되면서 자동차 연료탱크로 연료와 함께 주입되는 것이다. 이후 벤투리관을 통해 유입된 기름은 다이어프램 부분을 밀게 되고, 손잡이와 노즐에 힘이 가해지면서 연료 흐름을 차단하게 된다. 

이를 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기름의 밀도가 공기보다 높기 때문에 압력에 변화가 생기면서 연료 차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주유기 외에도 벤투리 효과의 원리를 엿볼 수 있는 도구로는 도료를 칠할 때 사용하는 스프레이건이나 에어브러시 등이 있다. 두 도구 모두 벤투리관을 이용하여 통 속에 있던 도료가 딸려 올라와서 공기와 같이 분사되는 작동 방식을 갖고 있다.


빌딩풍을 활용하여 신재생에너지 자급자족

벤투리 효과는 주유기나 스프레이건처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구의 작동원리 외에도 고효율의 풍력발전 시스템에까지 적용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빌딩풍’을 이용한 풍력발전 시스템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바레인이 자랑하는 랜드마크인 ‘바레인 세계무역센터(BWTC, Bahrain World Trade Center)’에 적용된 풍력발전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이 건물은 전체 높이 240m에 총 50층 규모로 지어진 빌딩으로 현재 비즈니스 센터와 호텔, 그리고 사무실 및 쇼핑몰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 바레인 세계무역센터(BWTC, Bahrain World Trade Center) (출처: 위키피디아, GN-z11), 두 동의 건물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세 대의 윈드 터빈(대형 풍력 발전 시스템)

이 건물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배의 돛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디자인도 한몫을 했지만, 두 동의 건물과 이들 사이의 공중 연결 통로에 설치되어 있는 세 대의 대형 풍력 발전 시스템 덕분이다. ‘윈드터빈(wind turbine)’이라고 불리는 대형 풍력 발전 시스템은 페르시아만에서 불어오는 강력한 바람을 받아서 이 건물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공급한다. 그리고 두 건물은 ‘벤투리 효과’를 적용하기 위해 각각 45도씩 서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로 설계되어 있어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바다에서 지상으로 바람이 불 때 최적의 풍속으로 윈드터빈을 통과시켜 풍력발전이 이루어지게끔 만드는 것이 주요 원리다.  BWTC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세 대의 윈드터빈을 가동하여 연간 약 1200MW의 전기를 생산 및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건물에서 필요로 하는 전력수요의 약 11~15%에 해당하는 규모다. 


벤투리 효과를 활용하면, 새로운 에너지원을 얻을 수 있다!

BWTC외에도 해외의 유명 건물들이 이런 벤투리효과를 통한 빌딩풍을 신재생 에너지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2012년에 만들어진 71층 높이의 중국 광저우의 펄리버타워도 빌딩 1/3지점과 2/3지점에 풍혈을 만들어 풍력발전을 이용하고 있고,  영국 런던의 스트래타빌딩도 건물 꼭대기에 3개의 풍혈과 대형터빈을 설치해 건물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8%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왼쪽부터 영국 런던에 위치한 Strata SE1(출처: 위키피디아, Colin), 중국 광저우 Pearl river tower (출처: 위키피디아, Bradwilkins)

빌딩풍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은 소음 문제나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는 난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가 남아있다. 이런 해결점이 남아있긴 하지만, 최근 전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런 빌딩풍을 이용한다면 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도시형 풍력 발전 분야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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