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 휴대폰이 처음 보급되던 시절, 화상 통화를 하다가 화면에 작별의 입맞춤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휴대폰 화면에 입을 갖다 대니 조금 놀랐다. 이렇게 사람은 실물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연결되기를 원한다. 실제로 접촉하지 않으면 실감이 나지 않는 탓이다. 장난감 다큐멘터리 ‘토이: 우리가 사랑한 장난감들’에 나오는 수집가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것도 그 촉각이다. 장난감은 영상과는 달리 직접 만질 수 있어서 좋다고. 요즘 같은 시대에도 여전히 종이책이 많이 팔리고, 자연으로 캠핑을 떠나며, 어떻게든 서로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그렇다. 촉각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느낄 수 있다! 텔레햅틱 기술

텔레햅틱(telehaptics)이란, 촉각을 원격으로 재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멀리 떨어져 있음을 뜻하는 텔레(Tele)와 만진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haptesthai)에서 유래한 햅틱(Haptic)을 합친 말이다. 예를 들어 최근 ETRI에서 개발한 텔레햅틱 기술을 보면 최대 15m 떨어진 거리에서도 금속, 플라스틱, 고무 등의 재질을 손가락으로 느낄 수 있다.  특정 물체가 센서에 닿으면 거기서 물체에 대한 촉각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블루투스 통신으로 전송해 촉감을 재현하는 기기로 재생한다. 소리를 녹음한 다음 데이터로 만들어서 전송해 멀리 떨어진 스피커로 소리를 들려주는 일과 비슷하다. 물론 물체 재질을 읽어내는 센서와 이를 재현하는 액추에이터, 실시간 데이터 제어·전송 등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기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인 햅틱 기술과는 어떤 게 다를까? 스마트폰에서 진동을 느끼게 해주는 햅틱 기술이나, 노트북 트랙패드에서 쓰이는 포스 피드백 같은 단어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햅틱 기술은 특정 촉감을 재현해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정확하게 따지면 햅틱은 적극적으로 촉각적 감지를 하는 과정을 뜻하지만, 보통은 스마트 기기에 달린 작은 모터가 진동하는 떨림으로 촉감을 전달하는 기술로 이해되고 있다. 텔레햅틱의 햅틱은 이런 ‘햅틱 기술’의 햅틱과 뜻이 같다. 다만 직접 만졌을 때 느껴지는 촉감이 아니라 떨어져 있어도 느끼는 촉감에 초점을 맞춘다. 원격으로 작업하거나 커뮤니케이션할 때 쓰는 햅틱 기술이다. 원격 작업 특성상, 양방향으로 촉각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는 특징도 있다.

▲Maintenance Assembly & Disassembly Facility 내부에 있는 원격 작업 기계 팔 (출처: 위키피디아)

재미있게도 실은 햅틱 기술이 텔레햅틱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1942년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소설 ‘Waldo’를 통해 로봇을 이용한 원격 작업이란 개념을 제시한 후, 1945년 방사성 물질을 처리하기 위한 원격 작업 기계 팔(telemanipulator)이 실제로 만들어지게 된다. 뒤이어 이런 기기를 수중 작업 등에 쓰게 되며, 앞으로 우주에서 작업하거나, 건설·산림 작업, 미세 수술 등에 쓸 방법으로 여겼다. 이때 현장을 느끼기 위해 연구된 것이 햅틱 기술이다. 로봇팔이 뭔가를 잡은 느낌, 굴삭기가 바위에 부딪혔을 때 느낌, 비행기 날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같은 느낌을 조종자에게 전달하고, 조종자의 손놀림을 기계에 전달해 안전하게 일하도록 도왔다. 1970년대에는 컴퓨터를 사용해 현장감을 전달하는 방법이 개발됐고, 이를 햅틱 인터페이스라 부르게 된다.


어떻게 촉감을 재현할까?

초기 햅틱 기술은 주로 산업용 로봇 등을 활용한 원격 작업이나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훈련 분야에서 쓰였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는 가상 현실, 컴퓨터 게임과 휴대폰 등에 촉각 피드백을 주기 위해 널리 쓰이게 된다. 게임 컨트롤러에는 기본적으로 햅틱이나 포스 피드백을 주기 위한 기능이 대부분 들어가 있고, 사실상 표준화되었다. 스마트 기기에선 물리 부품을 삭제한 터치 디스플레이를 채택하면서, ‘버튼을 누르는 듯한 느낌’ 같은 것을 주기 위해 사용된다. 햅틱 기술에서 주로 손으로 느끼는 감각을 다루는 이유는 보통 외부 세계를 촉각적으로 탐색할 때 손을 먼저 사용하기 때문이다.

햅틱 기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각은 크게 피부감각(touch)과 운동감각(kinsthesia)으로 나뉘는데, 손으로 말하자면 손끝에 어떤 느낌이 드는지(피부감각)와 손이 어떤 동작을 하는지(운동감각)를 재현한다. 왜 운동감각까지 재현해야 할까? 촉각은 두 가지 감각을 합쳐서 다양한 정보를 인지하는 감각이라서 그렇다. 사과를 손으로 들면 무게를, 문지르면 재질을, 만져보면 온도를, 눌러보면 무른지 단단한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원하는 촉각 정보에 따라 손을 움직여야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촉각은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표면이 매끄러운 물체를 잡으면, 잡는데 힘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표면이 거친 물체보다 더 무겁게 느끼곤 한다.

느끼는 감각이 두 가지인 만큼, 촉감 재현 기술도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역감 재현(Force Feedback, 운동감각 재현) 기술이다. 근육과 관절에 물리적인 힘을 전달한다. 다른 하나는 진동 촉감 재현(Vibrotactile Feedback) 기술이다. 피부에 질감, 진동, 압력, 온도 등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4DX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땐 의자가 움직이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오면 떨리며, 피부에 바람이나 물을 뿌리고, 작은 핀으로 등을 두드린다. 역감과 진동 촉감을 모두 재현하는 방식이다. 기술적으론 외부 장치를 이용해 직접 역감을 만들거나, 작은 모터를 이용해 여러 물체의 진동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많이 쓴다. *압전소자를 이용한 *액추에이터나 미세전기, 초음파, 특수 레이저 등을 이용해 촉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액추에이터(actuator): 전기, 유압, 압축 공기 등을 사용하는 원동기

*압전 소자: 기계적 압력으로 인해 전압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기계적 변형이 발생하는 압전효과를 지닌 소자


메타버스 시대에 실감을 더해줄 텔레햅틱

주된 텔레햅틱 응용 분야를 꼽자면, 원격 작업과 디지털 게임을 들 수 있다. 조작하는 대상이 현실에 없다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① 어떤 대상에게서 원격으로 촉각 정보를 얻는다 ② 쌍방향으로 촉각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게임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텔레햅틱 활용 콘텐츠다. 조작하는 사람의 움직임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으면서 게임 캐릭터 동작에 따라 촉각 피드백을 제공한다. 조작자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 거꾸로 캐릭터 동작에 반영하기도 한다. 텔레햅틱을 통해 정말 실감 나는 게임, 게임 속 캐릭터와 내가 이어진 느낌을 완성한다.

현실과 가상이 어우러진 생활세계, 메타버스라면 어떨까?

삼성디스플레이 최주선 대표이사는 ‘SID 2021 기조 연설’에서 우리는 수많은 디스플레이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디스플레이가 사람들을 이어주는 창문이라고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메타버스 시대를 쾌적하게 살아가려면 다양한 폼팩터의 기기 디스플레이에서 똑같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하고, OLED 기술을 이용하면 그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에 가상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텔레햅틱 기술이 보태진다면, 좀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 생생한 화질을 통해 가상 애완 동물의 재롱을 보면서,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 털을 느끼거나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손뼉이 마주치는 기분을 맛볼 수 있게 된다.

▲SID 2021 기조연설에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삼성 OLED 제품들

언제쯤 이렇게 될까?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한계가 분명하다. 촉각에 대한 표준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도 부족하고 조금 더 정밀한 해상도가 높은 촉각 변환·재현 기술도 상용화되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 2021년 4월, 국제표준화단체 IEC에서 촉각 신호를 재생하기 위한 국제 표준 규격에 대한 제안을 받기로 했다. 햅틱 규격 표준화가 이뤄지면 MP3 소리 파일이나 MP4 영상 파일처럼 더 많은 사람이 촉각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쓰임새도 다양하다. 촉각 센서가 들어간 수술용 로봇은 이미 출시됐다. 2019년 에릭슨에서 발표한 “Internet of Sense” 보고서를 보면, 2030년쯤엔 스마트폰 화면에 보이는 물건의 재질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머지않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이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