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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 유래된 넓적한 빵의 일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소수점 몇 번째 자리까지 외울 수 있는지 친구들과 대결하느라 고생했던, 3.14로 시작해서 끝없이 계속되는 상수에 대한 이야기다. 수학에서 상수란, 값이 변할 수 있는 변수의 반대말로, 1이나 0처럼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고유의 수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수라고 생각하는 숫자들은 그 값을 정확하게 셀 수 있으며 무한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험문제에서 학생들이 계산을 수월하게 완료할 수 있도록 주어진 상수들이 익숙할 뿐이며, 계속해서 이어져서 끝까지 세어본 적이 없는 수라고 해도 상수일 수 있다. 상수는 수의 종류가 아니라 주어진 식에서 변화하지 않고 고정된 수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일상 속에서 수라고 한다면, 제곱해서 음의 수가 나오는 허수는 종종 고려하지 않고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 외에는 실수라고 하는데, 정수와 분수로 적을 수 있는 유리수와 둘 중에 어떤 형태로도 나타낼 수 없는 무리수가 여기 속한다.

▲원의 지름이 1일때, 원주는 π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무리수 중에서도 오늘의 주인공 파이(π)는 ‘초월수(Transcendental Number)’라고 불리며 소속되어 있다. 초월수인 파이(π)는 원주율을 의미한다. 풀어서 쓰면, 원의 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비라고 할 수 있다. 원은 놀라운 도형이다. 우주에서 가장 보편적이며 단순한 형태이며, 둥근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도 원을 그리며, 달 역시 원 궤도로 지구 주위를 돈다. 효율적인 이동을 해내기 위해 인류는 둥글게 바퀴를 깎았고, 멀리 정확하게 날아가 목표물을 관통하는 총알도 정면에서 보면 매끄럽게 회전하는 원의 형태다. 1845년 존 데이비스가 쓴 ‘원의 측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원은 신성을 표현하는 가장 고상한 것이며, 모든 경계를 고치고 신을 알게 해주는 열쇠가 된다.’ 원에 대한 탐구는 과거 수학자들에게 중요한 과업이었으며, 원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특히 원주율인 파이(π)는 원에서 어렵게 찾아낸 신비로운 상수였다. 누구나 원주율을 미리 알고만 있다면, 마치 마법처럼 원의 지름만으로 둘레를 알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원주율’의 원리가 숨어있는 석굴암 내부 천장의 모습. (출처: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지혜로운 우리의 선조들도 원주율을 사용했다. 경상북도 경주의 토함산 중턱에 오르면,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을 만날 수 있다. 국보 제24호로 지정된 불교 건축의 꽃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는 내부의 본존불상을 둘러싼 돔 형태의 천장을 갖고 있는데, 동심원을 그리며 돌로 쌓은 구조 사이에 박힌 끼임돌의 간격은 놀라울 정도로 오차가 없이 일정하다. 이건 원주율을 통해 원의 둘레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유용한 원주율은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오래 전부터 시작된 원주율 발견의 역사

▲원에 내접하는 정육각형의 모습을 통해 발견된 원주율.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고대 왕국 바빌로니아에서는 도형을 연구하던 수학자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원 안에 정육각형을 꼭 맞게 넣었더니, 정육각형의 둘레 길이가 접해있는 원 반지름의 6배가 되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정육각형의 둘레와 원의 둘레 사이의 관계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구해서 사용했던 원주율은 3.125였다. 지중해와 홍해와 인접한 독보적인 문명국 이집트 역시 원주율을 구할 줄 알았다. 이집트의 서기이자 수학자였던 아메스는 종이 대용으로 쓰던 파피루스에 넓이가 비슷한 원과 정사각형의 지름과 변의 길이를 적었다. 두 도형의 넓이를 이용하면 원주율은 3.16이 나온다. 둘 다 지금의 원주율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원의 둘레나 넓이를 통해 원주율을 비슷하게 구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원에 외접하는 다각형과 내접하는 다각형의 둘레를 이용한 아르키메데스의 원주율 계산을 그림으로 나타낸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0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을 정도로 수학적 기반이 튼튼했던 인도 역시 3.1416이라는 매우 정확한 원주율을 구했으나 아쉽게도 풀이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기원전 400년 고대 그리스의 안티폰과 동료였던 브라이슨은 원을 마치 피자 자르듯이 중심부터 바깥쪽으로 자르며 변의 수를 늘리다 보면 잘게 잘린 조각들을 모아 직사각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원의 넓이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과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원주율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넓이 대신 둘레의 길이에 초점을 맞추었고, 원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만나는 정다각형을 각각 그렸다. 결국 원의 둘레는 두 정다각형의 둘레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안티폰과 브라이슨이 했던 것처럼 변을 늘려가면서 정밀도를 높여 나갔다. 그리고 무려 96개의 변을 갖는 정다각형에 도달 해서야 비로소 3.1416이라는 원주율을 얻을 수 있었다. 치밀하게 기록된 계산 과정 덕분에, 원주율은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 불렸다. 그 이후로도 원주율을 더욱 정확하게 구하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주율은 언제부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3.14라는 값으로 된 걸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260년경 고대 중국의 수학자 유희를 만나야 한다. 그는 과거에 소실된 ‘구장산술’이라는 수학 책을 다시 집필했는데, 역시 정다각형을 이용하긴 했는데, 놀랍게도 아르키메데스가 사용했던 정96각형보다 훨씬 세밀한 정192각형이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정3072각형까지 동일한 방법으로 계산을 해본 결과, 원주율은 3.14 정도면 충분히 정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원주율이 다행히 소수점 두 자리에서 끝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유희다. 이후 송나라의 수학자 조충지는 유희를 뛰어넘어 세계 최초로 소수점 일곱 자리까지 정확하게 계산했다. 이렇게 계산한 3.1415926은 서양에도 전해졌고, 이후 천년간 가장 정확한 수치였다.  


점점 정밀하게 계산되는 원주율의 값

독일의 수학자 루돌프 역시 평생을 원주율의 계산에 바쳤는데, 그는 원 둘레를 계속 반으로 나누어서 계산하는 방식으로 무려 소수점 이하 35자리까지 도달했다. 루돌프는 죽기 직전 자신이 계산한 원주율 값을 묘비에 새겨달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애정이 대단했고, 그래서 독일에서는 원주율을 종종 ‘루돌프의 수’라고도 부른다.

▲뷔퐁의 바늘 문제를 통해 원주율을 구하는 방법 (출처: mathlab수학력발전소 유튜브)

17세기 중반에는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각자 독자적인 방식으로 미적분이라는 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구를 발견했는데, 덕분에 수학자들은 한결 손쉽게 원주율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뷔퐁 백작은 꽤 흥미로운 원주율 계산법을 들고 나왔는데, 기하학에 확률을 적용한 ‘뷔퐁의 바늘 문제’였다. 적당한 길이의 바늘을 하나 준비하고, 그 길이의 두 배 간격으로 평행하는 직선을 종이에 여러 개 긋는다. 그 뒤에 바늘을 종이 위에 떨어뜨리면, 바늘이 교차한 횟수와 떨어뜨린 횟수의 비율이 원주율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바로 현재 물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난수로 함수의 값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몬테카를로 방법의 가장 기초적인 접근이었다.

1761년 독일의 수학자 람베르트는 원주율 파이(π)가 무리수라는 것을 증명했고, 1882년 린데만은 파이(π)가 무리수일 뿐만 아니라, 초월수라서 원주율을 끝까지 계산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마침표를 찍었다. 오직 두뇌와 손으로만 가장 긴 원주율을 계산해낸 사람은 영국의 아마추어 수학자 윌리엄 샹크스였다. 그는 15년간 소수점 이하 707자리까지 계산해냈고, 유언으로 자신이 계산하기 위해 썼던 종이들을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 아쉽게도 70여 년이 지난 뒤, 그의 계산 값이 소수점 528자리부터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극을 모르고 세상을 떠난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을 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을 넘어 자연의 비밀을 품고 있는 원주율

▲’갤럭시 Z 폴드2의 폴더블 OLED’와 ‘강수량 측정’에 숨은 원주율 원리.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대다수는 요즘 대세인 폴더블 스마트폰과 커브드 모니터를 직접 보거나 사용해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제품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몰입감을 제공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들의 사양을 자세히 보면 ‘R’ 값이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반지름을 뜻하며 제품의 굽혀진 곡률을 나타내는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 반지름과 원주율을 활용하여 구부리거나 접혀진 디스플레이의 길이를 계산했다는 것이다. 즉, 수학자들에 의해 원주율이 구해져 있기에 제품 개발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원주율만 알면 들고 있던 둥근 머그잔에 남은 커피의 양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비가 오는 장마철, 도시에서 내리는 비의 대략적인 총량 역시 빈 통과 원주율을 사용하면 알아낼 수 있다. 심지어 161년간 누구도 증명해내지 못한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의 하나인 리만 가설을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소수의 곱으로 표현된 식이 하나 나오는데, 원주율을 구하는 식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수학자들은 알아냈다. 어쩌면 원주율이 불규칙한 소수의 비밀을 품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원주율은 일상생활 속 아주 소소한 문제부터 자연에 숨겨진 경이로움까지 광범위하게 닿아있다.

2005년 중국의 차오루라는 청년이 소수점 이하 67,890자리를 외워서 기네스 공식 세계기록으로 등재되어 있긴 하지만, 이렇게 외우는 게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암기하는 참신한 방법들도 꽤 있는데, 1906에 오르라는 사람이 만든 아르키메데스 찬양 시를 외워서 각 단어를 문자의 수로 바꿔주면 정확하게 원주율의 소수점 이하 30자리까지 구할 수 있다. 이제는 온라인에서 검색해보면 파이(π)의 값을 노래로 만들어서 불러주는 사이트도 있을 정도다. 수학의 정수를 찾는 과정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취미로 즐기는 단계까지 도달한 원주율은 더 이상 대단히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매년 파이(π) 데이라고 불렸을 지도 모를 3월 14일도 성 발렌티누스를 기념하는 분위기만 가득하다. 그래도 잊지 말자. 원주율 덕분에 인류의 수학과 과학은 여기까지 왔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위대한 성과는 셀 수조차 없다. 마치 산소 같은 존재가 된 원주율, 파이(π)에게 가끔 고마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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