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주행차가 최단거리의 길을 스스로 찾아 운전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흥미를 느낄만한 영상을 메인 페이지에서 추천해준다. 구글은 기계 스스로 벽돌깨기 게임을 풀어가는 알고리듬이 열어갈 인공지능(AI) 세상의 가능성만으로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를 5억달러에 인수했다. 구글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방법을 인공지능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이제는 인공지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지경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인공지능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이야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창작 영역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인간의 창작활동 역시 기계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텐데 말이다. 오랫동안 창의성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 특성이라 믿었던 우리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수순이다.

 

AI, 인간의 영역에 도전하다

인간의 뇌 구조와 많이 닮아있는 인공신경망은 사물을 인식하고 개념화, 추상화 하는 일들을 제한적이지만 곧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기계 역시 창의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말했듯이 인식과 창작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기계가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는가는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던 질문이다.

구글의 머신러닝팀 디렉터, 블레이즈 아게라(Blaise Aguera)

(이미지 출처: www.ted.com)

1973년 샌디에이고 대학교의 하롤드 코핸 교수는 이미지를 추상할 수 있는 알고리듬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아론(AARON)’을 만들어 기계와 인간의 창작적 협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 했다. 구글의 머신 러닝팀 디렉터인 블레이즈 아게라는 2016년 TED@BCG Paris에서 ‘딥 드림(Deep dream)’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기계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면 당연히 창작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이즈 아게라의 딥 드림 관련 강의 영상

딥 드림 프로젝트는 인공신경망을 통해 기계를 학습 시키는 일반적인 과정을 반대로 추론해가며 기계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이미지화하는 프로젝트이다. 수천 만장의 ‘고양이' 사진을 컴퓨터에게 입력하여 고양이의 특징들, 즉 고양이의 형태, 외곽선, 패턴 등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컴퓨터가 이미지를 학습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원본 이미지를 딥 드림의 반 고흐 ‘Starry Night’ 스타일로 변환한 이미지

(이미지 출처: www.deepdreamgenerator.com)

하지만 딥 드림 프로젝트는 오히려 반대로 학습을 마친 컴퓨터에 ‘고양이'를 제시할 때 유추해 내는 이미지들로 만들어진다. 딥 드림 프로젝트는 컴퓨터 깊은 곳에 존재하는 추상적 특성을 마치 꿈(dream)꾸듯이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꿈을 꿀 때 현실의 기억을 재조합 하듯이 말이다.

딥드림으로 변환한 고양이와 강아지 이미지

(이미지 출처: www.deepdreamgenerator.com)

인공지능의 창작물은 시각작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공신경망이 처음 학습한 데이터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2016년에 나온 독립영화 '선스프링(Sunspring)'은 수백 권의 SF 영화 스크립트를 학습한 인공신경망이 만들어낸 대본으로 제작됐다. 물론 감독의 영향력, 배우의 표현력, 그리고 편집의 완성도가 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겠지만 기계가 만들어낸 대본으로 제작된 영화라니.

영화 ‘선스프링스’ 영상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8분 남짓한 영화는 내용상 전혀 문맥이 맞지 않는 대화들, 그러나 문법적으로는 정확한 대사들, 뭔가 느껴지는 기묘한 분위기처럼 기계 창작물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특이함을 보여준다. 어쩌면 기계가 발견하는 점들은 인간이 미쳐 보지 못한 치는 것들이기에 그 협업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진화하는 AI

구글의 마젠타 프로젝트(magenta project)나 소니의 플로우 머쉰즈(Flow Machines)등 특정 아티스트의 음악 스타일을 컴퓨터가 학습하여 유사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물론 플로우 머쉰즈가 선보인 비틀즈 스타일의 ‘Daddy’s Car’처럼 가사와 후반작업은 아직 인간의 손을 거치긴 한다.

 플로우 머신즈의 ‘Daddy’s Car’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창작이 가능한 새로운 알고리듬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온라인 툴인 ‘Quick Draw!는 사람들에게 제시어를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제시어 맞게 사용자가 그림을 그리면 AI로 그림을 맞추는 Quick Draw! 프로그램

(이미지 출처: quickdraw.withgoogle.com)

구글의 Stketch RNN 알고리듬은 이 Quick Draw의 데이터를 확보해 인간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학습하고, 서로 다른 두 이미지 형태를 섞어 그 중간 과정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고양이'와 ‘의자' 그림 두 개를 인간이 그렸다면 그 중간 단계들, 고양이에서 의자로 변하는 그 과정을 기계 스스로 창작해 낸다.

Stketch RNN 알고리듬은 사용자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창작해낸다

(이미지 출처: https://research.googleblog.com)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글쓰기와 작곡 역시 가능할 것이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특정 제시어만 줘도 특별한 학습과정 없이 관련 글을 쓰거나 작곡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특정 아티스트의 스타일, 특정 분야의 글을 학습한 후 그와 유사한 스타일을 흉내내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창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옆에서 그냥 거들 뿐이고.

 

AI, 인간과의 적절한 역할 분담 필요해 

창작자들에게 인공지능의 머신 러닝, 그 중 딥 러닝을 가르치는 것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한국은 이 분야에서는 아직까진 선두주자로 보여지진 않는다. 생각보다 창작산업에 인공지능이 빠르게 적용되는데 창작자들이 기술과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계와 함께 하는 창작물들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머신 러닝을 적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교육하는 해외 학교들에 비해, 지금 한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는 알고리듬 개발에만 치우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창작환경에서 확장 가능성을 시도하는 것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기계가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새로운 기술, 이 놀라운 환경에서 더 나은 창작물을 위해 기계환경과 어떻게 적절한 협업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기계는 기계가 알아서 잘 할테니, 우리는 우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디스플레이 블로그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