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알아보는 공학이야기 6 – 측정 표준과 단위 편

공학은 정량화(수량화)로 시작되며, 나타난 숫자들은 모두 단위를 포함합니다. 사물을 계량하고 수치화하는 작업을 측정이라 하는데, 이러한 측정은 일관성 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과거 동양에서는 척관법(尺貫法), 영국에서는 피트-파운드법(ft-pound system)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국제단위계(SI)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고대의 측정기준

오래전부터 수없이 많은 측정 기준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습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다툼을 없애고, 자연 관찰이나 공학 측량을 위해 도량형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도량형의 度(도)는 길이, 量(량)은 부피, 衡(형)은 무게를 의미합니다. 즉 길이를 재는 자, 부피를 재는 되, 그리고 무게를 재는 저울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주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을 도량형 척도로 사용했습니다.

쉽게 알아보는 공학이야기 6 – 측정 표준과 단위 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

인체는 언제나 좋은 척도가 되었습니다. 발 크기, 손가락 굵기 또는 양팔을 뻗은 거리 등이 길이 단위가 됩니다. 가장 오래된 단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한 큐빗(Cubit)이라는 단위입니다. 팔을 구부렸을 때 팔꿈치에서 손가락 중지 끝까지의 길이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다른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불공정한 상거래를 방지하고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측정 기준을 통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척관법

우리나라는 중국의 척관법을 들여와 변형해서 사용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길이 단위로 자(약 30cm)를 기준으로 하여, 자의 1/10을 '치', 6자를 '간'이라 하였습니다. 또 60간을 1정, 6정을 1리(약 400m)로 하여 거리를 나타낼 때 사용했습니다. 길이에서 유도된 면적의 단위로서 1평은 한 변이 6자인 정사각형 면적을 나타냈습니다. 귀금속 무게는 돈(3.75g), 량(10돈)을 사용했고 고기나 과일의 무게는 근(16량), 관(100량)을 사용했습니다. 또 곡물이나 기름의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로 홉, 되(10홉), 말(10되), 섬(10말) 등을 사용했습니다.

▲ (왼) 일상용어: 되, 2홉 소주, 한 줌

1968년 이후 우리나라는 전통 단위의 사용을 금지하였지만, 아직도 생활 속에서 건물 면적을 평, 금 무게를 돈, 술병 크기를 홉과 같은 전통 단위가 쓰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과학적 표현은 아니지만 일상용어로 쓰이는 한 줌이나 한 짐과 같은 용어들이 남아있습니다.

<단위가 사용된 표현>

시간의 단위로서, 자시, 축시와 같이 하루를 12지로 나눈 時(시)가 있고,  이를 8등분한 刻(각=15분)이 있었습니다. 寸(촌)은 각의 10분의 1이니 대략 1분 30초 정도가 됩니다. 여기서 시시각각이라는 말과 촌각을 다툰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도량형과 시간 단위를 잘 활용한다면 물리량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위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속도는 길이를 시간으로 나누면 되고, 가속도는 속도를 시간으로, 압력은 힘을 면적으로 나누면 됩니다. 예를 들어 소가 걸어가는 속도를 ‘리/각’으로 나타내거나, 물속의 압력을 ‘근중/치2’로 나타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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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단위계

우리나라 척관법에 비해 영국 단위계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온전한 단위계를 구성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같은 물리량을 표현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편리한 단위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짧은 길이를 나타낼 때는 인치나 피트를 쓰고, 먼 거리를 나타낼 때는 야드나 마일을 사용했습니다. 액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는 상당히 많은데, 온즈, 컵, 파인트, 쿼트, 포틀, 갤런, 펙, 부쉘, 배럴 등이 있습니다.

인치 단위의 막대자

▲ 인치 단위의 막대자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단위 설정에 있어서 이진법(또는 반분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1컵의 두배가 1파인트, 1파인트의 두 배가 1쿼트, 쿼트의 두 배가 포틀, 포틀의 두 배가 갤런, 갤런의 두 배가 펙입니다. 이것은 요즘 사용하는 인치 막대 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인치를 10등분 하는 것이 아니라, 1/2인치, 1/4인치 등과 같이 반씩 나누어 들어갑니다.

 쉽게 알아보는 공학이야기 6 – 측정 표준과 단위 편

영국 단위는 종류가 많아 단위를 변환할 때 어려움이 있지만, 모든 물리량의 표현이 가능하도록 잘 발달한 단위계입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속도의 단위로 mph(mile per hour), 가속도의 단위로 ft/s2, 압력의 단위로 psi(pound per square inch), 에너지 단위로 BTU(British thermal unit)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연방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던 영국단위계는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제단위계에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이제 야드-파운드법을 쓰는 나라는 미국, 라이베리아, 그리고 미얀마 3개국뿐입니다.

 

국제단위계 (SI)

우리가 사용하는 국제단위계는 프랑스의 미터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직후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수백 개의 불공정한 단위를 정리하기 위해 표준화된 미터법을 제정하였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몇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째, 하나의 기본량에 대해서는 하나의 단위만을 사용한다.

둘째, 크고 작은 단위는 앞에 접두어를 붙여서 사용한다.

셋째, 모든 단위는 십진법에 근거한다.

국제단위계의 7개 기본단위▲ 국제단위계의 7개 기본단위

기본 단위로 7가지를 정했는데, 길이는 미터(m), 질량은 킬로그램(kg), 시간은 초(s), 전류는 암페어(A), 온도는 켈빈(K), 몰질량은 몰(mol), 조도는 칸델라(cd)입니다. 이들 7개 기본단위를 이용하면 이 세상의 물리량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유도단위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기본 단위는 가급적 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길이의 단위인 미터는 지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하여 북극에서 적도까지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기준으로 국제미터원기를 만들었습니다. 킬로그램은 1리터에 들어가는 물의 질량을 기준으로 국제킬로그램원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시간은 평균태양일을 기준으로 하여 이를 86,400으로 나누어 1초로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불변이라 믿었던 지구 자전속도 및 공전궤도가 바뀌면 1초의 길이도 달라집니다. 또한 국제원기들은 모두 안정적인 백금과 이리듐 합금으로 만들어 일정한 온습도로 유지하지만, 인공물은 세월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변형이 생기게 됩니다. 엄밀하게 들어가면 하루의 길이도 변화하고 지구의 크기도 절대적인 것이 못됩니다. 영구적인 측정 표준으로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가 절대 상수라는 사실을 이용해 길이에 대해서는 영구적은 측정 표준을 마련하였지만, 질량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새로운 정의를 찾지 못해 국제킬로그램원기라는 인공물에 의존해 왔습니다.

 

새로운 킬로그램의 정의

2018년에 이르러서야 국제도량형총회는 새로운 킬로그램의 정의를 내놓았습니다. 플랑크 상수라고 하는 물리상수를 이용해 킬로그램을 재정의한 것입니다. 플랑크 상수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에너지에 관련된 양자역학의 기본상수로서 6.62606x10-34 kg·m2/s 값을 가집니다.

▲ 키블 밸런스의 원리

플랑크 상수의 측정에는 키블 밸런스(Kibble balance)라고 하는 와트저울이 이용됩니다. 저울 한쪽에 기계적인 일률과 반대쪽에 전기적인 일률이 같은 상태를 만들어 이 상수값을 측정합니다. 플랑크 상수로부터 질량을 정의한다는 것은 거꾸로 키블 밸런스에서 기계적인 일률(질량에 비례)과 같아지도록 전압을 조절해서 알려진 플랑크 상수가 나올 때의 전기적인 일률로부터 킬로그램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킬로그램이 재정의되면서, 질량과 관련된 기본단위인 물질량의 단위 몰(mol), 전류의 단위 암페어(A), 그리고 온도의 단위 켈빈(K)까지 총 4개의 기본단위가 새롭게 정의되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측정 표준은 이제 실물이 아닌 자연에서 얻은 불변의 상수에 따라 정의되어, 어느 나라든 정확한 측정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측정 표준국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측정기술이 발달할수록 불변의 물리상수에 대한 정확도가 높아질 것이고 아울러 측정표준이 더욱 엄밀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