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크립토키티가 있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고양이 수집 게임이다. 2017년 말에 만들어졌으니 이쪽 세계에선 시조새 정도에 해당한다고 봐도 좋다. 게임은 아주 간단하다. 시작할 때 고양이를 한 마리 산다. 다른 고양이와 교배시킨다. 거기서 새로운 고양이가 태어난다. 이렇게 수집한 고양이들을 사고판다. 게임 속 고양이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르다. 조금씩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귀한 고양이도 있고 못난 고양이도 있어서 서로 값도 다르다. 그렇게 교배와 판매를 반복해서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무슨 이런 단순한 게임이 다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꽤 인기를 끌었다. 암호 화폐가 아니라 제각기 고유한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ERC-721)에 기반해 만들어진 첫 번째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크립토키티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을 만들어 사고팔 가능성을 보여줬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을까? 한때 이용자 수는 6만 명에 달했고, 가장 비싼 고양이는 600이더리움에 팔렸다. 출시 초기엔 한 달에 8만 건이 거래되기도 했다. 그렇게 반짝 흥행에 성공했지만 인기는 금세 식었다. 게임이 간단한 만큼 수많은 아류작이 범람했고 사용자들의 관심도 멀어져갔다.

▲크립토키티(https://www.cryptokitties.co/) 사이트 페이지


NFT로 부활한 크립토키티

그렇게 잊힌 줄 알았는데 계속 크립토키티의 피를 이은 서비스가 태어났다. 서비스 종류가 많아지니 NFT(대체 불가능 토큰, Non Fungible Tokens)라는 기술명이 그대로 쓰인다. 하는 일이 늘어나서 그저 블록체인 XX이라고 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특히 위변조하기 어려운 블록체인 특징을 이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보증서를 제공하는 사업이 커졌다.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디지털 파일에 딱지(NFT)를 붙여 ‘딱지가 붙은 고유한 디지털 파일’을 만든다. 이 딱지가 붙은 파일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딱지가 속해 있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증명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당신에게 유일무이한 디지털 이미지나 음악 파일을 제공할 수 있다. NFT 파일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장터도 생겼다.

그저 딱지만 붙인 건데 디지털 파일을 현실 세계의 물건처럼 팔 수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팔렸다. 2021년 3월,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올린 ‘최초의 트윗’ NFT가 약 290만 달러에 팔렸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여자 친구로 알려진 그라임스는 작품 NFT 10종을 팔아 약 680만 달러를 벌었다. 비플로 알려진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은 자기 그림 5,000개를 조합한 NFT를 크리스티 경매에 올렸다. 그 작품은 6,930만 달러에 낙찰됐다. 상상하지 못했던 비싼 가격에 그동안 팔 수 없으리라 여겼던 것들이 팔리기 시작하자 많은 기사가 작성되고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리자 이젠 별의별 것들이 다 팔리기 시작한다. 1년간 녹음한 방귀 소리가 판매됐고, 맘에 안 드는 공직자의 발언을 담은 기사를 NFT로 만들어 박제한다. (250만 원 정도에 팔렸다.)


NFT는 지나가는 유행일까?

이러한 NFT 바람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상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 지금 오가는 아이템과 아이템 가격이 정상인지 아닌지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품이 끼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다. NFT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실제로 미술 작품을 팔고, 방귀 소리를 팔았던 사람도 하나 같이 이건 거품이라고, 나중에도 이렇게 팔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부 관련자들이 바람을 넣었을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비플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NFT 투자사에서 일하고 있고, 한국에서 NFT 작품을 구매한 사람도 암호 화폐 투자자로 알려졌다.

바람이 좀 들어있다고는 하나 NFT에 대한 가능성은 내비친 것 아닐까? 실제로 NFT가 갑자기 화제가 되자 패션 업체를 비롯해 수많은 기업이 관심을 보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자신이 쓴 칼럼을 NFT로 팔았고, 미국 NSA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초상화도 NFT가 됐다. 유명 브랜드 시계들이 시계 디자인을 NFT로 내놨다. 타임스 표지, 인터넷에서 유명한 고양이 GIF, 피자헛의 피자까지 갑자기 모든 게 NFT가 되겠다고 나섰다. 많은 경우 마케팅을 위한 숟가락 얹기였지만,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 ‘재앙 소녀(Disaster Girl)’ 밈으로 알려진 원작 사진이 NFT로 팔렸고 덕분에 사진 속 소녀가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만 지나가는 유행인지 새로운 흐름이 등장한 건지는 천천히 살펴봐야 한다. 크립토키티 때도 그랬지만, 그때 잠깐 반짝이다 지나가는 서비스는 정말 많다. 누군가는 드디어 가난한 예술가들이 먹고 살 기회가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팔리는 건 결국 유명한 한 사람이나 브랜드, 아티스트의 NFT다. 오픈시나 에이싱크, 민터블 같은 NFT 작품 판매 사이트를 보면 조잡해 보이는 그림이 말도 안 되는 비싼 가격에 올라온 것도 볼 수 있다. 저작권 문제도 쏟아진다. 남의 작품 앞에서 비슷한 자세로 찍은 자기 사진을 NFT로 올리는 일처럼 대체 어떻게 봐야 좋을지 모를 일도 있다.


NFT가 풀어야 할 산더미 같은 문제들

NFT 딱지를 붙인 아이템을 얻어서 과연 뭐가 좋은 걸까? 일단 NFT는 등기부등본이 아니다. 저작권은 여전히 작가에게 남아있고, 소유권만 이전되는 개념이라서 그렇다. 창작물은 부동산 같은 자산과는 다르다. 누군가는 비싸기로 유명한 게임 아이템 ‘진명황의 집행검’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이런 게임 아이템도 수억 원을 호가했는데, NFT 작품이 비싸게 팔리는 게 뭐가 문제냐고? 이미 세상은 디지털 아이템에도 대가를 지급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수많은 게임이 아이템 판매로 먹고사는 세상에서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진명황의 집행검이 얼마나 많이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희귀 아이템인지를 안다면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아이템은 게임 안에서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진명황의 집행검을 축소 복원한 미니어처 모델 (출처: 위키피디아)

NFT가 풀어야 할 문제는 여럿이다. 그저 간단한 거래와 원본성을 증명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대가도 너무 비싸다. NFT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돌아가지만 NFT에는 해당 작품이 담겨 있지 않다. 다른 서버에 저장되어 있고, 거기로 연결하는 링크만 들어가 있다. 그 서버가 죽으면? 벌써 시작된 사기와 해킹 문제는? 개인 키를 잃어버리면? 비싼 수수료는? 다행히 NFT를 활용하는 서비스는 NFT 작품 판매만이 아니다. 다양한 활용법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다.


NFT의 다양한 활용법

크립토키티가 보여준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술을 잘 몰라도 쉽게 블록체인 서비스에 접근할 가능성이다. 크립토키티 접근성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암호 화폐에 비하면 훨씬 친근한 방법을 택했다. 우리가 인터넷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해도 인터넷을 쓰는 것처럼 정말 기술이 널리 퍼지려면 그 기술이 무엇인지 몰라도 쓸 수 있어야 한다. 아쉽지만, 다른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NFT도 이 단계에 도달하진 못했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아이템을 개인 자산으로 남길 가능성이다. 우리가 게임이나 여러 플랫폼을 통해 가지게 된 디지털 아이템은 꽤 많다.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그 소유권을 인정받은 적은 없다. 사적인 거래는 있지만 보호받지 못한다.

NFT는 그런 개인 디지털 자산을 개인이 소유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실 크립토키티 이후 게임 아이템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게임이 여럿 출시됐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게임 아이템은 해당 게임 세계관 안에서나 유효하고, 게임 머니는 그걸 공유할 다른 게임이 있을 때나 쓸 수 있다. 이런 면에선 로블록스에서 쓸 수 있는 로벅스가 훨씬 낫다. 최근에는 디센트럴랜드나 제이알월드 같은 가상 부동산을 판매하는 게임도 등장했다. 암호 화폐로 가상 부동산을 사고파는 게임이지만 진짜 사람을 게임 속 카지노 딜러로 고용하기도 한다.

NBA 탑샷은 실제 수집용 트레이딩 카드와 비슷한 방법을 채택했다. NBA 협회 공식 허가를 받아서 NBA 주요 게임 명장면 영상을 NFT로 만들어서 판다. 판매 방식이 1팩 단위로, 종이로 된 트레이딩 카드를 판매하는 방식과 같다. 크립토키티 게임을 만든 대퍼랩스가 이 게임 제작사로 수익 목적인 서비스와는 조금 선을 그었다. 기본 팩은 9~14달러 정도다(암호 화폐가 없어도 달러로 살 수 있다). 물론 NFT니만큼 당연히 거래도 할 수 있기에 비싼 카드는 10만 달러 이상으로도 거래가 된다. 미국 내 인기 종이 트레이딩 카드와 비슷한 가격이다. 앞으로 출시될 NBA 게임이나 웹게임에서 이 게임 카드를 선수 카드로 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NBA 탑샷 모델은 현실 트레이딩 카드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 썼으며 주된 수익은 거래 수수료이다.

테사는 미술 투자 플랫폼인데 회사가 실제 작품을 산 다음 NFT 형태로 소유권을 나눠서 판매한다. 일종의 미술품 소액 투자인 셈이지만 작품 가치는 현실에 맡기고 소유권만을 NFT로 보증하는 형태다. 이미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도 있는 만큼, 이런 방식으로 NFT가 활용될 가능성은 눈여겨봐야 한다. 하이퍼 에디션처럼 질 높은 작품을 선정해 복제와 불법 이용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을 적용, NFT 형태로 판매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중앙집중식이라 회사가 사라지면 소유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다양한 활용법이 등장하는 것은 환영할만하다.


그렇다면 NFT의 미래는 어떨까?

NBA 탑샷을 제외하면 시장 참여자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 수가 곧 수요일 텐데, 아직 제대로 공개하는 회사가 드물다. 그러나 NFT는 디지털 아이템 소유권을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보여줬다. 세컨드 라이프가 실패하고 나서 3D 온라인 게임이 성공한 사례에서 보듯 투기성을 줄이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갖추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트레이딩 카드처럼 디지털 콘텐츠라도 ‘자기 소유’를 주장하고 싶은 사람도 많다. 요즘처럼 많은 돈을 내고 게임 아이템을 뽑아서 얻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많은 회사는 모든 디지털 아이템을 회사가 소유하고 이용자들에겐 그저 사용권만 주고 싶지만, 중간 거래 수수료를 회사가 챙길 수 있다면 기꺼이 소유권을 양도할지도 모른다. 전자책이 그렇고 다운로드로 구매한 게임이 그렇다. 카카오톡이나 앱스토어에 이용자 마켓 플레이스가 추가된다면 어떨까?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디지털 콘텐츠에 쓰는 돈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백만 명이 낸 천 원은 한 명이 낸 10억 원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다만 그런 미래는 어떤 이가 NFT에서 꿈꿨던 대박 기회나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작품 판매를 통해서 이익을 얻는 세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


※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