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사원(이하 김) ● 날씨가 많이 풀렸죠? 여기 오기 전에 경윤 씨와 빨리 가까워지려고 직접 쓰신 책 <답답해서 떠났다>의 프롤로그를 읽었어요. 나머지는 이야기를 나눈 뒤에 읽으면 더 와 닿을 것 같아서 일부러 남겨뒀죠. 220일 동안의 인도와 남미 여행이라… 쉽지 않은 여행이었을 텐데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최경윤 학생(이하 최) ● 작년 3학년 2학기 때였어요. 학교를 다닐수록 쌓이는 건 돈, 미래, 취직, 학점에 대한 고민뿐이었죠. 그래서 잠시 여유를 갖고 나를 돌아보자는 생각으로 휴학을 결정했어요. 그런데 막상 집에서 쉬다 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뒤떨어지는 건 아닌가’ 싶은 불안 때문에 패닉상태에 빠졌죠. 나름 스펙 쌓기에도 집중해봤지만 남는 건 허무함밖에 없더라고요. 결국,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현재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여행을 결심, 무작정 인도와 남미로 떠났죠. 남인도에서 한 달간 여행하고 바로 남미의 콜롬비아로 이동, 이후 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파라과이를 거쳐 아르헨티나와 칠레까지 행했어요.

김 ● 음~ 왠지 공감이 가네요. 사실 저도 취업하기 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스펙 쌓기에만 열중하다 보니 ‘나는 뭘 위해 이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일탈을 꿈꾸고 고비사막 마라톤에 참가했죠. ‘사막, 이 공간이라면 혼자 있을 수 있겠다’ 싶었고, 결과는 만족.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위안과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물론 250km를 6박 7일간 50도를 육박하는 뜨거운 태양 아래 달리면서 극한에 다다르기도 했지만요. 솔직히 달리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후회한 적도 있어요 ㅎㅎ

최 ● 사막에서의 달리기라….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왠지 솔깃하네요. 그런데 사막은 모래밭 아닌가요?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김 ●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막은 이집트 ‘사하라’고, 고비사막은 몽골고원에 있는 곳으로 풀과 모래가 함께 존재하는 곳이에요. 중간에 협곡도 있고, 물도 있으며, 작은 마을도 있죠. 하지만 밤낮 기온차가 크고 바람이 매서워 고생도 많이 했어요. 6월이었는데 낮에는 50도까지 오르고 밤이 되면 영하로 기온이 뚝 떨어지더군요. 무더운 날씨 탓에 첫째 날 인연을 만들었던 미국인 친구는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기도 했죠. 그 친구는 고비사막 레이스에 여러 번 참가해 상황을 잘 알고 있었는데, 외국인은 코골이가 심하니까 귀마개를 꼭 끼라며 제게 귀마개를 나눠주던, 세심하고 마음 따뜻한 친구였어요.

최 ● 마음의 상심이 컸겠어요. 하지만 여행에서는 그런 고비의 순간도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죠. 저도 페루에서 아찔한 일을 겪었는데 장시간 트레킹하다가 배가 무지 고파서 마을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어요. 마음이 급해진 저는 절벽으로 넘어가면 금세 도착할 것 같아 무작정 바위를 타고 올라갔죠. 꽤 높이 올랐는데 발을 디뎠던 돌멩이가 우르르 무너지면서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거예요. ‘난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는 찰나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마구 질렀고 다행히 주민들이 저를 도와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죠. 배가 고파서 미쳤었나 봐요(ㅎㅎ). 좋은 추억도 많아요. 콜롬비아 오지 산골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외지인인 저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며 그들 집에 한 번씩 초대해주더라고요. 덕분에 며칠간은 배불리 먹고 편히 잠자리에 들며 꿈같은 여행을 했죠. 너무 감사한 마음에 일일이 그들을 찾아가 초상화를 그려줬고, 이후 여행 다니며 만난 사람들은 그 모습을 그려 소중한 기록으로 남겼어요. 선배님도 오늘 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으니 이따 한 장 그려드릴게요.

김 ● 오! 고마워요. 안 그래도 책에 사인 받으려고 가져왔는데, 사인도 부탁할게요(ㅎㅎ). 그런데 220일이라면 경비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최 ● 일단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배낭을 사려고 알아봤는데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코오롱스포츠 본사에 연락해서 PPT로 만든 여행 계획서를 제출하고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니 가방만 지원해줄 수 있나요”라고 선처를 구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가난한 대학생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며 가방뿐 아니라, 모자에 티셔츠까지 챙겨주시더라고요. 그렇게 가방을 해결하고 비행기 티켓은 안 입는 옷가지와 직접 만든 액세서리, 책 등을 벼룩시장에 내다 팔아서 구입했어요. 하지만 시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부족한 금액은 과외, 서빙 등의 아르바이트로 모았죠.

김 ● 와, 경윤 씨의 도전정신과 패기는 아무나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와 참 공통점이 많네요. 저도 나름 여행을 한다고 목포부터 속초까지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일주하고, 유네스코 워크캠프에 참가해 해외봉사도 하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나라를 방문하며 유럽과 중국을 각각 60일씩 여행했거든요.

최 ● 어? 저도 2010년에 제주도 330km를 홀로 자전거 타고 여행했고, 워크캠프는 필리핀으로 다녀왔는데…. 정말 공통점이 많네요. 어쩐지 말이 잘 통하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계기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됐고 인생도 즐기게 된 것 같아요.

김 ● 그렇게 순간순간을 즐기는 자세, 매우 중요해요. 이미 경윤 씨는 여행을 통해 많은 깨달음이 있었던 듯한데요. 그런 여유와 긍정적인 마음만 있으면 사회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좋은 이야깃거리와 긍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어진 포용력은 삶의 밑거름이 되어 사회생활에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테니까요.

저는 재수를 했거든요. 그래서 남들보다 뒤늦은 출발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졸업에 대한 강박관념도 커서 휴학은 한 번도 하지 않고 쉼 없이 달렸죠. 하지만 막상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그렇게 늦은 게 아니더라고요. 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후회됐지만, 오늘 경윤 씨를 통해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의 도전에서 많은 힘을 얻게 될 것 같아요.

최 ● 저도 오늘 선배님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는걸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남들보다 무조건 열심히 잘하자’라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면 여행 후에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니 순간을 즐기자’고 삶의 모토를 바꿨어요.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비교는 필요 없다는 걸 알았고, 스스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며, 귀한 존재이고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죠. 요즘 ‘힐링’이 트렌드다 보니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한 번쯤은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떠나보세요!”

김 ● 맞아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떠나야 해요. 떠날까 말까 고민된다면 일단 지르고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이 세상 한 번 살지 두 번 살진 않잖아요. 하하! 그러니 .....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사이에서 내 모습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여행 초반에는 이국적인 풍경에 눈이 돌아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 감흥이 없거든요. 오히려 사람들과의 만남이 오래 추억으로 남죠. 그럼, 경윤 씨는 앞으로 또 어디론가 떠날 계획인가요?

최 ● 음~ 다음에는 멕시코나 아프리카로 떠날 생각이에요. 그 전에 일단 제 꿈을위해 공부를 더 할 거고요. 사실, 제 꿈이 우주 비행사거든요. 최초의 여자 비행사가 되고 싶었는데 우주인 이소연 씨가 나타나면서 그 꿈은 깨졌고, 그래서 제2의 여자 비행사가 될 거예요. 때문에 현재 졸업반이지만 취업보다는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것도 남미 여행을 하면서 결정한 거죠.

여행을 오지로 다니다 보니 제가 기계과를 나온 걸 알고 고장난 기계를 고쳐달라는 주문이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손을 댈 수가 없더라고요. “넌 기계과 학생이라면서 왜 손도 못 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말문이 막혔어요. 대학에서 배운 건 이론뿐이었기에 실무자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죠.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요.

김 ● 와, 우주 비행사라니 멋진 꿈이네요. 어떤 것이든 자신이 결정한 최선의 선택이니까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그만큼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고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경윤 씨의 앞날, 저도 응원 할게요.^^