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국적으로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에어컨, 선풍기 그리고 서큘레이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나올 전기료가 부담되지만, 무더운 여름철, 뜨거운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에어컨과 같은 냉방 솔루션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냉방 기술. 지금부터 냉방의 역사와 원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자연을 이용한 냉방의 원리

오래 전부터 난방은 불을 이용하여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냉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대에는 냉방과 난방, 그리고 환기를 통해 실내환경을 조절하는 기술인 ‘공기조화(air-conditioning)’가 발전하면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의 시대에는 마당에 물을 뿌려 증발할 때 생기는 기화열을 이용하거나, 자연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끌어들여 대류에 의한 냉각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차가움(냉열)을 만들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자연에서 냉방의 원리를 발견해 활용해 왔습니다. 호주에서 발견되는 흰개미 집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흰개미 집은 지면과 땅속에 통풍구를 가진 모래 탑을 세운 뒤 지면의 통풍구를 통해 내부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배출합니다. 그리고 땅속의 통풍구를 통해 차가운 공기를 내부로 들여와 원활한 공기 순환이 이뤄지도록 구성되었습니다. 현대에는 이같은 자연의 냉방 원리를 종종 건축 설계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짐바브웨에 위치한 이스트게이트 센터(Eastgate Center)빌딩은 흰개미 집의 원리를 본뜬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건물 지하의 공간은 비워두고, 상부에는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여러 개의 굴뚝을 만드는 방식을 도입해, 동일한 규모의 건축물이 사용하는 전력의 10%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풍혈냉천, 얼음골의 신비(출처: 공대생도 잘 모르는 재미있는 공학이야기)

반대로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을 발견하여 더위를 피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땅속 깊은 곳은 자연적으로 일 년 내내 온도 변화가 거의 없어,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일부 특정지형에서는 얼음골이나 풍혈냉천으로 불리는 추운 동굴이나 지형구조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적 냉방 기술의 등장

인위적으로 냉열을 만든 것은 19세기 냉동기가 발명된 이후부터입니다. 여러 형태의 냉동기가 개발되었고, 그 중 증기압축 냉동기가 가장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증기압축 냉동기는 액체가 증발할 때 주변에 있는 기화열을 빼앗아 가는 원리와 같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 몸에서 열이 날 때 피부를 물수건으로 적셔주면 그 물이 증발하면서 피부의 열이 함께 빠져나가는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하지만 증기압축 냉동기는 물수건에 물을 묻히듯, 액체가 증발할 때마다 계속 새로운 액체를 뿌려야 하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한쪽에서 증발한 기체를 다른 쪽에서 압축해 다시 액체로 만드는 하나의 열역학적 순환구조(사이클)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이클을 '냉동사이클'이라 하고, 여기에 사용된 액체를 '냉매'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암모니아를 냉매로 사용했는데, 구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증발할 때 기화열이 커 효과가 좋고, 적당한 온도에서 기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기의 냉동 엔지니어들은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예로부터 불은 신에게서 물려받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온열(heat)에 반대되는 냉열(cold)은 악마의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암모니아는 냄새마저 지독해 냉동기술자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배척 받기도 했습니다.

초기에 개발된 냉동기들은 대형 크기로 제작되었고, 주로 커다란 냉동 공장에서 얼음을 생산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이후 냉동기가 소형화되면서 건물 냉방에도 이용되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1876-1950)는 공기조절기 특허를 내고 에어컨을 보급하여, 전 세계를 시원하게 만들어준 에어컨디셔닝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냉방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일 년 내내 원하는 쾌적한 실내환경을 누릴 수 있는 전천후 건물이 가능해졌습니다.

 

선풍기, 에어컨 그리고 서큘레이터

선풍기나 서큘레이터는 실내공기를 순환시켜, 대류열 전달을 촉진함으로 인체를 냉각시키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실내 공기의 온도가 체온보다 낮을 때 가능하며, 실내온도가 체온에 가까워지면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열 방출이 급격히 줄어들어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실내 공기의 온도가 체온보다 높은 환경에서는 뜨거운 열이 반대로 인체를 향하기 때문에 공기 순환이 강할수록 우리 몸이 열을 더 흡수하게 됩니다. 더운 방에서 몸을 향해 헤어드라이어를 켜 놓으면 냉열이 아닌 온열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 선풍기와 서큘레이터의 공기순환

일반적으로 모터를 돌려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구를 ‘송풍기’라고 부릅니다. 선풍기와 서큘레이터는 송풍기의 일종으로 두 제품의 차이는 풍량과 압력입니다. 선풍기는 날개 전후의 압력이 높지 않지만 많은 풍량을 만들어낼 수 있어 실내공기를 순환시키는데 적합합니다. 이와 반대로 선풍기보다 큰 압력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서큘레이터입니다. 서큘레이터가 발생시키는 풍량은 선풍기보다 적지만 압력은 더 높아서, 고속의 강한 바람을 멀리까지 보내거나 작은 부위를 집중적으로 냉각시키는데 유리합니다.

▲ 에어컨을 구성하는 냉방 사이클

현대 냉방 기술의 혁신으로 일컬어지는 에어컨의 경우 냉방 사이클을 이용하여 공기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에어컨 실외기에는 압축기(컴프레서)가 들어있는데 압축기는 유체기계의 하나로 냉매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압축기로 압력이 잔뜩 높아져 뜨거워진 고압의 냉매는 증발기(실외기)를 통과하면서 냉각되어 액체상태가 됩니다. 액체의 냉매는 팽창밸브를 통과하며 압력이 낮아진 후 증발기(실내기)로 들어가 증발하면서 주변의 열을 흡수하게 됩니다. 이렇게 증발한 냉매는 다시 압축기로 되돌아가고 이렇게 하나의 냉방 사이클을 형성하게 됩니다.

▲ 벽부착형 에어컨 실내기

압축기는 고압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전력 소비량이 많지만, 선풍기처럼 공기를 순환시켜 대류열 전달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물 내부와 외부의 열 교환을 통해 직접 공기의 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냉방 효과가 탁월합니다.

 

앞으로의 냉방 기술

에어컨은 윌리스 캐리어가 처음 개발한 이래 엄청난 기술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냉방 효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물론, 하나의 실외기에 여러 대의 실내기를 붙이는 멀티형, 여름에는 냉방을 겨울에는 난방을 할 수 있는 히트펌프형 등 다양한 에어컨이 개발되었습니다. 특히 몇 년 전부터는 인버터 방식의 에어컨이 많이 등장해 전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인버터(inverter)란 직류 전력을 교류 전력으로 변환하는 전기 장치로, 에어컨 전력 소모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압축기 회전의 효율을 높이는 장치입니다. 기존의 압축기가 정해진 속도로 계속 회전(정속형)하는 것과 달리, 인버터 방식은 전류를 조절해 압축기의 회전수를 필요한 수준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라 일정 온도로 오랫동안 가동할 시에 특히 유리합니다.

요즘은 건물마다 에어컨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력 소모가 많은 에어컨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기 보다는 공기 순환이나 자연 냉방의 원리를 적절히 조합해, 전력 소모는 낮추고 공기는 시원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양한 냉방기기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올 여름 무더위도 함께 이겨낼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