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일단 잘 자야 한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쓴 매슈 워커에 따르면, 잠은 식단과 운동이란 두 건강 기둥을 떠받치는 토대다. 영국 BBC에서 수면에 대한 153개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당뇨, 면역력, 비만, 치매에 영향을 끼친다. 간단히 말해, 잠이 부족하면 노화가 빨리 진행된다.
이렇게 중요하지만, 제대로 자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인 평균 수면 시간은 2016년 기준 7시간 41분으로 OECD 평균 8시간 22분에 크게 못 미친다. 불면증 환자는 2013년 42만 5천 명에서 2017년 56만 1천 명으로 연평균 7.2% 늘어났다. 주로 50대~70대가 걸리지만, 20~30대 직장인도 다르지 않다. 에이스 침대 이동수면 공학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3명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슬립 테크는 'Sleep'과 'Technology'를 붙인 말로, IT를 이용해 숙면을 유도하거나 수면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서비스나 제품을 가리킨다. 주로 자는 동안 수면 습관을 추적해 수면 상태를 교정해 주거나, 숙면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한, 생체 반응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수면 혹은 기상 상태를 유도하거나, 명상을 통해 잘 자도록 도와주는 식이다.
슬립 테크의 알파이자 오메가, 스마트폰
수면 상태를 체크하는 앱과 기기는 2010~12년 즈음 등장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잠 못 드는 사람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초의 헬스 트래킹 손목 밴드 ‘조본 업’이 이때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다. 일상생활과 수면 상태를 추적하는 기능이 있었다. 조본 업의 인기에 힘입어 삼성, 애플, 구글에서도 스마트 워치를 내놓게 된다. 다만 이때는 정확한 데이터를 얻지도 못했고, 모아도 어떻게 쓸 줄 몰랐다. 아이러니하게 수면 측정이 가능해지자, ‘오쏘솜니아(Orthosomnia)’라 부르는 ‘완벽한 수면을 추구하는 불안증’이 나타나기도 했다. 결국, 수면 모니터링에 대한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반전은 2016년 시작됐다. 아리아나 허핑턴이 쓴 ‘수면혁명’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좋은 수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졌다. 뇌 과학 연구로 인해 잠에 대한 새로운 정보도 가지게 됐다. 이때부터 슬립 테크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2017년 CES에서는 슬립 테크 관련 전시가 처음으로 따로 열렸다. 예전에는 수면 중 움직임을 추적하고 코골이를 기록하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모은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 사이 하드웨어로 수집된 데이터를 AI 소프트웨어로 분석하는 시대가 온 덕분이다.
다양한 슬립 테크 제품들
▲갤럭시 핏 (출처: 삼성전자)
슬립 테크의 대표적인 기능은 ‘수면 추적’이다. 예를 들어 갤럭시 워치나 갤럭시 핏을 착용하면 심박 수를 체크해 이용자의 수면 패턴을 추적해 분석한다. 보통 4단계로 나눠 얼마나 깊은 잠을 잤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전날 음주를 했을 때나 잠자리가 바뀌었을 때 수면 상태도 확인할 수 있다.
▲뇌파 측정장비 드림2 (출처: Dreem 2)
최근 트렌드는 뇌파 감지다. ‘드림2(Dreem2)’는 뇌파 측정 장비와 앱을 함께 제공하는 수면 추적 솔루션이다. 이를 통해 더욱 정확하게 수면을 추적할 수 있다.
▲ 뮤즈 소프트밴드 (출처: Muse Softband)
비슷한 제품인 ‘뮤즈 소프트밴드(Muse Softband)’는 수면을 위한 명상 헤드 밴드다. 아마존 AI 알렉사와 연동해 명상 음악을 재생하고, 수면 패턴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숙면을 돕는 스마트폰 앱 'Calm' (출처: 삼성전자 뉴스룸)
스마트폰 앱도 다양하게 쓰인다. 삼성 헬스 앱에서도 만날 수 있는 명상 앱 ‘캄(Calm)’을 이용하면, 자기 전에 들으면서 명상을 하거나,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다. 불면증에 대한 인지행동치료(CBT for insomnia)를 제공하는 앱도 있다. 또한, 슬립 사이클 앱을 이용하면 소리를 이용해 수면 상태를 체크하고, 코를 골면 녹음해서 들려준다.
▲ 숙면을 돕는 오라 링 (출처: 오라 (Oura))
슬립테크 관련 기기도 더 다양해졌다. 핀란드에서 개발한 ‘오라 링(Oura ring)’은 손가락에 끼는 작은 반지를 통해 잘 때 심장 박동부터 호흡수, 체온 변화, 뒤척임 등을 모두 기록할 수 있다. 일상생활도 기록하기 때문에, 낮에 운동을 많이 해서 밤에 잠이 안 온다든지 하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CES 2017 최고혁신상 스마트 침대 슬립넘버 360 (출처 : Sleep Number)
그 밖에 코골이를 멈춰주는 침대 ‘슬립 넘버 360(Sleep Number 360)’이나 체온 변화에 따라 방 온도를 조절해 주는 기기, 스마트 수면 안경, 수면용 이어플러그도 출시됐다. 아예 부품 단계에서 수면에 해가 가지 않게 바꾸기도 한다. 그 예로 삼성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용 OLED에 눈에 해로운 블루라이트 파장을 감소시키는 기능을 넣어 디스플레이 설계 단계부터 사용자의 눈 건강을 챙겼다.
슬립 테크의 미래
슬립 테크는 어떻게 발전할까? 예상 시장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PRM의 시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 보조제(숙면을 돕는 약물 및 기기) 시장은 2014년에는 약 580억 달러(한화 69조 원) 규모였고, 2020년에는 800억 달러 (약 98조 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아직 체감하기 어렵지만, 슬립 테크는 이미 의료 시장의 주류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물론, 슬립 테크 기기가 의학적으로 인정받은 예는 아직 많지 않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통합은 이제 초기 단계이고 체중/식사/수면/스트레스 등 엮을 수 있는 여러 데이터가 따로 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수집된 데이터를 제대로 써먹기까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슬립 테크가 나아갈 방향은 결국 세 가지다. 첫 번째, 이용자의 신체/상황/의도를 감지해 잠을 깊이 잘 수 있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데이터를 좀 더 분석해 이용자가 이해할 만한 정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욱 의학적으로 정확해지는 것이다. 슬립 테크의 미래는 이 기술을 통해 이용자가 의미 있는 정보를 얻고, 생활 습관을 바꾸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