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라면 어떤 것이 먼저 떠오를까? 영화나 만화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기계를 먼저 생각한다. 사람이나 동물 크기의 인공 지능 로봇이 그려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생명체를 닮은 어떤 것, 움직이는 인형을 로봇이라 여긴다. 하지만 진짜 로봇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특정한 환경 속에서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수술 로봇과 우유를 짜는 로봇, 용접 로봇, 배달 로봇은 각자 자기가 하는 일에 맞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10cm 이하의 작은 로봇을 초소형 로봇이라 부른다. 10cm 이하 크기는 미니 로봇, 1cm 이하는 밀리 로봇, 1mm 이하는 마이크로 로봇, 1㎛(1/1000mm) 이하는 나노 로봇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내려진 정의가 있지는 않다. 초소형 로봇이나 마이크로 로봇은 모두 눈에 띄게 작은 로봇을 부르는 이름으로 두루뭉실하게 쓰이지만 하는 일은 모두 다르다. 용도에 따라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리처드 파인먼과 미 정보기관에서 시작된 초소형 로봇의 역사

초소형 로봇의 개념은 1970년대 미국 정보기관에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전쟁 포로 구출을 돕거나 전자 교란 업무를 맡기려고 했으나, 기술 부족으로 실제 제작할 수는 없었다. 묻혀있던 개념은 80년대 후반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을 이용해 마이크로 로봇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되살아났다. 1993년 엡손에서 만들어 판매한 초소형 자율 주행 로봇 ‘므슈’는 1cm³밖에 안 되는 몸에 98개의 부품을 담고 있었다.

크기로 따지면 가장 작지만, 나노 로봇의 역사는 초소형 로봇보다 더 길다. 1959년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주최한 모임에서 ‘개별 원자를 직접 조작해서 무엇인가를 만든다’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일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묻혀있던 개념은 1986년 에릭 드렉슬러가 ‘창조하는 기계’로서 나노 기술을 제시하면서 되살아났다. 2000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나노 기술을 국가 연구 과제로 지정하고 5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연구 개발비로 지원했다.

 

곤충을 닮은 초소형 로봇

인공 지능과 마찬가지로 뿌리는 깊지만 많은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크기가 작아서 생기는 단점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조작하기 어렵고, 크기가 작아 배터리를 탑재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크기가 작아서 생기는 장점도 많다. 인간이 직접 갈 수 없는 곳을 탐사할 수 있고, 많은 양의 로봇을 동시에 제어 할 수 있을 경우 의료와 재난, 산업 현장에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 A New Direct Drive Miniature Quadruped Robot (출처 : Maryland Robotics Center)

예를 들어 미국 메릴랜드 대학 마이크로 로봇 연구소에서 개발한 18mm 크기의 작은 곤충형 로봇은 낡은 건물이나 다리를 점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에 있는 60만 개의 다리 가운데 절반 이상은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났고, 11%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로봇은 그런 다리를 최대 초속 2.2m로 움직이며 살핀다. 여기에 점차 기능이 더해지면 다리에 거꾸로 붙어서 움직이며 문제를 찾을 수도 있다. 이 로봇을 개발한 사라 교수는 나중에 쌀알만 한 크기의 다리 점검용 로봇도 만들었다.

▲ The first wireless flying robotic insect takes off (출처: University of Washington)

‘로보플라이’는 스스로 날아다니는 비행형 곤충 로봇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전력 공급 없이 날아다닐 수 있다. 2013년에 개발한 ‘로보비’를 개량한 것으로, 본체에 달린 태양전지판에 레이저를 쏘아 전기를 발생시키는 형식으로 전원을 공급한다. 무게는 190mg에 불과하다. 비슷한 개념의 마이크로 로봇 곤충을 연구하는 팀은 또 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로봇벌 연구팀이다. 이 팀은 벌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 곤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서울대 연구팀에서 개발한 ‘하이그로봇’ (출처: kylee386)

김호영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수분으로 움직이는 ‘하이그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과감하게 전기 에너지를 포기하고, 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몸 구조를 이용해 움직인다. 수분으로 휘어졌다 펴졌다하면서 전진한다. 나중에 사람 피부에 치료 약물을 전달하거나, 환경 오염 현장에서 정보를 획득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 Kilobot Collective Behaviors: Phototaxis, Gradients, Sync, Pattern Formation (출처: SSR Lab Harvard)

하버드대에서 만든 킬로봇(Kilobot)은 무리 지어 움직이는 로봇이다. 천 대 이상의 로봇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개념 증명을 위해 만들어진 탓에 로봇만으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일은 무리지만, 앞으로 대량의 작은 로봇들을 이용해 청소, 재난 현장 조사 등의 작업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의료에 사용되는 로봇

곤충형 로봇이 아이디어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초소형 로봇이라면, 의료용 로봇은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전 영화 ‘이너 스페이스’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아주 작아져 몸으로 들어가 치료하는 개념과는 다르지만, 신체에 무리를 주지 않고 정확한 자리에 약물을 전달한다거나,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의료용인만큼 여러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기때문에, 실제 상용화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2016년 라이스대학에서 ‘나노카’ 노벨상 수상, 분자 시각화 (출처 : Wikimedia Commons)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는 세계 최초로 분자 레벨에서 동작하는 나노 로봇을 개발했다. 150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된 이 로봇은 화학물질을 전달하고 제어할 수 있다. 나중에는 이 로봇을 이용해 나노 기계를 만드는 분자 공장을 만들 수 있다고 기대를 받고 있다.

▲ Ten years of DNA origami (출처: nature video)

암세포에 영양 공급을 차단해 암 치료에 도움을 주는 나노 로봇도 등장했다.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으로, 크기가 90nm(나노미터) X 60nm에 불과하다. 종이접기에 영감을 얻은 ‘DNA 오리가미(종이접기)’ 기술을 이용해 DNA로 만들어졌으며, 암세포를 굶겨 죽인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항암제 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항암치료보다 안전하다고 한다.

▲ 바이오소재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헬스케어 머티리얼즈' 표지논문으로 소개된 캡슐형 마이크로로봇

(출처: Advanced Healthcare Materials 2018년 5월9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최홍수, 문제일 교수와 스위스 취리히연방 공대 브래들리 넬슨 교수 연구팀은 몸속 원하는 부위에 치료용 약물과 세포를 전달하는 캡슐형 초소형 로봇을 개발했다. 추진 장치로는 박테리아를 이용한다. 로봇에 약물을 붙이는 방식과는 달라서 지정한 위치에 닿을 때까지 안전하게 치료 약물과 세포를 지켜준다고 한다.

▲ 마이크로 의료로봇 구동 개요(출처: 전남대 마이크로 의료로봇센터)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과 마이크로 의료센터는 ‘줄기세포 기반 마이크로 의료로봇’을 개발했다. 인체 안에서 분해되는 구조체에 나노 자성 입자를 붙인 다음 줄기세포를 담을 수 있는 로봇이다. 이 로봇을 주사기를 통해 몸에 주입하면, 외부에서 자기장으로 제어해 치료가 필요한 부위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현재 미국 바이어 스타트업 ‘바이오트’와 기술 이전 계약을 마친 상태다.

 

아직은 미래 기술, 하지만...

처음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을 돌려놓는 곳에서 끝난다. MEMS를 이용한 마이크로 로봇은 미니 로봇과 밀리 로봇 단계까지는 사용되지만, 1mm 이하의 로봇은 센서 부품을 제외하면 반도체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나노 로봇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이며, 파인만이 생각했던 방법은 쓰이지 않는다. 아니 미니, 밀리, 마이크로, 나노 로봇을 막론해 초소형 로봇은 아직 미래 기술이다. 아직 개념 증명 단계에 머물러 있는 로봇이 대다수이며, 상용화를 위해서 뛰어넘어야 할 벽도 높다.

하지만 인공 지능이 그랬던 것처럼, 그 벽이 언제 쉽게 무너질지 모른다. 다 소개하진 못했지만 이미 그래핀으로 만든 로봇이나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마이크로 로봇도 나왔으며, 생체조직을 결합한 ‘바이오 하이브리드 로봇’은 상당히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일본은 인공 지능과 결합한 초소형 로봇도 개발했으며, 나노 로봇을 이용한 암 치료법은 연골 육종 암에 걸린 개를 걷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2~3년 안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밝혔듯이 초소형 로봇은 건물이나 구조물의 균열을 탐지한다거나, 사람이 직접 점검하기 어려운 곳의 전력, 가스, 수도관이나 항공기를 점검하기에도 적당하다. 동물 임상 시험에서는 초소형 로봇을 이용한 수술에도 성공했다. 언젠가는 초소형 로봇을 대량으로 뿌려 청소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 공학 세 가지를 인간을 특이점으로 데려다줄 기술로 꼽았다. 그의 주장이 모두 현실로 나타날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기술들로 인해 우리 삶이 확 달라질 것은 확실하다. 언젠가는.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뉴스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