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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가로와 세로의 비율을 뜻하는 화면비율. 흔히 ‘4 대 3(4:3)’ 또는 ’16 대 9(16:9)’와 같이 표현되는 화면비율은 어떻게 등장하게 됐으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영상 스크린 시대의 개막과 화면비율(Aspect Ratio)

영상의 화면 비율을 처음 결정한 인물은 윌리엄 케네디 딕슨입니다. 그는 1889년 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영화 필름 영사기의 시초인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발명한 인물로 이 장치에 필름을 이용하면서 화면의 비율을 정하게 됩니다.

당시 에디슨은 소리를 내는 장치인 축음기를 발명한 이후 축음기에 움직이는 이미지를 덧붙있 수는 없을까 하는 ‘눈을 위한 축음기’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사진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연구원인 윌리엄 딕슨에게 그 연구를 맡겼습니다. 딕슨은 당시 조지 이스트만이 막 개발한 질산 셀룰로이드 소재의 유연한 필름을 35mm 띠 모양으로 약 10미터 가량으로 길게 만들어 달라고 이스트만의 공장에 주문을 했고, 이 35mm 폭 필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장치인 키네토스코프를 발명합니다. 키네토스코프는 이 필름을 초당 46장(46 프레임)으로 빠르게 돌리며 움직이는 이미지를 최초로 구현했고 이때부터 영화의 필름폭이 35mm로 정해졌습니다.

딕슨은 필름을 키네토스코프에서 돌려감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 4개마다 한 개의 프레임을 배치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 필름에 기록되는 영상 크기는 가로 24.13mm, 세로 18.67mm가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면비율 4:3의 뿌리가 됐으며 이후 이 크기는 표준 화면비율로 정착하게 됩니다.

참고로 화면비율을 표기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입니다. 4:3, 16:9와 같은 방식이 있으며, 가로값을 세로값으로 나눈 소수점 표기법(Decimal Value)이 있습니다. 4:3의 경우 소수점 표기법으로는 1.33:1이 되며, 16:9의 경우에는 1.77:1로 표현합니다. 소수점 방식이 다양한 화면비율을 비교하는데 더 편리하므로 내용 중에 표기는 소수점 표기법을 중심으로 하겠습니다.

화면비율에 변화가 처음으로 일어난 때는 음향을 곁들인 유성영화가 등장한 1929년입니다. 35mm 폭 필름에 소리를 수록하는 녹음 라인을 추가하면서 영상을 기록하는 프레임의 폭은 조금 좁혀져 비율도 약간 바뀌게 됩니다. 1932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표준을 결정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해 프레임 크기를 22mm×16mm(1.37:1)로 정해 기존에 딕슨이 만든 1.33:1 보다 가로가 조금 더 넓은 화면이 탄생하게 되며, 이 화면 비율은 1937년 ‘아카데미 비율(Academy Ratio)’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사용되게 됩니다.

 

TV의 등장과 영화 화면비율의 다변화

1950년대에 TV가 등장하자 영화 산업계는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집에서도 언제든지 영상을 볼 수 있게 됐고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영화 산업계와 극장 업계는 TV와의 경쟁에서 이를 돌파할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TV의 화면비율은 극장의 화면비율 4:3을 자연스럽게 채택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존재했던 유일한 레퍼런스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영화 산업계는 TV와는 다른 포맷을 택해 경쟁력을 갖출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가로 영상폭을 넓혀 높은 현장감을 재현할 수 있는 와이드 스크린 포맷을 만들게 됩니다.

영화 감독이자 엔지니어인 프레드 월러는 ‘시네라마(Cinerama)’라는 와이드 스크린 화면비율 포맷을 발표합니다. 이 포맷은 카메라 3대를 연결, 동기화한 뒤 영상을 3분할 촬영하고 상영할 때에도 영사기 3개를 동기화해 큰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방식으로 TV에서는 따라할 수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시네라마는 27mm 렌즈 카메라 3대를 활용해 세로로 분할 촬영을 한 후, 상영할 때는 3개의 영상을 나란히 배치해 화각을 147도, 화면비율은 2.59:1로 넓은 영상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시네라마는 3개의 영사기를 화면에 나눠서 교차로 빔을 쐈고, 스크린도 커브드 형태였습니다.

시네라마는 여행 풍경을 담은 기행 영화 등을 통해 상당 이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일반 영화에 채택된 건 10년 뒤인 1962년이었으며, 만들어진 영화도 두 편에 불과했습니다.

시네라마는 획기적인 시스템이었지만 카메라 3대를 이용한 시스템은 촬영이나 상영 단계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네라마 카메라는 단일 초점거리 방식이라 촬영시 카메라가 아니라 배우 배치를 조정해 영상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촬영 비용과 상영 비용이 모두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시네라마의 인기는 와이드 스크린의 효과를 입증해 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시네라마의 성공을 본 20세기폭스는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발명가인 앙리 크레티안이 1920년대에 발명한 ‘애너모퍼스코프(Anamorphoscope)’를 영화에 도입합니다. 애너모퍼스코프는 일종의 오목렌즈와 유사한 개념을 가진 특수 렌즈를 이용해 이미지의 폭을 절반까지 압축해 필름에 기록하는 기술입니다. 20세기폭스는 여기에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방식은 전통적인 35mm 필름 폭에 2분의 1로 압축한 와이드 영상을 기록하는 구조로 화면비율 2.35:1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35mm 필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와이드 스크린을 구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었습니다. 물론 애너모퍼스코프는 필름의 그레인(일종의 노이즈로 필름 소재 입자가 도드라져 보이는 현상)과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가 여전히 있었지만 시네라마보다 촬영이 쉽고 극장이 부담할 시설 비용도 줄일 수 있어 업계의 지지를 받았고 와이드 스크린 영화계의 승자가 됩니다.

반면 파라마운트는 시네마스코프가 가진 화질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독자 개발한 필름을 세로에서 가로로 바꾸는 방식을 채택한 ‘비스타비전(VistaVision)’을 선보입니다.

비스타비전은 동일하게 35mm 필름을 사용했지만 촬영할 때에는 형태를 가로로 사용해 필름 자체의 촬영 면적을 늘렸고, 이를 통해 35mm 필름이 가진 그레인 발생으로 인한 화질저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화면비율은 1.85:1로, 가로로 촬영한 마스터 필름 영상을 극장에 배급할 때에는 필름을 세로 방향으로 회전시켜 상영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으로 영화 ‘십계’ 등 여러 유명 영화들이 촬영됐습니다.

1950년대에는 이들 방식 외에도 슈퍼스코프(Superscope), 테크니라마(Technirama), 시네미라클(Cinemiracle), 비스타라마(Vistarama) 등 수많은 와이드 스크린 포맷이 탄생했지만 35mm 필름의 물리적 한계 탓에 업계는 조금 더 큰 필름을 찾는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미국 영화 제작자인 마이크 토드는 아메리칸옵티컬과 공동으로 70mm 필름 포맷인 ‘토드 AO(Todd AO)’를 개발합니다. 토드 AO는 시네라마가 카메라 3대로 실현하던 영상을 카메라 1대로 촬영해 프로젝트도 1대로 재현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포맷의 화면 비율은 2.20:1입니다.

한편 1954년 영화 촬영 장비와 렌즈 제작사인 파나비전은 원래 시네마스코프를 전문적으로 다뤘지만 초기 시네스코프가 안고 있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업계를 주도하게 됐습니다. 파나비전은 새로운 카메라 시스템과 포맷 개발에 나서게 됐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MGM 65’입니다. 70mm 필름을 이용해 고화질 와이드스크린을 실현하는 기술로, 화면 비율은 2.76:1이며 영화 ‘벤허(Ben Hur)’가 이 방식으로 촬영한 유명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70mm 필름의 단점은 가격이 비싸다는 점 이었고, 35mm 필름도 화학 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레인 문제가 해소되었고 결국 70mm 필름에 필적하는 화질을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70mm 필름은 아이맥스(IMAX) 시스템이 등장한 1970년대까지 시장 확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16:9 화면비율의 탄생과 와이드 스크린의 대중화

지금까지의 화면비율을 살펴보면 딕슨이 발명한 1.33:1부터 아카데미 비율인 1.37:1을 거쳐 시네라마 2.59:1, 시네마스코프 2.35:1, 비스타비전 1.85:1, 토드 AO 2.20:1, MGM 65는 2.76:1로 변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재 TV의 대부분의 화면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16:9(1.77:1)은 이 가운데에 없습니다.

16:9의 탄생 배경은 TV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HDTV 표준을 정하면서 미국 영화텔레비전기술자 협회 SMPTE의 엔지니어 컨스 파워스는 16:9라는 화면 비율을 제시했습니다. 16:9(1.77:1)는 기하학적으로 보면 4:3(1.33:1)과 2.35:1의 평균 수치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폭이 좁거나 반대로 폭이 넓은 와이드 스크린 비율의 영상이라도 16:9 포맷에서 시청하면 영상의 상하 좌우에 조금씩 공백(Letter Box 또는 Black Bar)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영상을 효율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됩니다. 일종의 타협안인 화면비율 16:9는 이후 DVD에서 HDTV, UHD(4K)까지 와이드 스크린의 표준으로 널리 쓰이게 됩니다.

TV 시장에서의 와이드 스크린의 변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4:3에서 16:9로 와이드 스크린의 니즈를 반영했듯이, 16:9보다 더 폭이 넓은 21:9 시장도 개화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의 가전 박람회인 CES 2014에서 21:9 화면비율을 가진 105인치 울트라 와이드 TV를 선보였고, 최근에는 모니터 시장에도 21:9 화면비율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와이드 스크린의 진화는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화면비율에는 재미있는 수학적 관계가 숨어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미래의 와이드 스크린 화면비율도 살짝 엿 볼수 있을지 모릅니다.

4:3의 비율을 분수로 표현하면 4/3가 되며, 이 숫자를 제곱하면 16/9가 됩니다. 그리고 4/3을 세제곱하면 64:27이 되며 이는 약 21.3:9로 현재 새로운 와이드 스크린으로 주목받고 있는 21:9와 비슷한 비율입니다. 그렇다면 4/3에 네제곱을 하면 어떨까요? 256/81이 되며 소수점 비율로 나타내면 28.4:9가 됩니다. 단순히 재미삼아 계산해 본 수학적 추측일 뿐이지만 더 폭넓은 와이드 스크린에 대한 시청자의 니즈가 나타난다면 언젠가는 28:9 비율의 포맷도 등장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디스플레이 화면비율의 유래와 종류 톺아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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